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쉬라'는 지침만... 정작 작업은 멈추지 않아"
[윤성효 기자]
▲ 8월 12일 온도 측정. |
ⓒ 윤성효 |
12일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시각, 경남 지역 한 도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던 한 도로보수원의 말이다. 대여섯 명이 함께 움직이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힘들고 지친 모습이었다. 여름철 도로 옆에 난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마다 해왔지만, 올해는 특히 더 심한 폭염에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20여 년 가까이 일했다고 소개한 한 도로보수원은 "땡볕에서는 잘 쉬지도 못 한다. 빨리 작업하고 좀 쉬고 싶어도 쉴만한 곳이 없다"며 "기껏해야 도로에 세워놓은 차량으로 인해 생긴 그늘 정도다. 쉴 곳이 마땅하게 없으니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보다는 빨리 작업을 끝내고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 들어가서 쉬든지 해야 할 것 같다"라며 "요즘 같은 폭염에는 야외작업 자체가 너무 힘들다"라고 덧붙였다.
폭염 강타해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 그 이유
올해로 8년째 전깃줄·전봇대 설치 작업하는 건설노동자 정아무개(52)씨는 먼저 "너무 힘들다"는 말부터 꺼냈다. 전기시설 관련 노동자들은 정부에서 마련한 폭염 관련 안전 기준이 있지만 실정에도 맞지 않고 지키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가면 잠시 쉬라고 했지만, 작업 특성상 쉽지 않다는 것. 전기 관련 작업은 (정전)시간이 정해져 있고, 양어장이나 비닐하우스에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으면 동·식물이 죽을 수 있어서 제때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아무리 더워도 일손을 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주로 트럭에 작업대를 세워 전신주까지 올려 작업하고, 차량은 2대 내지 4대가 한 조를 이뤄 동시에 작업한다. 정씨는 "전깃줄 작업을 하는 현장은 바로 햇빛을 받고 그늘도 없이 노출돼 있다"며 "조별로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하기에 한 쪽이 덥다고 쉴 수도 없고, 동시에 쉬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작업복과 관련해 그는 "불이 잘 붙지 않는 방염복을 입고 작업하는데, 바람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면서 "꼭 추운 날 입는 군복 같다. 또 이 옷은 땀이나 물에 젖으면 갑옷처럼 뻣뻣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력공사에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쉬어야 한다는 기준이 담긴 공문을 발송한다"면서 "그런데 공문만 내려 보내고 작업중지권 발동은 하지 않는다. 공문은 그야말로 책임회피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 폭염 속에 12일 경남지역 한 도로에서 풀베기 작업하는 노동자. |
ⓒ 윤성효 |
고용노동부는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을 통해 폭염특보 발효시 매시간 10~15분씩 휴식을 하도록 했다.
체감온도가 31℃를 넘으면 사업장은 폭염 단계별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폭염 단계별로 매시간 10분 이상 휴식을 제공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단축 또는 중지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체감온도 31℃ 이상이면 노동자에게 폭염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시원한 물과 그늘(휴식공간), 바람을 준비해야 하며, '쿨토시' 등 보냉용품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현장에서는 고용노동부의 지침대로 되지 않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정국장은 "조선소나 건설현장은 작업을 언제까지 마쳐야 하는 기간이 있다 보니, 폭염이 닥치더라도 마음대로 쉴 수 없도록 돼 있다"며 "가령 바람이 많이 불면 타워크레인 작업중지를 하듯이 폭염에도 작업중지를 해야 하는데, 현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시행령) 등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최근 폭염 때 노동현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오는 22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여름에 더욱 바쁘고 힘든 노동자'라는 제목의 토론회도 연다.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해서 일하는 에어컨 설치 노동자는 "여름에 에어컨 설치·수리가 매우 급증하며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제대로 쉴 수가 없다"라고, 여름의 휴가철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축산 운송 노동자는 "폭염 속에 소 무게 약 100kg, 돼지 약 40~50kg 정도의 무게를 배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여름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환경 미화원 노동자는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 등의 냄새는 매우 심하고 부패가 너무 심한데, 무더위 때문에 더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김병훈 국장은 "한낮에 온도를 재어 보기 위해 바깥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 있었다. 잠시 그늘에 있기도 했지만 계속 햇볕에 노출돼 있으니 나중에는 두통이 오더라"라며 "서 있기만 해도 그런데 폭염에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나. 노동 현장은 고용노동부의 권고가 실제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연령을 비롯해 온열질환 취약계층을 고려해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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