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질병 이력만 노출됐다…아버지 울린 '잔인한 청문회' [현장에서]
“아들이 아파서 군대에 못 간다는데 세상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습니까.”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 본관의 대기실에서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건강했다면 당연히 군대에 갔을 것이다. 나도 보내고 싶었다”라면서다. 12일 공개된 당시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유 후보자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장면이 가득하다. 마음의 병을 앓았던 자녀를 후벼 파는, 가히 잔인한 청문회였다.
이날 청문회의 주요 쟁점은 유 후보자 장남 유모씨의 미국 불법체류와 병역 기피 의혹이었다. 유씨는 2006년 3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유학과 단기 여행 등을 이유로 병역판정 검사를 받지 않았다. 이후 2013년 1월부턴 연기 사유가 없는데도 미국에 머물러 병역 기피를 위해 불법 체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유 후보자는 “아들이 질병으로 입원하며 체류 기간 연장 등을 제때 하지 못한 것”이란 이유를 댔다. 청문회 당일 오전엔 제출 의무가 없는 300쪽가량의 진료기록부도 제출했다. 유씨의 내밀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비공개 질의 요청을 했고, 여야는 받아들였다. 진료기록부엔 유씨가 미국 체류 당시 이상 증세를 보여 15일간 강제입원 된 상황이 상세히 담겨있었다고 한다.
청문회에서 유 후보자 주장을 종합하면 2013년 2월 미국에서 홀로 생활하던 장남 유씨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에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이어 법원 판단을 거쳐 15일간 강제입원 됐다. 당시 미국인 의사가 유씨에 대한 질병 판정을 내렸고, 이에 급히 미국에 날아간 유 후보자가 장남을 한국에 데려와 치료를 받게 했다. 해당 질병으로 같은 해 6월 유씨는 군 면제를 받았다.
민주당도 질병으로 인한 유씨의 군 면제에 대해선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진료기록부를 분석한 민주당 위원들은 기록부 말미에 짧게 담긴 ‘부정기적으로 마리화나를 흡입하고 있다’는 문구를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전후 맥락을 자른 채 ‘유 후보자 설명과 달리 유씨는 질병이 아닌 마리화나 흡입으로 체포돼 강제 입원이 된 것’이란 취지로 주장했다. 이에 유 후보자 측은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마리화나 흡입이 불법이었던 만큼, 마리화나가 원인이었다면 입원이 아닌 구금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여당은 유씨의 국내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교수를 불러 발병 시점에 대한 설명을 듣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민희 청문위원장은 “한국에서 병역 판정을 받을 당시 (유씨가) 아팠다는 점은 저희도 인정한다”면서도 “오히려 소견서를 쓴 미국에 있는 닥터를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결국 대기 중이던 유씨 주치의는 답변 기회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다.
결국 의혹 검증보다 공세에 치중한 탓에 ‘비공개’ 하기로 했던 유씨의 질병 이력과 마리화나 흡입 의혹만 노출되고 말았다. 반면에 자신들이 의심하던 유씨의 병적 판정, 병력을 알아볼 기회를 민주당은 스스로 걷어찼다. 유씨 주치의는 12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유씨를 진료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강제입원의 원인이 마리화나라면 그 전후의 유씨 병세가 설명이 안 된다”며 “자극적 소재를 이용해 유씨를 궁지로 모는 듯한 모습이라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위원들은 아들 문제 외에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입장과 서울대 교수로서 연구실 부실 운영 의혹 등 검증을 거쳐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문회가 끝날 무렵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아드님께서 부디 이 방송을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치료가 잘돼서 아드님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시는 데 문제가 없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갖는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지켜본 기자의 생각도 꼭 같았다. 이런 식의 청문회라면 누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가 나라를 위해 공직을 맡으려 하겠는가.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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