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청약 부추기는 분양가상한제 무용론
9만3864명.
서울 서초구 반포 ‘래미안원펜타스’ 청약에 몰린 인파다. 전용 84㎡ 분양가가 23억원에 달했지만 무려 10만명에 육박하는 실수요자가 과감히 통장을 썼다. 이유가 있다. 같은 평형 주변 시세가 40억원을 넘다 보니 당첨만 되면 단숨에 시세차익 20억원가량을 노릴 수 있는 덕분이다. 최근 청약을 마감한 서울 강남구 ‘래미안레벤투스’도 71가구 모집에 2만8611명이 청약에 나서면서 평균 청약 경쟁률이 402.97 대 1에 달했다. 이 단지 역시 주변 시세보다 5억원 이상 저렴해 ‘로또’로 불린다.
아파트 청약 열기가 ‘광풍’으로 치달은 것은 분양가상한제 영향이 크다는 진단이다. 정부가 주택 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로또 청약 등 각종 부작용을 불러오면서 더 늦기 전에 분양가상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부동산 상급지’ 인식에 투기 수요 몰려
분양가상한제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땅값, 건축비 등을 더해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1997년 분양가상한제 규제가 도입됐는데 1999년 분양가 전면 자율화로 풀렸다.
하지만 분양가 자율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집값이 치솟고 고분양가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주택 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2005년 분양가상한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2017년부터는 공공택지뿐 아니라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됐다.
이후 정부가 분양가상한제 규제를 풀면서 지금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 용산구 등 민간택지와 공공택지에만 적용되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 지역은 항상 부동산 투자 열풍이 뜨겁다.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공급돼 당첨만 되면 곧장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차익을 볼 수 있다 보니 매번 ‘로또 청약’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7월 1~16일 기준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은 평균 110.2 대 1이었다. 총 6개 단지, 2723가구 모집에 30만155명이 몰린 결과다. 같은 기간 진행된 분양가상한제 미적용 아파트 청약은 4484가구 모집에 7만7617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17.3 대 1에 그쳤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와 미적용 아파트 청약 경쟁률 격차가 6.4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특히 공사비 상승 여파로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인기가 두드러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평균 4190만원으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4000만원을 돌파했다. 이에 비해 분양가상한제 단지는 시세보다 저렴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은 ‘집값 급등 우려가 큰 상급지’라는 인식을 줘 오히려 투기 수요 쏠림 현상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도 서울 강남권에 공급하는 단지들은 최소 수백에서 수천 대 1 경쟁률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조합원 갈등의 불씨가 돼 사업 지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공택지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건설사들도 수익이 줄어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공공택지에서는 분양가상한제로 공사비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해 아예 사업이 취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자잿값 인상으로 공사비는 급등했는데 분양가상한제 지역에서는 공사비가 제한돼 수익성이 떨어지다 보니 시공사들이 사업을 속속 포기하는 양상이다.
일례로 경기도 파주 운정3, 4블록 950가구는 사전청약까지 마쳤지만 시공사를 찾지 못해 결국 사업이 취소됐다. “급등한 공사비에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시행사 DS네트웍스 해명이다. 이를 포함해 올해에만 인천 가정2지구 B2블록(우미건설), 화성 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리젠시빌주택) 등 5개 지구에서 사업 취소 물량이 나왔다.
특히 건설업계에서는 분양가상한제의 기본 항목인 택지비 산정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분양가를 결정할 때 택지비 기준이 ‘토지 분양 당시 가격’으로 제한된 탓이다. 민간 건설사가 토지 매입 후 땅값이 올라도 이를 반영하지 못해 사업이 늦어질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다. 반면 공공 부문이 주택을 공급하면 택지비 산정 기준이 ‘분양 당시 감정평가액’으로 정해져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공공 부문이 공급한 단지는 3.3㎡당 1181만원의 택지비를 인정받아 분양가를 1671만원까지 높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인근에서 민간 건설사가 공급한 단지는 택지비를 3.3㎡당 919만원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분양가도 공공보다 낮은 1597만원에 책정됐다. “민간 부문이 공공 부문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역차별을 피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채권입찰제로 과도한 시세차익 막아야
전문가들은 분양가상한제 도입 취지인 집값 안정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부작용부터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분양가상한제가 주택 공급 위축을 불러와 오히려 기존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로서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할 경우 강남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아 주변 시세를 자극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부랴부랴 ‘분양가상한제 관리체계 개선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인데 뚜렷한 해법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청약 당첨자가 온전히 시세차익을 가져가는 청약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청약 당첨자가 채권 매입 형태로 시세차익을 환원하는 ‘채권입찰제’ 도입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채권입찰제는 아파트 청약을 받을 때 청약 희망자가 채권 매입 희망가를 써내면 금액이 높은 순서로 당첨자를 정하는 일종의 경매 제도다. 채권입찰제로 거둬들인 자금은 주택도시기금에서 임대·분양주택 건설, 주택 구입자금, 전세자금대출 지원을 비롯한 공공주택 공급 재원으로 활용된다. 청약 당첨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운 좋게 당첨된 개인이 아니라 공공 주거 안정에 쓰일 수 있다는 의미다.
“청약 당첨자의 의무 거주 기간을 최소 3년 이상으로 늘려 로또 청약 진입 문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멀리 보면 서울, 수도권 인기 지역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어 새 아파트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 청약 광풍을 막는 해법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진단도 눈길을 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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