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판 ‘외국 대리인 등록법’ 제정할 때다

2024. 8. 1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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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

미국 연방 검찰이 최근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했다. 재미교포 출신인 그는 미국 중앙정보부(CIA),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미국 정보위원회(NIC) 등에서 요직을 역임한 국제정치학자다.

미국 법무부 소관의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에 따라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다고 등록하지 않았다가 기소됐다. 국민의힘 최재형 전 의원이 FARA와 유사한 법안을 지난해 6월에 발의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수미 테리 사건으로 법안 발의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자 국민의힘 최수진 의원이 최근 재차 발의했다.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을 고려하면 이 법안의 의미와 중요성이 더 커졌다.

「 미 검찰 ‘수미 테리 기소’로 주목
한국 안보 위해 더 늦추기 어려워
간첩법상 적국, 외국으로 수정을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5월 29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공개된 기소장을 보면 연방검찰은 FARA에 따라 등록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고 적시했다. 2016년 이후 그가 참석한 세 차례 미국 의회 청문회 자리에서 이런 의무가 제기됐고, 2022년에는 수미 테리가 등록법에 관한 교육까지 받았다고 한다. 2023년 6월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면담에서 한국의 중요 정보제공원임을 인정하고도 관련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편견 없는 독립적인 인물로 자신을 묘사함으로써 미국 의회와 국민이 그를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도록 훼방했다는 것이다. 즉, ‘진실한 증언’을 거부해 ‘공정한 평가’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는 것이 미국 검찰의 시각이다.

FARA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꼭 필요하다. 문호가 개방된 상황에서 외국인의 출입뿐 아니라 행동과 활동에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외국의 법과 규범을 준수할 때 비로소 그 자유가 허용된다는 점이다.

역으로 외국 또는 외국인과 교류하는 한국 국민도 관련된 법을 준수해야 이들과의 자유로운 교류가 허용된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서 외국인과 외국단체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국민 중에도 이들의 업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4월 28일 서울 명동 거리가 외국인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2024.04.28. 뉴시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국가다. 연간 외국인 방문객이 1300만 명을 웃돌고, 설립된 외국 법인도 2022년 기준으로 1835개나 된다. 지난해 한국 체류 외국인은 250만 명을 넘었다. 이들과 교류하거나 이들 외국 기관에 종사하는 한국 국민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도 FARA와 유사한 법을 갖춰야 한다. 명분과 필요성을 이미 충분히 갖췄다고 본다.

‘한국판 등록법’의 목적은 이런 상황을 더 투명하고 책임 있게 관리하고 한국의 안전 보장과 민주적 의사 형성 과정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외국 기관, 외국 정부, 외국 정당, 외국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 외국 국적 보유자가 포함된 단체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때 한국 국민과 고용 또는 지원 형태로 협력하는 사례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들의 관계가 투명해야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한국판 등록법을 만들면 이러한 외국 당사자, 당사 기관, 이와 관련된 한국 국민이 외국 대리인으로 활동할 경우 한국 법무부에 등록하게 해야 한다. 다만 최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 등록 면제 대상은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 발의안에서 등록 면제 대상으로 제시한 ‘종교·학문·예술 또는 과학적 연구와 관련된 활동에만 종사하는 사람’은 등록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한국의 국방에 중요한 동맹국의 국민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수미 테리 사건을 제대로 반면교사 삼자는 것이다.

글로벌 한국의 안보 초석은 한국판 FARA에 기초한다. 그 위에 외국인 간첩법의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행 형법 98조에 간첩죄가 명시돼 있다. 그 적용 대상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에만 국한된다. 냉전 종결과 글로벌 시대에 적국을 명시할 수 없다. 무한 경쟁 시대에 우방을 맹신하는 사고도 시대착오적이다. 기존의 간첩법 적용 대상을 이참에 ‘적국’에서 ‘외국’으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다. 그 시작은 한국판 FARA 제정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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