[초동시각]큐텐그룹, 인형극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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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니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마리오네트(marionette)'가 떠오른다.
뛰어난 인형술사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의 목각인형은 큐텐그룹의 각 계열사다.
이어 구 대표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큐텐을 통해 2010년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등으로 쇼핑몰 사업을 확대해 왔다.
큐텐은 연간 1000억원 수준의 적자 경영 속에서도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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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니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마리오네트(marionette)'가 떠오른다. 인형술사는 목각인형 관절 마디마디를 실로 묶어 움직이면서 관람객들을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뛰어난 인형술사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의 목각인형은 큐텐그룹의 각 계열사다. 그의 인형극에서는 돈이 없어도 기업을 인수할 수 있고,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도 상장거래가 가능했다.
구 대표는 1999년 지마켓을 설립한 후 2006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9년 이베이에 매각하는 등 벤처기업 성공 신화로 이름을 떨쳤다. 이어 구 대표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큐텐을 통해 2010년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등으로 쇼핑몰 사업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그가 거느린 기업들은 이익을 내는 회사는 아니었다. 큐텐은 연간 1000억원 수준의 적자 경영 속에서도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큐텐은 2022년 9월 티몬, 지난해 3월과 4월 각각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 올해는 인터파크커머스를 통해 AK몰을 잇달아 편입했다. 올 2월에는 미국 쇼핑몰인 위시까지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큐텐이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의 지분을 판 기업들은 현금 대신 큐텐 혹은 큐익스프레스의 지분을 받거나 이를 담보로 잡았다. 자사 물류 기업 큐익스프레스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 했는데, 적자 기업이 상장하려면 매출 규모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무리하게 인수 합병을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커머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큐텐 계열 업체들의 재무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고, 티몬·위메프의 유동부채 규모는 유동자산의 5배가 넘는 등 걷잡을 수 없게 됐다. 현재 티몬·위메프의 미지급 정산금은 행방이 불명확하고, 모회사인 큐텐 경영진이 정산금을 다른 사업 확대를 위해 유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집을 불려 우선 상장에 성공하고 보자는 구 대표의 맹목적인 야심과 글로벌 e커머스 제국이라는 원대한 비전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와 판매자들, 국내 e커머스 업계에 엄청난 손해를 입히고 말았다.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고, 각종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한 영리법인, 즉 기업이라는 틀은 잘 활용하면 한 사람의 자연인이 하지 못하는 엄청난 경제·사회·문화 활동을 해낼 수 있다. 반도체나 자동차를 생산해 팔기도 하고, BTS라는 그룹을 만들어 K-팝 콘텐츠를 수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수단이 한 사람의 야망 혹은 욕심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사고 팔리고, 자금까지 유용되는 경우에는 그 법인이 가진 힘 이상으로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기업의 경영자는 '반칙의 유혹'을 이겨내면서도 영리법인의 최대 목적인 '이익 달성'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큐텐을 비롯해 근본적인 가치 창출보다는 화려한 자본시장의 잔재주를 활용해 버티는 기업집단과 경영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과정과 사회에 보탬이 되려는 목적이 없는 맹목적 성공은 결국 기업(법인)의 실패다. 법인은 태생적으로 자연인(사람)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사람을 위하지 않고 반칙하며 오직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는 기업의 결말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형술사라도 인형극을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입이 깨지고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인형극의 관람객들은 미련 없이 떠난다.
박소연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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