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비긴 어게인 |“사무라이들이 전쟁 나갈 때 이걸 마셨대” 말차는 어쩌다 ‘사무라이의 차’가 되었나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4. 8.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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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음악영화를 꼽으라면? 질문이 너무 모호하고 대상이 너무 방대하려나? 그럼 다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음악영화 감독을 꼽으라면?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까지 3연속 안타를 친 존 카니 감독이 아닐까?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모두 주옥같은 영화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원스’는 8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은 ‘비긴 어게인’. 전세계에서 한국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했다는 ‘비긴 어게인’은 키이라 나이틀리(그레타 역)와 마크 러팔로(댄 역)가 지극히 사랑스럽게 나오는 영화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영화로 보는 차 이야기’에 벌써 3번째 등장이다. 러시아 차 이야기와 연결되는 ‘안나 까레니나’와 얼그레이(Earl Grey) 홍차의 그레이 공작을 볼 수 있는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에서도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작곡가면서 노래도 부르는 영국 여성 그레타는 역시 노래를 부르는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 무려 마룬5의 보컬이신 분)가 뉴욕의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함께 뉴욕으로 온다. 넓은 집과 최상의 녹음 환경을 제공받은 둘은 행복의 절정을 누린다.

너무 행복했을까. 한달 동안 LA로 녹음 출장(?)을 다녀온 데이브는 그 한달 동안 음반사 직원과 새로운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레타는 가열차게 데이브에게 싸대기를 날리고, 짐을 싸서 무작정 거리로 나온다. 역시 영국인이지만 지금은 뉴욕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친구 스티브를 찾아간 그레타. 그레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스티브는 저녁에 뮤직바에서 노래 불러야 한다며 나가려다, 그레타가 너무 걱정된다며 그녀를 뮤직바에 함께 데리고 간다.

“여러분 오늘 이곳에 제 친구가 와 있습니다. 저처럼 멀리 집을 떠나온 친구죠. 괜찮으시다면 그녀의 노래 한곡을 들려드릴까 해요. 그레타, 무대로 올라와.”

“최악의 아이디어”라고 머리를 저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그레타. 그리고 열화와 같은 반응? 설마~ 잠시 집중하던 관객들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기 바쁘다. 그런 분위기에서 노래를 끝마친 것이 신기할 정도다. 노래가 끝나고 다들 건성으로 박수칠 때, 진심으로 환호하는 한 사람이 있다. 술에 전 댄.

“자기는 송라이터지 사무라이가 아니야”
“그것도 일종의 사무라이거든”
한때 잘 나가는 스타 음반 프로듀서이자 제작자였던 댄은 7년여 동안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했고 그날 아침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잘렸다. 1년여 전 집을 나와 혼자 싸구려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댄은 재기는커녕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걱정스럴 정도다. 그 댄이 그레타의 노래를 알아봤고, 댄은 그레타에게 함께 음반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남자친구 데이브가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냐”며 부르는 곡 ‘Lost Stars’를 위시해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A step you can’t take back’ ‘Like a Fool’ ‘Coming up roses’ ‘Did It Ever Cross Your Mind’ 등 모든 곡이 주옥같으니 아직 안 들어보신 분들은 꼭 들어보시길!!!

이쯤에서 독자 분들은 슬슬 궁금해지실 터. 이런 스토리의 음악 영화에 무슨 차? 에이 설마~ 그런데 정말 나온다.

“이게 뭐야?”

“말차.”

“말차?”

“사무라이들이 전쟁 나갈 때 이걸 마셨대.

항산화성분이 400가지나 들었대.”

“우웩~ 완전 오줌 맛이야.”

“난 좋은데.”

“자기는 송라이터지 사무라이가 아니야.”

“그것도 일종의 사무라이거든.”

그냥 대사만 ‘말차’가 아니다. 진짜 말차 다완에 제대로 마신다. 각본까지 직접 쓴 존 카니 감독이 ‘말차 쫌~’ 아시는 분 같다.

말차 모르는 사람도 있냐고? ‘말차’ 단어를 안다고 아는 게 아니다. ‘항산화성분이 400가지나 들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차를 아는 것도 아니다. ‘사무라이들이 전쟁 나갈 때 이걸 마셨대’ 정도 알아야, ‘말차 쫌~ 아시는 분’ 반열에 들 수 있다.

일본 다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센노리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을 꼽는다. 센노리큐는 일본 다도의 시초쯤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지금의 통일 일본을 만든, 이른바 일본 역사 3걸이다. 그리고 센노리큐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두 사람의 차 선생님 겸 다두(茶頭:절에서 마실 차를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였다.

노부나가는 개인적으로도 열렬한 다구 수집가였을 뿐만 아니라, 다도를 통치에도 활용했다. 군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 노부나가는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야망을 대담하게 추진해 나간다. 각종 전투에서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하사할 영지가 부족해지자 고민하던 노부나가는 영지 대신 자신이 아끼는 다구와 다회를 열 권리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당시 말차를 격불해 마시는 다완 중 최고로 친 것이 일명 조선 막사발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이도다완’인데 이 이도다완 하나 가격이 집 한 채에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 또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다회를 개최할 수 있게 허락하면서 다회가 곧 포상이나 훈장의 대명사가 됐다. 노부나가 밑에 있던 히데요시도 1578년 노부나가로부터 다회 개최권을 받는다. 당시 히데요시가 ‘밤낮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나.

노부나가가 얼마나 열렬한 다구 수집가였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일본 다도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으로 ‘마쓰나가 히사히데’라는 사무라이가 있다. 일본은 중세 시대부터 천황은 상징적이면서 신앙적인 존재였다. 실권은 막부(바후쿠)의 쇼군이 갖고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힘을 잃은 후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섰지만 무로마치 막부도 위세를 잃으면서 사무라이 봉건 영주들이 전국 곳곳에서 할거하며 하극상을 반복하는 전국시대가 도래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서쪽을 통일하면서 1575년 무로마치 막부도 막을 내린다.

히사히데는 무로마치 막부 말기, 유력 다이묘(영주) 중 한명이었다. 당시 히사히데의 권세가 엄청나 수많은 귀족과 고관이 선물보따리를 들고 히사히데에게 줄을 대기 바빴다고 전해진다.

히사히데 하면 바로 따라붙는 단어가 ‘히라구모(ひらぐも:平蜘蛛)’다. 우리 말로는 ‘납거미’다. 히사히데가 갖고 있던 다부(찻물을 끓이는 솥)의 이름인데 솥의 모양이 거미가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인 모습이 떠오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어쨌든 그 ‘히라구모’는 당대 일본 최고의 명물 다구로 유명했다.

1577년 노부나가가 세를 잃고 쪼그라든 히사히데의 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히사히데에게 화친 안을 보낸다. “히라구모를 성 밖으로 내보내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겠다”고. 결국 히사히데 성을 공격한 이유가 ‘히라구모’였던 셈이다. 그러나 히사히데는 “히라구모와 내 목 둘 다 노부나가가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 폭약을 터뜨려 히라구모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스토리는 당시 일본에서 명물 다구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였는지, 또 명물 다구를 손에 넣기 위해 권력자들이 얼마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부나가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노부나가 못지않은 다구 수집가면서 차 애호가였다. 그가 일으킨 임진왜란이 명목은 “명을 치겠다”였지만, 실제로는 조선 도공을 잡아오기 위해서였다는 얘기는 익히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로도 많은 사무라이들이 다도에 심취했고 일본 다도 유파 중 엔슈류 등 수많은 유파가 모두 무사들의 다도 유파다.

만화 ‘갤러리 페이크’에 나온 ‘히라구모’에피소드. 뒤로 수많은 명품을 불법적으로 판매하는 스토리다. 2005년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히라구모를 성 밖으로 내보내면 살려주겠다”
당대 최고 명물 다구 ‘히라구모’ 둘러싼 전쟁
중국과 한국에서 차는 주로 선비의 문화였다. 신선처럼 차 한잔 마시며 시를 읊고 하는 게 그들의 풍류였다. 그런데 왜 유독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의 문화가 됐을까.

우선 일본 지배층이 사무라이였던 게 크다. 전쟁터에서 매일 전투를 해야 했던 사무라이들은 다도가 그들의 부족한 교양과 문화적 소양을 채워줄 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뿐인가. 내일 치를 전투에서 과연 내 머리가 내 목에 붙어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감을 다스리는 데도 차는 효용이 컸다. 긴장감이 극도로 휘몰아치는 와중에, 경건하게 말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은 그들에게 곧 구원의 시간이며 도의 시간이었을 터. 그래서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한 구절 읊어대며 편안하게 마시는 차 한잔의 취향이 아닌, 차에서 도를 구하는 ‘다도’가 됐다. 이런 뒷얘기를 제대로 알지 못으면, 사무라이의 문화인 말차 문화와 다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사무라이들이 전쟁 나갈 때 이걸 마셨대” 라는 대사가 이해되셨을지.

“자기는 송라이터지 사무라이가 아냐”라고 말하는 그레타에게 데이브는 “그것도 일종의 사무라이거든”이라고 답한다. 하긴 일생일대의 앨범 녹음을 앞둔 데이브에게 그 출정은 사무라이의 출정과 다름 없을 테다.

사무라이와 데이브만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 속으로는 매일 나만의 말차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나만의 전쟁터로 나가며. 그리고 매일 나만의 전쟁을 치르며.

요즘은 말차를 말차 그대로 마시는 대신, 크림을 넣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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