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고 샤워까지…캠핑족이 점령한 옛 대관령휴게소
지난 8일 오후 8시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물통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화장실로 몰려들었다.
한 중년 남성은 한손에 1.5L 페트병을, 또 다른 손엔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른 남성은 접이식 카트에 큰 물통을 싣고 나타났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세면대 3개를 차박·캠핑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주차장 한쪽에서 40L를 크기의 ‘굴리는 물통’이 등장했다. 물통 주인은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담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상인 이모(65)씨는 “저녁만 되면 난민촌처럼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는 사람까지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저녁마다 화장실로 향하는 건 야간에 화장실 이용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대관령휴게소 시설을 관리하는 평창군시설관리공단은 차박·캠핑족이 화장실에서 급수·샤워·빨래 등을 하자 지난 3일 처음으로 야간에 화장실 문을 잠갔다. 화장실 문에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이용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공단이 화장실 문을 잠그는 강력한 조처에 나선 건 수돗물 사용량 증가로 휴게소 영업장에서 단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휴게소에서는 지난달 25일 오후 4시부터 1시간가량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아 영업에 차질을 빚었다. 휴게소에는 14개 상점이 입점해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휴게소 물 사용량은 849t에 달했다. 지난해 7월 사용량이 342t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500t 이상이 증가한 수치다.
휴게소는 지하수를 쓰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돼 있다. 10t 저수조 3개가 설치돼 있는데 물을 한꺼번에 쓰면 채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지하수를 모터 펌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라 물을 많이 쓰면 그만큼 전기료도 증가한다. 전기료는 평창군시설관리공단이 부담한다. 차박·캠핑족이 내야 할 물값을 평창 주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셈이다.
쓰레기 처리도 골칫거리다. 7월 한 달간 쓰레기를 치우는데 75L 종량제 봉투 196개와 80L 재활용 마대자루 177개를 썼다. 지난해 7월에 쓴 종량제 봉투는 92개, 재활용 마대자루는 67개였다.
평창군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차박·캠핑을 위한 급수 등으로 인해 상인들과 다른 일반 관광객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며 “차박·캠핑은 허가된 캠핑장을 이용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관령휴게소 화장실로 차박·캠핑족이 몰려드는 건 인근 대관령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시설 노후화로 문을 닫으면서 외부 화장실마저 지난 6월 철거됐기 때문이다.
평창군 관계자는 “정화조와 전기·지하수 시설을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함께 써왔기 때문에 외부 화장실 기능을 유지할 수 없어 철거했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 수돗물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이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드는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공중화장실법 제14조 4항(금지행위)에 따르면 위생적인 화장실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 등은 시·군·구 조례로 정한다. 경남 창원시와 통영시는 조례를 통해 공공 수도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한편 대관령은 해발 830m로 8월 평균 기온은 19.7도다. 1971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폭염 일수는 단 하루도 없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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