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맹목과 분별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단식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작심 발언을 쏟아내어 체육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금메달리스트가 인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협회는 모든 것을 막으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는 비판을 하게 된 장면과, 며칠간 침묵하다 “갈등은 없었다”며 열 장짜리 보도 자료를 서둘러 낸 협회의 모습을 대조해 보는 동안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 ‘눈먼 자들의 나라’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타임머신』과 『투명인간』으로 유명한 웰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은 SF 작가다.
안데스 산맥 중턱에서 조난한 누네스는 절벽에 둘러싸여 고립된 마을에서 깨어난다. 몇 대에 걸쳐 맹인들만 태어나 자기들끼리 문명을 이루고 살아온 마을에 떨어진 것이다. 그들은 ‘본다’는 말을 하는 누네스를 야만인 취급하며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무시한다.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일 것 같지만, 누네스의 쿠데타는 무력하게 진압된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기자 그는 ‘뇌에 병이 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인다. 평생 이 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 운명 앞에, 누네스는 연인의 부탁대로 ‘좋아지기로’, 즉 눈을 찔러 장님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눈이 멀기로 한 날, 아침 햇살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을 보며 마음을 돌려먹는다. 자신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탈출을 감행한 누네스가 절벽 중턱에 오를 무렵 소설은 끝이 난다. 그가 무사히 살아 나왔을지, 아니면 보이는 채로 혼자 죽었을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서.
안세영 선수와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겹겹의 시스템 속에서 “내 꿈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용기를 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사를 통해 더 밝혀지겠지만 다수인 우리에게는 맹목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있으니, 어린 선수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주시해야겠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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