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골프치는 장면은..." 10.26 다룬 감독의 속내

이선필 2024. 8. 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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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이선필 기자]

<남산의 부장들>(2020), <서울의 봄>(2023)에 이어 이 영화다. 근 4년간 한국 현대사, 그중 서슬 퍼런 공안정국과 독재의 시기인 1980년대 초반을 다룬 영화들이 세 편이나 등장한 게 과연 우연으로 갈음하고 말 일일까. 14일 개봉을 앞둔 <행복의 나라>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앞선 영화들이 실제 사건의 극적 확장을 꾀한 것과 달리 상상력을 과감하게 발휘했다는 사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창민 감독은 시대성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10.26 사건의 주동자로 널리 알려진 김재규, 차지철이 아닌 박흥주 대령을 영화로 소환했다. 극중 박태주 대령(이선균)으로 극화된 해당 인물과 그를 적극 변호하면서 어떤 사명감을 갖게 되는 정인후 변호사(조정석)가 이야기의 중심이 됐다. 오히려 전두환을 상징하는 전상두(유재명)나 대중들이 널리 알만한 굵직한 인물들은 주변 캐릭터가 되어 영화에 등장한다.
 영화 <행복의 나라>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
ⓒ NEW
감정의 절제

알려진 대로 <행복의 나라>는 이미 기획 개발 중이던 시나리오에 추창민 감독이 합류한 경우다. 85학번으로 전두환 독재에 국민적 저항이 여기저기서 터지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처음부터 박흥주 대령을 다루진 않았지만, 밀실 재판의 희생양이 됐던 박 대령이야말로 당시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제작사 및 작가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제가 대구에 살았는데 서울에서 친척이 오셔서 광주 항쟁 이야길 하신 적이 있다. 제 아버지께선 말도 안 된다며 안 믿으셨다. 저도 시간이 지나 그게 사실임을 알게 됐지. 그 시대는 그랬다. 감추고 가릴 수 있는 시대를 누군가는 걸어왔다. 단순히 1980년대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권력에 저항하고 있잖나. 그걸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좋았던 게 그 시대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일제 강점기나 공산당 얘길 하듯 제겐 독재와 최루탄 가스, 누군가의 죽음들이 이어지는 시대를 살았다. 지금 젊은 분들에겐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느껴지겠지만, 한 번쯤은 그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 그래서 박흥주 대령의 편지나 유서 등을 영화에 넣지 않은 것이다."

추창민 감독은 "결코 박흥주 개인을 미화했어도 안 되고, 개인사를 정서적으로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말을 이었다. 전두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봄>에서 배우 황정민이 표현한 전두광과 <행복의 나라>에서 유재명이 표현한 전상두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게 된 이유기도 하다.

"황정민씨의 전두광과 유재명씨의 전상두는 차이가 크다. 전자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고, 욕망을 직접 드러내지. 관객에게 분노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전상두는 되게 점잖다. 하지만 개인 공간에선 욕망을 드러낸다. 훨씬 더 숨어서 본인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 야만의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선 전두광처럼 포악함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뒤에서 수많은 비수를 들고 있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 NEW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 NEW
호불호 갈리는 골프장 장면의 비밀

관건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골프장 장면이다.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10.26 사건 재판을 끌고 간 전상두가 골프 연습을 하는 곳으로 정인후 변호사가 직접 찾아가 일갈하는 그 장면이다. 다른 인물과 달리 가공의 인물인 정인후 변호사의 그 행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너무 실제와 다른 내용이기에 지나친 극화라고 비판할 여지 또한 있다. 이에 추창민 감독은 할 말이 많았다.

"그 장면은 판타지였다. 제겐 중요한 장면이었다. 한번쯤 세상을 향해서 영화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유재명, 조정석 배우도 좋아해 줬다. 보신 분들 중에선 말이 되냐는 분도 계시는데 감정적으론 분명 누군가는 항거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드러나진 않지만 밑바닥에서 권력을 향해 부당하다고 소리치는 걸 조정석 배우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선택으로 보면 어려운 행동이지만, 시대를 봤을 때 부당함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골프장을 택한 이유는 전두환씨가 골프를 좋아하기도 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마치 힘없는 사람을 골프공처럼 갖고 노는 걸 보이고 싶어서기도 했다. 전씨가 12.12 쿠데타 이후 미군 골프장을 그렇게 자주 갔다더라. 흔히 전두환에게 갖고 있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잖나. 근데 인간이란 게 드러난 외형 말고 내면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도 있잖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책을 영화를 준비하며 다시 읽기도 했다."

추 감독은 영화가 할 수 있는 기능들을 언급하며 판타지성을 재차 강조했다. "멜로나 코미디, 혹은 액션 영화를 볼 때처럼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영화화할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사실과 허구의 고리가 헐거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화가 100프로 사실의 구현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파급력이 있기에 최대한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제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찍고 난 뒤에 광해군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 그래서 이 영화에선 재판 장면이 중요했다.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 군사독재 시대 때 재판은 이랬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유재명과 조정석 그리고 이선균

전상두 역을 한 차례 거절했던 배우 유재명은 그런 의미에서 감독에겐 중요한 존재였다. 중년의 나이에 인지도가 있고, 전상두를 제대로 표현해 줄 후보군이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는 게 추창민 감독의 생각이었다. "거절하셨지만 회사를 통해 배우가 계속 관심 있어 한다는 말을 듣고 매달렸다"며 그는 웃어 보였다.

"정인후 변호사는 처음부터 정의로운 인물이면 재미 없을 것 같았다. 실제 인권변호사분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인데, 처음엔 속물적이지만 정인후처럼 점점 성장하는 인물이 필요했다. 제 주변에 학생운동했던 분들 얘길 들어봐도 처음부터 투사였던 분은 별로 없었거든.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받아서 활동하신 분들이 꽤 계셨다. 사람은 그렇게 작은 계기로 투사가 될 수도 있다. 정인후 또한 시작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출세하고 싶어서였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며 성장하게 된다. 나중에 박태주 대령이 '당신 좋은 변호사였다'라고 하잖나. 성장한 정인후는 제게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리고 이선균. 마약 투약 혐의 사건이 경찰 등에 의해 공공연하게 퍼지고, 보도되면서 영화 후반 작업 자체가 무기한 연기됐고 개봉 일정도 불투명하게 됐다. 추창민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3, 4년 안에 개봉은 불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안타깝게도 선균씨가 돌아가시고, 이후 상황이 반전되면서 작업을 이어가게 됐는데 그가 던진 대사 몇 개와 어떤 상황들이 제게 와닿더라. 편집으로 빼야 하나 싶다가도 이미 다 작업한 결과물이니 그대로 밀고 나갔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선균이란 배우가 이 영화에서 해낸 게 참 훌륭했다. 그가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조정석이란 배우에게 배우고 싶어서였다고 말했거든. 이미 좋은 배우인데 동료 배우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그 마음에 놀랐다.

개인적으론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 두고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균씨가 표면적으로 매도된 게 있잖나. 이젠 그 사건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억측이나 추측만 존재한다. 그 이면을 보지 않으려 한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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