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제안해 탄생한 영화, 제목이 '리볼버'인 이유
[이학후 기자]
▲ 영화 <리볼버> 스틸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2년 후, 출소한 하수영은 임석용이 사망한 가운데 7억 원은 사라지고 아파트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걸 알게 된다. 하수영은 자신을 찾아온 유흥업소의 마담 정윤선(임지연 분)을 앞세워 과거 상관인 민기현(정재영 분)이 건넨 리볼버를 들고서 약속한 보수를 받기 위해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을 차례로 만난다. 그 과정에서 앤디, 정윤선, 조 사장(정만식 분), 신동호 형사(김준한 분), 이스턴 프로미스의 본부장(김종수 분), 그레이스는 각각 다른 속내를 드러낸다.
영화 <리볼버>는 전작 <무뢰한>(2015)으로 제6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바 있는 오승욱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리볼버>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뢰한>의 주연이었던 전도연 배우는 차기작이 늦어지는 오승욱 감독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동안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했기에 "밝고 경쾌한", "저예산으로 한 달 안에 찍을 수 있는" 영화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각본 작업에 들어간 오승욱 감독은 전도연 배우가 갖고 있는 품격과 공감 능력을 생각하며 '강철의 심장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서사를 썼다고 밝힌다.
"<리볼버>의 하수영에게도 그런 점을 반영하고자 했다.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넘쳐흐르지만, 그것을 서둘러 표출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격을 갖춘 게 느껴지는 사람." - <씨네21> 인터뷰 중에서
오승욱 감독은 전작 <킬리만자로>(2000), <무뢰한>에서 형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번에도 주인공의 직업은 전직 경찰이다. 그리고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 빛과 어둠, 경찰과 범죄자란 두 세계에 발을 걸친 회색의 인물로 그려진다.
차이점도 뚜렷하다. <킬리만자로>의 경찰 해식(박신양 분)은 고향에서 쌍둥이 동생 해철(박신양 분)인 척하고 <무뢰한>의 재곤(김남길 분)은 용의자의 애인 혜경(전도연 분)을 속이기 위해 단란주점 영업부장 이영준으로 위장한다.
이들이 다른 존재로 행세하다가 딜레마에 빠졌다면 <리볼버>의 하수영은 결을 달리한다. 그녀는 오직 하나의 목표, 바로 자신의 몫이었던 7억 원과 아파트를 되찾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속이지 않는다.
▲ 영화 <리볼버> 스틸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하수영이 대가를 찾기 위해 직진하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총구에 하나씩 장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 보도자료 중에서
<리볼버>는 하수영이 자신의 돈과 아파트를 되찾기 위한 여정이다. 그리고 "총을 쏠 것인가, 말 것인가?" 계속 갈등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총을 난사하던 <킬리만자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경찰들이 나오던 <무뢰한>을 떠올린다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제목을 보고 강렬한 액션을 기대했던 분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리볼버>의 박민정 피디는 "하수영은 공격할 생각이 없는데 다른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과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수영을 궁지로 몰아가려 안간힘을 쓴다"고 말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리볼버는 하수영이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 보고 싶어" 건넨 민기현의 미끼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리볼버>는 <사망유희>의 무술 고수들과 맞서는 액션의 사망탑을 변주한, 약속을 저버린 무뢰한들과 맞서나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윤리의 사망탑인 셈이다. 오승욱 감독은 죄를 지은 사람이 더 이상 죄를 안 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에 끌린다고 부연한다.
"저는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죄를 짓지 않고 뭔가를 해냈을 때,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면모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간들을 늘 그리고 싶었고 이번에 그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 - <씨네플레이> 인터뷰 중에서
<킬리만자로>의 해식은 죽음을 맞이하며 끝나고 <무뢰한>은 재곤에겐 죽음이 드리워진 채로 막을 내린다.
이와 달리 <리볼버>의 하수영은 자신의 승리를 위해 나아가고 마침내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는 새로운 미래를 얻는다. "밝고 경쾌한" 내용을 원했던 전도연 배우에게 오승욱 감독은 일반적으로 기대하거나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밝고 경쾌한" 영화로 답한 것이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엇박자 리듬의 코미디가 가미된, 장르적 쾌감과 거리가 먼, 이전의 오승욱표 영화와 다른 "밝고 경쾌한" 영화로 말이다.
"<리볼버>는 익숙하지 않은 영화다. 형식,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모두 조금씩 색다른 방식을 모색했다. 독특하고 기묘한 재미가 담긴 작품으로서 관객들이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작품으로 비쳐지면 좋겠다." - <씨네21>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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