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새 통일담론 발표 앞두고…‘즉강끝’ 신원식 전면에 세웠다, 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새로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체제’를 발표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핵심 국익과 관련한 전략 과제들을 각별히 챙기기 위해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두기로 하고 우리 정부 초대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신임 장호진 특보는 북·미 관계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북핵, 러시아 등 4강 외교에 두루 밝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라면서다.
없던 외교안보특보 자리까지 만들어 장 실장을 곧바로 임명한 건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외교안보 라인 교체가 ‘문책성 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다만 윤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를 앞두고 ‘친정 체제’를 구축해 여소야대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외교안보 라인을 물갈이 대상으로 삼은 배경은 뚜렷하지 않다. 특히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윤 정부의 새로운 통일 담론 발표를 앞두고 정부 내 대표적 대북 강경론자인 신원식 신임 실장을 내정한 건 대외적 함의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국가안보실장 교체는 정부 안팎에서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짙다. 일각에서는 장 실장이 북·러가 군사동맹에 준하는 새 조약을 체결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윤 정부 초대 주러 대사 출신인 그가 대러 관계의 전략적 관리를 지나치게 중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교체 사유로 보기엔 부족한 데다 사실관계가 정확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는 한 달여 전부터 북·러의 협력이 도를 넘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조약 체결 직후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재검토 등 곧바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를 토대로 준비해 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신원식 내정자 역시 국방부 장관으로서 최근 불거진 국군 정보사령부의 블랙 요원 명단 등 기밀 유출, 하극상 등 조직 기강 해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장 실장의 교체도, 신 신임 실장의 내정도 딱 떨어지는 사유는 보이지는 않는 셈이다. 내부 알력 다툼 가능성 등 뒷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윤 정부 출범 2년 3개월 만에 벌써 네 번째 국가안보실장 임명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있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너무 잦은 교체는 정책 운용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안보 정책은 무조건 강경하게만 가선 안 되고 강한 군사력과 유능한 외교, 유연한 태도, 정보 능력이 종합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현 정부의 역대 안보실장의 평균 재임 기간이 6개월 안팎인데, 지금 시점에서 왜 안보 총책임자를 바꿔야만 하는지, 정부가 납득시켜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고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인사 발표 시점을 보면 의문은 증폭된다. 불과 사흘 뒤인 8.15 광복절 경축 기념식에서 윤 정부의 새 통일 담론 공개를 앞둔 때라서다. “김정은 정권의 종말” 등을 공언해 온 신 내정자를 안보실장에 낙점한 것 자체가 북한을 향해 화해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전에 강경책을 먼저 꺼낸 게 될 수 있다. 민족 개념을 폐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대남 단절을 선언한 북한을 향해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10월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신 내정자는 대북 응징에서 ‘즉각, 강력히, 끝까지(즉,강,끝)’ 기조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게 되면 없어지는 것은 김정은 정권일 것이요, 얻어지는 것은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통일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무인기(드론) 도발을 한다면 우리도 북한 주요 지역에 무인기를 보내 사진을 찍은 뒤 전 세계에 공개하겠다. 김정은이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도발해보라”고 말했다.
물론 ‘국방부 장관’의 옷을 입었을 때와 전략적으로 대북 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의 입장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김용현 국방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강경파 군인들의 전면 배치가 주는 상징성은 크다. 정진석 실장은 이날 인선을 발표하며 김용현 장관 후보자 임명을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내정보다 앞서 밝혔다. 국가안보회의의 상임위원장을 맡는 국가안보실장이 상임위원인 국방부 장관보다 서열상 앞서고, 육군사관학교 기수로도 신 내정자가 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다소 어색한 순서인 셈이다. 이에 대통령실이 이번 인사를 통해 군에 힘을 실어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한·미 동맹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 ‘미국통’인 전임 김성한-조태용-장호진 실장 체제에서 상당한 대미 성과를 냈다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이뤄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2022년 5월), 12년만의 국빈 방미와 워싱턴 선언 도출(2023년 4월) 등이다.
하지만 오는 11월 미 대선 이후 대비가 시급한 시점에서 ‘군인 출신 안보실장’ 체제 출범에 의구심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간 박빙 구도가 이어질 전망인 가운데 양측 캠프를 접촉할 외교적 네트워크와 정보 수집 역량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귀환’ 시 확장억제 등 지금까지 이룬 한·미동맹의 성과나 주한미군 등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번 인사에서 한·미 동맹을 비롯, 다양한 방면의 외교적 파급 효과 등을 고려했느냐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안보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안보라인을 다시 교체해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미국 대선을 3개월 앞둔 인사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며 “군 출신을 안보실장으로 앉힐 수는 있지만, 인사에는 합리성이 있어야 하는데 다소 의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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