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태양신의 아들이 펼치는 우주의 드라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혼외(婚外) 자식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어느 날 헬리오스를 찾아가 그가 모는 태양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조른다. 헬리오스는 마지못해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파에톤이 끌던 말들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 보다 못한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치고, 파에톤은 바닥에 떨어져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만다.
생상스(사진)의 교향시 ‘파에톤’은 파에톤이 태양마차를 타고 으스대다가 바닥으로 추락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음악은 짧지만 강렬한 서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차가 달린다. 말들이 질주하듯 음악도 일정한 템포로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에톤의 태양마차는 리드미컬하게 제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말들이 난무하듯이 음악도 난무한다. 통제 불능에 빠진 말들이 연출하는 우주의 난장판 쇼가 펼쳐진다. 한바탕 쇼가 펼쳐진 후 음악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이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는 잠시 뒤에 일어날 파에톤의 재앙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파에톤의 추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예비 음모일까. 곧이어 말들이 다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고 결국 파에톤은 추락하고 만다.
비록 죽음으로 끝날지언정 생상스의 음악 속 파에톤은 의기양양하고 역동적이고, 한편으로는 귀엽기까지 하다. 이 곡을 통해 생상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파에톤은 결국 추락하고 마는 파에톤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혀 오던 서자 콤플렉스를 마침내 극복하고 보란 듯이 아버지의 마차를 타고 의기양양 우주 공간을 질주하는 파에톤이 아니었을까. 속도감 있는 생상스의 음악은 파에톤이 펼치는 우주의 드라마를 경쾌한 기분으로 감상하도록 만든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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