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별을 보여드립니다

2024. 8. 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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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저녁을 먹고 난 여름밤이면 동네 아이들은 공터에 모였다. 여자아이들은 평상에 앉아서 유행가를 부르거나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했다.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지자, 누군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한 아이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소리를 내어 말해서 모두 웃었다. 우리 대부분의 고민은 돈만 있으면 해결될 일들이었다. 어린 날 시골의 여름 밤하늘엔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이 많았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면 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어린 노동자로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공장에 다니는 형제들은 또래들과 모여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를 불렀다. 여자아이들에게 해변과 갯벌은 서로 상관이 없는 듯 느껴졌다. 간조가 되면 먼 길을 걸어 소래 뻘밭에서 조개를 캐야 했기 때문이었다.

「 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꿈
노년에도 불사조 같은 사람 있어
힘들어도 꿈꾸던 내가 그리워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적으라고 했다. 남자 아이들은 대통령, 변호사, 검사였고 여자 아이들은 주로 선생님, 간호사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왜 그런 꿈을 꾸느냐고 물었다. 모두 우물쭈물했는데 대통령을 적은 아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라는 대답을 했다.

미묘하게 웃던 담임 선생님 표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농부나 노동자를 적어냈으면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미 알 것 다 알았던 우리는 어른들에게 보여주기 ‘모범답안’을 적었을 뿐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었지만, 그 아이의 “마음대로”는 권력을 의미했다. 현실을 일찍 체감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영악했다. 상급학교 진학 대신 공장에 취직한 형제들이 있는 우리는 체념을 일찍 터득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면서 꿈을 크게 가지라는 어른이 있었다. 꿈은 밤하늘의 별처럼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거칠게 어른이 되었다. 천체물리학자는 될 수 없었지만, 여전히 별을 바라보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천장에 모빌이 아닌 별자리 대형 브로마이드를 붙였다. 아이 방은 별자리로 도배가 되었는데 변화를 꾀하기 위해 중간중간 강아지와 고양이 스티커를 붙였다. 아이는 자라서 천체물리학자가 아닌 수의사가 되었다. 대입 원서를 쓸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때 붙인 동물 스티커가 원인이었나 혼자 추측했다. 새로 발견한 소행성에 과학자들이 이름을 지어준다는 사실에 매혹되어 형편에 맞는 천체망원경을 샀지만, 발견은커녕 별자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었다. 돈을 많이 벌면 성능 좋은 천체망원경을 사주겠다던 아들은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소행성 사전 목록을 뒤적이며 별 3047은 ‘괴테’이고 3412는 ‘카프카’이며 1034는 ‘모차르트’라고 떠들면 처음엔 흥미를 보이던 친구들도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과도하게 별에 집착하는 것으로 생각한 친구 하나는 선심 쓰듯 말했다. 천문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말해서 소행성을 발견하면 네 이름으로 작명해 달라 부탁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을 부동산 분양하듯 말하는 친구를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게 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고 이루지 못한 꿈을 의미했다. 사람이 아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울고 웃었으니, 별은 내 삶의 증인이기도 했다.

영국의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를 좋아했다. 그는 천체물리학자가 꿈이었던 사람이었다. 밴드 활동으로 박사 과정을 중단했던 그가 2007년 30년 만에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2014년 잠실운동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Love of My Life’를 부를 때 나는 무대 앞에 서서 감회에 젖었다. 그는 2016년 착륙지점을 못 찾아 탐사가 불가했던 소행성 베누의 이미지를 3D로 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칠순이었다. 덕분에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는 작년에 지구로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베누가 고대 이집트 신화의 불사조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이의 재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몽골의 초원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았고 유럽의 산맥에서도 별을 바라보았다. 우주는 여전히 경이로웠지만 어린 날 내가 평상 위에 누워서 보던 별은 아니었다. 아니 별은 그대로지만 그때의 내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리워한 건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꾸던 어린 날의 나였을 것이다. 그때 이유 없이 혼이 나거나 저녁을 굶으면 눈물로 바라보던 밤하늘에 유성우가 흘렀다. 어쩌면 유성은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물에 별이 번지면 수많은 별똥별이 만들어졌다. 자주 봤다고 생각했던 유성우는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엄마의 어린 시절을 물으면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내가 어릴 땐 별똥별이 한꺼번에 쏟아지곤 했어.”

이제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몇 개 보이지 않는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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