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건의 시선] 인물이 보이지 않는 미국 대선

채병건 2024. 8. 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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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Chief 에디터

정당의 제1 과제는 인물 배출에 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인데, 선거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 가치가 없다. 정당은 노선으로 뭉친 집단이고, 노선과 가치는 정치인의 말과 입법을 통해 현실화된다. 대중은 그래서 정치인과 그 당의 노선·비전을 동일시한다. ‘정당=인물’이라는 등식은 올해 미국 대선을 지켜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준비된 인물, 새로운 인물 배출에서 미흡했다.

미국 민주당은 대선 3개월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후보를 바꿔 도널드 트럼프와 맞대결에 나섰다. 후보 교체로 지지층을 재결집하며 판 흔들기에 성공했지만,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승리 공식과 비교하면 허전함이 있다.

「 민주, 예측 못 했던 후보 교체
공화, 4년 전 졌는데 또 트럼프
인물 없으면 양극화 의존 선거

미국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왼쪽) 대통령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AP=연합뉴스


2차대전 이후 미국 민주당이 선거를 통해 배출한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그리고 현직인 조 바이든이다.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의 기수로 등장했다. 43세의 젊은 정치인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에겐 영광스러웠던 카멜롯의 전설까지 입혀졌다. 그의 당선은 와스프(WASP) 일색의 미국 주류 리더십에 아일랜드계 가톨릭이 진입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카터는 또 다른 방식의 인물 만들기였다. 미국 정치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의 기억이 계속됐던 1976년 대선에서 카터는 워싱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자신을 내세웠다. 땅콩 농장에서 정직하게 일했던 자신만이 워싱턴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했고 이는 먹혔다. 빌 클린턴은 미국 지도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든 벽촌 아칸소주의 주지사였다. 이런 클린턴의 상대는 걸프전에서 승리해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89%를 찍었던 현직 대통령 ‘아버지 부시’였다. 당시 클린턴 캠프가 내놓은 슬로건이 지금도 회자하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다. 클린턴은 대선 어젠다를 가져오며 이겼다.

오바마는 인물의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보여준다. “저희 아버지는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염소를 키우며 자랐다”고 밝힌 오바마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은 대형 정치 신인이 탄생하는 출발점이었다. 200여년 전 노예였던 흑인이 이젠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자체로 오바마는 “담대한 희망”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들 3명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비해 해리스는 급하게 선거전을 치르는 게 사실이다.

대선 후보 시절 발언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모습. AP


그런데 급조 후보를 상대하는 공화당은 더 이상하다. 민주당과 그 지지층이 대선 패배를 직감하고 현직 대통령을 후보에서 끌어내리는 극한 선택을 할 정도로 공화당에 유리했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승부는 박빙이다. 대선 3개월을 앞두고 후보를 바꿨다면 다 끝난 선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트럼프 승리를 단언하지 못한다. 산토끼로 세를 넓히는 확장형 캠페인으로 신속하게 전환해 승기를 굳혀야 했는데 트럼프는 그걸 하지 못한다.

공화당 역시 지난 4년간 민주당을 상대할 새 인물을 키우지 못했다. 트럼프 현상을 꿰뚫어 보면서도 미국을 갈라치는 그의 스타일을 뛰어넘을 인물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의회 내 트럼프 추종자들이 늘었다. 니키 헤일리, 론 디샌티스 등 경쟁자들은 트럼프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트럼프에 두 차례나 키를 맡긴 공화당이 향후 로널드 레이건처럼 미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보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대선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힘 얘기다. 2017년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에 이어 국민의힘은 대선 경쟁력을 갖춘 인물을 자체 생산하지 못했다. 2017년 대선 땐 무너진 보수 진영을 결집할 인물이 부재해 중구난방 출마로 선거를 치렀다. 이후 5년의 시간을 벌었지만 2022년 대선 역시 국민의힘은 당내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을 보여주는 후보를 만들지 못했다. 대선 후보는 당 바깥에서 컸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왼쪽부터 원희룡, 유승민, 윤석열, 홍준표 후보). 이날 윤석열 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되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금도 국민의힘이 인물을 배출할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 당에 몸담아왔던 예비주자군에 국가 운영의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있는지, 또 새롭게 당에 투입된 인사는 민심을 읽으면서도 난해한 당정 관계를 풀 정치력이 있는지 모두 불투명하다. 물론 정치적 양극화 사회에선 아무리 부족한 후보를 내도 지지층은 표를 줄 테니 사람을 키우지 않아도 양극화에 기대 선거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가 사회를 이끄는 게 아니라 분열에 얹혀가는 것이다. 당위로나 현실로나 정당의 일차적 존재 이유는 ‘인물’을 내놓는 데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두 차례 대선에 이어 3년 후에도 마땅한 대선 주자를 자체적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생명을 다한 정당이나 마찬가지다.

채병건 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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