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동양 서예의 기운과 만난 프랑스 추상화, 조르주 마티유

이은주 2024. 8.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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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붉은 화면 위에 굵은 붓으로 대담하게 그린 사각 형태의 먹색 선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걸친 노랑, 빨강의 날카로운 선들이 마치 화면을 요동치게 하는 듯합니다. 프랑스 추상화가 조르주 마티유(Georges Mathieu, 1921~2012)가 1979년에 그린 작품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그림은 ‘정중동(靜中動)’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껏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안정감도 팽팽하게 갖추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동양 예술의 정수’인 서예에서 느껴지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기개도 느껴집니다.

조르주 마티유, Heliopolis,1979, Oil on canvas, 80x100㎝. [사진 페로탕갤러리]

국내에서는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마티유는 프랑스의 유명한 추상화가입니다. 특히 그는 작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서정적 추상을 대표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에서 기하학적 추상이 유행할 때, 그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론을 구축했다지요. 캔버스 위에 손가락이나 물감 튜브로 직접 바르는가 하면, 빠른 속도로 그리는 방식으로 당시 시대에 대한 환멸 등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몸을 쓰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작품의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회화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작품의 의미는 창작의 순간 행해지는 신체의 움직임과 물질적인 재료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이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티유가 동양 예술을 파고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서예의 유서 깊은 전통이 추상화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중국 예술가 장다첸(張大千, 1899~1983) 등과 대담하고, 이를 바탕으로 1956년에 두 장르 간의 관계를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티유의 작업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캔버스에서 정중동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앙드레 말로는 1950년 르네 드루인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보고 “마침내 서양의 서예가가 납셨네!”라고 했다지요. 실제로 그가 흙색 바탕에 검은색으로만 완성한 일부 작품은 말 그대로 서예와 만난 추상화 그 자체로 보입니다.

지금 서울 청담동 페로탕 갤러리에서 ‘조르주 마티유:1960-1970’ 전시(무료, 24일까지)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마티유의 개인전이고, 작품 하나하나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놓치기 아깝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나면 상하이 롱뮤지엄에서는 오는 28일 개막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1980년 한 강연에서 마티유는 ‘나의 발전은 하나의 절규에서 미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깊은 성찰과 탐구로 동양의 예술과 만나 더욱 풍요로워진 추상 회화를 만나볼 기회입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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