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NYT에 라면 좀 보내줘라"... 뉴욕이 지금 이 정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장소영 기자]
김치는 이제 뉴요커의 기호 식품이다. 더 이상 김치를 사러 따로 한인 마트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 컵라면과 김치 정도는 이제 웬만한 동네 미국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고, 불고기소스, 고추장소스, 즉석식품 코너에 떡볶이, 햇반을 갖춘 매장도 제법 많다.
▲ 미국 동네 마트에서 만나는 김치와 라면 한인 인구가 적은 우리 동네의 일반 미국 마켓에서도 김치를 판매하고 있다. 라면류 판매도 오래 되었고 최근에는 만두, 김, 불고기 소스도 구할 수 있다. |
ⓒ 장소영 |
맨해튼에서 뮤지컬을 보고 나온 딸이 저녁을 먹고 갔으면 했다. 으레 우리 가족의 단골 메뉴 순두부 전문 식당으로 갈 줄 알았더니, 오늘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손을 잡아 이끈다.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와 와플, 반찬과 요리를 판매하는 곳 같은데 벌써부터 줄이 길다. 2층으로 올라가니 어디서 많이 보던 세팅이다. 각종 한국 라면이 벽면에 가득하고, 라면 조리 기구와 김밥, 의자 없이 허리 높이의 테이블만 놓인 것이 영락없는 '한강 공원 편의점' 같다.
겨우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고 방금 끓인 라면을 올려놓았다. 한강 대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헤럴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에서 먹는 한국 편의점 라면의 맛이란. 옹기종기 붙어 서서 라면과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 김밥을 먹고 있는 주변 뉴요커들의 모습이 낯설고도 재미있었다.
▲ 맨해튼 32번가가 내려다보이는 '편의점 라면집' 한국 영화, 드라마를 통해 접하고, SNS를 타고 입소문이 퍼지며, 한국과 동시간에 같은 유행을 즐기려는 뉴요커들이 한국의 거리 주변에 넘친다. |
ⓒ 장소영 |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 될즈음 어느 날, 삼각김밥을 넉넉히 싸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K 드라마에 빠진 친구들이 궁금해한단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도 한국 과자나 메로나, 죠스바, 돼지바, 뽕따 같은 한국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기 시작했다. 삼각김밥은 대기 시간이 긴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운동팀 친구들에게 인기였다.
"팬데믹 시즌에 다들 집에서 K 드라마만 본 거야?"하고 아이들과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불고기가 학교 요리 실습 커리큘럼에 올랐다. 선생님으로부터 혹시 김치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고 딸은 신이 나서 김치, 백김치, 깍두기를 들고 갔다.
한식은 맨해튼 32번가 한국의 거리를 덮쳤다. 그동안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아 온 곳은 순두부나 한국식 바베큐 식당들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먹거리가 '실시간'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 한식당과 냉동 김밥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일반 한식당의 상차림과 젊은 층이 애용하는 플래이팅이 예쁜 한식당의 상차림이다. 한국 마트에서 판매중인 다양한 냉동김밥이다. 한식당에 있는 수저통과 테이블 벨은 미국인들에게 이색 경험이기도 하다. |
ⓒ 장소영 |
한식당에도 변화가 왔다. 독특한 플레이팅을 좋아하는 MZ 세대의 취향에 맞추거나 포장 메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늘었다. 한식당 '그녀 이름을 한(Her name is Han)'에 들러 보았다. 한눈에도 동양계보다 비동양계 손님들이 많아 보였고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포장 도시락과 한식 버거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맛있게 담아내는 '핸섬라이스(Handsome Rice)' 앞에도 젊은 층의 손님들이 빈번히 오갔다.
반면 완전히 한국 레트로 감성으로 접근해 이슈가 된 '기사식당'도 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이슈가 된 '기사식당'은 한인 타운을 벗어난 다소 엉뚱한 지역에 오픈해 한식당의 영역을 넓혔다.
▲ 한식당 앞에 줄을 선 사람들 평일 오후 6시도 되기 전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줄을 길게 서있다. |
ⓒ 장소영 |
▲ 미국 마트에서 라면을 고르고 있는 주민 "딸들이 라면을 좋아한다"며 웃어보이는 미국 엄마. 올 때마다 하나씩만 사라고 권한다고. |
ⓒ 장소영 |
SNS와 유튜브, 틱톡을 통해 다양한 한식을 접하고 조리법을 익히는 경우도 많다. '냉동 김밥' 시식으로 유명한 세라 안, 유명 유튜버 망치(Maangchi, 에밀리 김)가 대표적이다. 특히 서양의 입맛과 취향을 잘 아는 한인 2세들의 요리 채널과 쇼츠(짧은 영상)가 부쩍 많아졌다. H 마트에서 만난 조안나도 그렇게 한식 요리를 배운 사람 중 하나다.
"(한식 조리법은) 일단은 건강하고, 그다음은 뭔가 독특해요. 오리지널 그대로 먹어도 맛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음식으로 뭔가 다른 메뉴를 금방 또 만들어내요. 내가 하나에 맛을 들이면(익숙해 지면), 어느새 당신들은 다른 걸 만들어 먹고 있어요. 여기 (불닭) 로제 처럼요."
▲ K 핫도그 가게 앞에 줄을 선 주민들 푸드코트에 K핫도그 가게가 오픈하자 K핫도그를 맛보려는 주민들이 줄을 섰다. 지역 방송국에서도 다룰 만큼 인기 몰이를 했다. 미국식 핫도그인 콘독에 비하면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간단한 한끼가 될 만큼 든든하고 특이해 인기가 많다. H마트 푸드코트의 K핫도그도 수년 째 사랑받는 간식이다. |
ⓒ 장소영 |
▲ 동네 빵집처럼 자리잡은 파리바게트 맨해튼 뿐 아니라 근외 지역인 롱아일랜드에도 지점이 늘고 있다. 특히 K 케이크는 예쁘면서도 특유의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은 단맛으로 입소문을 탔다. 매장내 테이블을 두는 커피점이 흔치 않기에, 식후 디저트를 즐기거나 만남의 장소로 K 베이커리가 애용되고 있다. H 마트내 자체 브랜드 베이커리도 인기 있다. |
ⓒ 장소영 |
▲ K 바비큐 최근 동네에 세 곳이나 생긴 K BBQ 이다. 샤브샤브를 겸하고 있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다. 한 곳은 부페식이고 다른 한 곳은 무제한 주문형식이다. 테이블 위에 불판을 두고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방식이 미국인들에겐 이색적이다. 가위의 용도를 몰랐던 옆 테이블에서 개인용 나이프를 찾다가, 우리가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따라 하는 일도 있었다. 삼겹살과 갈비는 물론 한국식 불판에 올려먹는 콘치즈, 조개 구이 등도 흥미있어 하는 음식이다. |
ⓒ 장소영 |
▲ 오픈 예정인 우리 동네 K-치킨 오픈을 기다리는 주민이 많다. 주민 게시판, 학교 엄마들의 게시판엔 오픈 날짜가 언제인지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국 스타일을 흉내낸 곳인지, 한국 치킨인지 궁금해 하는 물음에, 한국 브랜드라고 답을 달아 주었다. |
ⓒ 장소영 |
영화를 보러 나갔던 큰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 동네에 드디어 한국 치킨집이 생긴다고! 그것도 우리 집과 가장 가깝고 큰 쇼핑센터에 말이다. 확인하러 가봤더니 한국 브랜드 치킨집이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 한국계 미국인 자매의 시판 한식 고기 소스 미국 마트에서 한국계 미국인 자매가 가족 레시피로 만든 고기 요리 소스를 판해하고 있다. 병에는 소스를 만들게 된 사연과 조리법이 적혀 있다. |
ⓒ 장소영 |
동네 미국 마트에서 판매중인 고기 요리 한식 소스병에도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국계 자매가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 레시피를 담았노라고. 수익의 10%를 싱글맘, 아이들, 이민자에게 기부하겠다는 귀한 마음도 함께 담고 있었다.
마치 피자하면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을 떠올리듯이, 언젠가는 비빔밥하면 전주가 아니라 뉴욕을 떠올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떡은 떡으로, 파전은 파전으로 음식의 이름을 어서 찾아주면 좋겠다. 라이스케이크나 코리언피자로 불리는 대신 말이다. 뒤늦게 미국에 상륙한 한식은 제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김밥과 불고기, 비빔밥은 물론, 발음이 까다로운 삼겹살, 떡볶이 같이 어려운 이름도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부르고 있다.
'반반치킨'을 주문하는 이웃들을 얼른 만나 보고 싶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