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과 180도 다른 조정석,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
[장혜령 기자]
▲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
ⓒ (주)NEW |
실존 인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특정인을 가리키기보다는 시대의 야만성을 이미지화하는 데 중점 뒀다. 다시 말해 거시적인 사건을 재현하는 데만 치중하지 않고 미시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알려지지 않던 실존 인물을 세상에 꺼내다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을 중심으로 가상의 인물 정인후와 변호인단을 꾸려 시대의 아픔에 희생된 개인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앞선 영화와 같은 시점이지만 누구를 중심으로 삼는지 스타일이 다르다. 그 시대의 법정을 그대로 복사한 듯 세심하게 재현한 법정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
ⓒ (주)NEW |
박태주의 변호사를 맡은 정인후는 법정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가 아닌 이기고 지는 승부만 가리는 곳이라고 판단하는 소위 속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내란죄 사건을 맡아 출세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옳은 가치를 따르다 무능해져 버린 아버지를 통해 희망을 잃어버렸다. 운동권 학생을 숨겨주고 본인은 옥살이하느라 몸이 성치 못한 아버지를 보며 시대에 저항하는 일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고 느낄 법하다. '나 하나 살자고 학생들을 팔아넘길 수 있냐'는 말이 답답하게 들릴 뿐이다.
박태주 변호를 맡은 건 세상을 불신하는 심정을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법, 국가의 상황은 누구나 동등하지 않다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고, 자신 또한 이를 이용하려는 마음뿐이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박태주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8명 중 혼자만 현역인 박태주가 군법(단심) 재판으로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상황을 막으려 한다. 공개재판으로 돌려 여론몰이하려는 꼼수를 부리지만, 타협 없는 박태주는 '군인은 군법으로 재판받는 게 옳다'며 고집을 피운다.
결국 상황은 불리해져 군사 재판으로 향해 가지만 가까스로 3심제로 타협을 보게 된다. 하지만 쟁점은 내란의 사건 공모와 위압으로 인한 명령 복종 인지였다. 정인후는 '어차피 세상은 김 부장만 기억할 테니 여론을 그쪽으로 돌리자'고 청유하지만, 박태주는 흔들림 없는 꼿꼿함을 보인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세를 일관한다.
▲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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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박태주의 마지막 법정 장면이다. 어리석은 원칙주의자는 '만약 인생이 한번은 연습이라고 치면 시간을 되돌려 어느 순간으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먹먹한 답을 내놓는다. 아내의 밥 짓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했던 낡은 막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근무 중에도 늘 전방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정치와는 무관한, 그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끝내 행복의 나라에 도달하지 못한 박태주는 '자네에게 진 빚이 많아, 자네는 진짜 변호사야'라는 말로 정인후를 다독인다. 고마움과 인정의 마음을 담은 의미 있는 대사지만, 이내 스크린을 뚫고 나와 현실의 공기와 부딪혀 퍼진다. 배우 이선균의 존재와 교차되는 묘한 감정이다.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영화로 더 이상 그의 신작을 볼 수 없는 탓이다. 좋은 배우를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극중 인물과 하나 돼 벌어지는 뭉클함이 뒤섞여 따로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
역사적 사건을 필두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과 상황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추창민 감독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부터 그 진가가 두드러졌다. <행복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라는 말로 묵직한 스토리텔링을 펼쳤다.
시종일관 절제된 연기를 선보여 더욱 강력한 존재감을 쌓아간 이선균,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부정함에 서서히 달아오르는 조정석, 조소와 조롱을 가득 담아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유재명의 진심이 영화 속에서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다만,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의 선전이 <행복의 나라>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파일럿>으로 흥행에 성공한 조정석의 밝고 경쾌한 캐릭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작품 속 어두운 배경과 진중한 캐릭터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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