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정부가 부추긴 집값 불안

고현곤 2024. 8. 1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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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부동산 시장에는 ‘10년 주기로 집값이 크게 오른다’는 통설이 있다. ‘집값 상승→주택 공급 확대→집값 하락→주택 공급 축소’라는 경기순환 사이클을 한 바퀴 도는 데 10년쯤 걸리는 데서 비롯됐다. 실제로 박정희 정부 후반기와 노태우·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많이 올랐다. 얼추 10여 년 간격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62.2%에 달했다(KB국민은행 통계).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나왔다. 워낙 많이 올랐으니 적어도 윤석열 정부에선 안정 또는 하락세를 보여야 정상이다.

이번엔 10년 주기설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집값이 한두 해 주춤하는가 싶더니 올 초부터 다시 들썩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지난 4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택 공급 절벽이 생기면서 경기순환 사이클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올 상반기 아파트 분양 예정 가운데 실제 공급된 물량은 전국 27%, 서울 13%에 그쳤다. 원자재비와 인건비, 금리가 치솟고 택지 확보도 어려워 주택 건설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약속한 임기 내 270만 가구 공급도 힘들어 보인다.

「 공급 막혀 집값 오르는데 돈 풀어
정책금융 장려하고 대출규제 늦춰
금리인하 압박, 종부세 논의도 패착
혼선자초…안이한건지 대범한건지

주택 공급이 위축되자 서울에서 신고가 아파트가 속출했다. 평생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심이 들불처럼 번졌다. 문재인 정부 때 느꼈던 바로 그 공포심이다. 정부는 시장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뚱하게 돈을 계속 풀었다. 저금리 정책금융을 받으라고 독려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올 상반기 25조5000억원이나 늘었다. 그 와중에 금융위원회는 대출을 깐깐하게 심사하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을 7월에서 9월로 두 달 연기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출 규제를 늦추자 시장은 ‘빚 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들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판단 미스를 인정하고, 당장이라도 DSR 2단계를 시행해야 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안이한 건지 대범한 건지.

정책 실패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도 집값 급락을 막겠다며 정책자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40조원이나 풀었다. 소득 제한을 두지 않는 바람에 부자들까지 이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당시는 고금리 여파로 전 세계가 부동산 침체를 겪을 때다. 우리만 정부 주도로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의 개입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대통령실은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었다”며 노골적으로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금리 조정은 한은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정부가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 집값이 치솟으면 한은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리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통화정책에 섣부르게 개입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 경제 규모의 세계 어느 나라도 정부나 정치권이 중앙은행에 ‘금리를 올려라 내려라’ 간섭하지 않는다. 월권이고, 후유증을 감당할 수 없다.

종합부동산세 완화 논의도 경솔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가세해 종부세 완화를 거론했다. 그러자 ‘똘똘한 한 채’에 수요가 몰렸다. 다급해진 정부는 종부세 완화를 이번 세제개편안에 넣지 않기로 했다. 때늦은 감이 있다. 종부세는 재산세와 통합해 과세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미 2022년 세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 무엇보다 시장이 불안하다. 경제정책은 방향이 맞더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맞는 얘기였는데 지금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시장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고, 유연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아쉽다.

시장과 엇박자로 움직이던 정부는 지난달 중순에야 부동산 대책회의를 열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급조된 회의에서 재탕 대책이 나왔다. 2029년까지 인천 계양, 부천 대장,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23만6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그것도 당장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 밑천만 드러낸 셈이 됐다. 정부는 지난주 서울과 수도권에 21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몇 년씩 걸리는 중장기 대책이다. 시장 불안을 누그러뜨릴지 미지수다. 미리 대비하지 않다가 벌어진 일이다.

정부는 자신감을 앞세우며 “주택 수요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출을 너무 많이 풀어 문제가 됐는데, 이제 와서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간의 정책 혼선과 안이한 대응, 무딘 현실 감각을 감안하면 영 미덥지 않다. 부동산은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한동안 밀려 있었다. 부동산에 관한 한 대통령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느슨하게 움직이며 집값 상승을 용인한다는 느낌을 주면 시장에 질 수밖에 없다. 일관되고 강력한 메시지를 내고, 더 늦기 전에 대출부터 조이기 바란다. 집값 상승은 만병의 근원이다. 양극화와 저출생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정부가 전력을 다해 매달린 엑스포, 의대 정원, 동해 가스전 이런 것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게 부동산이다.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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