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NYT에 라면 좀 보내줘라"... 뉴욕이 지금 이 정도

장소영 2024. 8. 12.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뉴요커들은 왜 한식에 열광하나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장소영 기자]

김치는 이제 뉴요커의 기호 식품이다. 더 이상 김치를 사러 따로 한인 마트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 컵라면과 김치 정도는 이제 웬만한 동네 미국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고, 불고기소스, 고추장소스, 즉석식품 코너에 떡볶이, 햇반을 갖춘 매장도 제법 많다.

<뉴욕타임스> 요리코너에 한식은 '건강(healthy)' 혹은 채식 조리법으로 자주 소개되고, 전문가가 평가한 '맛있는 라면' 순위에 한국 라면이 4개 이상 오른다. 심지어 기사 아래에 '누가 뉴욕타임스에 불닭볶음면 로제나 진라면 좀 보내줘라. 아직 맛을 못 본 모양이다'라는 재미난 댓글도 달린다.
▲ 미국 동네 마트에서 만나는 김치와 라면  한인 인구가 적은 우리 동네의 일반 미국 마켓에서도 김치를 판매하고 있다. 라면류 판매도 오래 되었고 최근에는 만두, 김, 불고기 소스도 구할 수 있다.
ⓒ 장소영
옹기종기 붙어 서서 라면 먹는 뉴요커들

맨해튼에서 뮤지컬을 보고 나온 딸이 저녁을 먹고 갔으면 했다. 으레 우리 가족의 단골 메뉴 순두부 전문 식당으로 갈 줄 알았더니, 오늘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손을 잡아 이끈다.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와 와플, 반찬과 요리를 판매하는 곳 같은데 벌써부터 줄이 길다. 2층으로 올라가니 어디서 많이 보던 세팅이다. 각종 한국 라면이 벽면에 가득하고, 라면 조리 기구와 김밥, 의자 없이 허리 높이의 테이블만 놓인 것이 영락없는 '한강 공원 편의점' 같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라면과 토핑을 골라 조리 기구 위에 올려놓았다. 딸은 전부터 한국 편의점에 가보고 싶었는데 SNS(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이곳을 알게 되었단다.
겨우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고 방금 끓인 라면을 올려놓았다. 한강 대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헤럴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에서 먹는 한국 편의점 라면의 맛이란. 옹기종기 붙어 서서 라면과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 김밥을 먹고 있는 주변 뉴요커들의 모습이 낯설고도 재미있었다.
▲ 맨해튼 32번가가 내려다보이는 '편의점 라면집' 한국 영화, 드라마를 통해 접하고, SNS를 타고 입소문이 퍼지며, 한국과 동시간에 같은 유행을 즐기려는 뉴요커들이 한국의 거리 주변에 넘친다.
ⓒ 장소영
K-드라마를 중심으로 미국에 퍼진 K-컬처의 힘은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체감했던 변화는 딸의 학교 점심시간에서부터였다. 간단히 나오는 미국식 급식이 힘들었던 딸은 한식 도시락을 가져가 눈칫밥을 먹곤 했다. 워낙 수줍음이 많다 보니 내놓고 먹질 못하고, 누가 볼세라 김밥이나 주먹밥을 급히 입안에 넣어 몰래 먹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 될즈음 어느 날, 삼각김밥을 넉넉히 싸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K 드라마에 빠진 친구들이 궁금해한단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도 한국 과자나 메로나, 죠스바, 돼지바, 뽕따 같은 한국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기 시작했다. 삼각김밥은 대기 시간이 긴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운동팀 친구들에게 인기였다.

"팬데믹 시즌에 다들 집에서 K 드라마만 본 거야?"하고 아이들과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불고기가 학교 요리 실습 커리큘럼에 올랐다. 선생님으로부터 혹시 김치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고 딸은 신이 나서 김치, 백김치, 깍두기를 들고 갔다.

한식은 맨해튼 32번가 한국의 거리를 덮쳤다. 그동안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아 온 곳은 순두부나 한국식 바베큐 식당들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먹거리가 '실시간'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뉴요커들은 K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서 본 먹거리를 찾아 한인 타운을 찾았다. 달고나 커피를 시작으로 갖가지 토핑이 들어간 한국식 토스트, 와플, 핫도그 같은 스트리트 푸드를 접했다는 게시물이 SNS에 넘쳤다. 호기심에 한 번쯤 먹어보았던 K 스트리트 푸드는 인플레이션이 닥치자 싸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추천으로 이어졌다. 회오리 감자나 한국식 핫도그, 한국식 버거와 컵밥을 든 뉴요커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KFC 할아버지는 은퇴해야 한다'는 농담도 들어봤다. 한국 치킨집들 때문이다.
▲ 한식당과 냉동 김밥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일반 한식당의 상차림과 젊은 층이 애용하는 플래이팅이 예쁜 한식당의 상차림이다. 한국 마트에서 판매중인 다양한 냉동김밥이다. 한식당에 있는 수저통과 테이블 벨은 미국인들에게 이색 경험이기도 하다.
ⓒ 장소영
달라진 한식당들

한식당에도 변화가 왔다. 독특한 플레이팅을 좋아하는 MZ 세대의 취향에 맞추거나 포장 메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늘었다. 한식당 '그녀 이름을 한(Her name is Han)'에 들러 보았다. 한눈에도 동양계보다 비동양계 손님들이 많아 보였고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포장 도시락과 한식 버거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맛있게 담아내는 '핸섬라이스(Handsome Rice)' 앞에도 젊은 층의 손님들이 빈번히 오갔다.

반면 완전히 한국 레트로 감성으로 접근해 이슈가 된 '기사식당'도 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이슈가 된 '기사식당'은 한인 타운을 벗어난 다소 엉뚱한 지역에 오픈해 한식당의 영역을 넓혔다.

자판기 커피, 테이블 초인종(벨), 수저통, 뜨거운 돌솥과 누룽지, 한식 디저트, 추가 요금 없이 리필 해주는 사이드디시(반찬), 생수 대신 주는 보리차나 옥수수차조차도 한식당을 찾는 이들에겐 이색 경험이다.
▲ 한식당 앞에 줄을 선 사람들 평일 오후 6시도 되기 전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줄을 길게 서있다.
ⓒ 장소영
식당에서 만난 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눠 보았다. 이미 뉴요커들은 '드라마에서 본 음식 체험'을 훌쩍 넘어섰다. 한식은 이들에게 이제 평범하게 고를 수 있는 외식 메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한식(Korean Food)'이라기 보다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으러, 저녁으로 삽겹살을 먹으러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식에 비해 고급스럽지는 않다는 옛 평을 뒤로하고 '고급 한식점(Korean Cuisine)'들도 균형잡힌 영양 한 상에 창의성과 세련미까지 갖추었다고 호평을 얻고 있다. '아토믹스'의 경우 미슐랭(2 stars)은 물론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상위권에 매년 들고 있는 대표적 고급 한식 레스토랑이다. 이 외에도 전망 좋은 자리에서 '한식 코스 요리'를 즐겼다는 인플루언서들이 늘고, 특별한 날 한식 코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한식당 가려면 예약을 서두르라는 게시물이 부쩍 눈에 띈다.
▲ 미국 마트에서 라면을 고르고 있는 주민 "딸들이 라면을 좋아한다"며 웃어보이는 미국 엄마. 올 때마다 하나씩만 사라고 권한다고.
ⓒ 장소영
K 라는 이름만 붙으면 동네가 떠들썩

SNS와 유튜브, 틱톡을 통해 다양한 한식을 접하고 조리법을 익히는 경우도 많다. '냉동 김밥' 시식으로 유명한 세라 안, 유명 유튜버 망치(Maangchi, 에밀리 김)가 대표적이다. 특히 서양의 입맛과 취향을 잘 아는 한인 2세들의 요리 채널과 쇼츠(짧은 영상)가 부쩍 많아졌다. H 마트에서 만난 조안나도 그렇게 한식 요리를 배운 사람 중 하나다.

"(한식 조리법은) 일단은 건강하고, 그다음은 뭔가 독특해요. 오리지널 그대로 먹어도 맛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음식으로 뭔가 다른 메뉴를 금방 또 만들어내요. 내가 하나에 맛을 들이면(익숙해 지면), 어느새 당신들은 다른 걸 만들어 먹고 있어요. 여기 (불닭) 로제 처럼요."

쉐이크쉑(Shake Shack-햄버거 체인점)에서 김치버거를 내놓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옆 테이블에 말을 걸어보니 뜻밖의 답이 돌아온다. 김치버거를 안 먹는다고 해서 왜냐고 물으니 '김치버거 이런 거 말고(퓨전 메뉴가 아닌) 그냥 김치를 (햄버거 곁에) 사이드로 내놨으면 좋겠다'고.
▲ K 핫도그 가게 앞에 줄을 선 주민들 푸드코트에 K핫도그 가게가 오픈하자 K핫도그를 맛보려는 주민들이 줄을 섰다. 지역 방송국에서도 다룰 만큼 인기 몰이를 했다. 미국식 핫도그인 콘독에 비하면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간단한 한끼가 될 만큼 든든하고 특이해 인기가 많다. H마트 푸드코트의 K핫도그도 수년 째 사랑받는 간식이다.
ⓒ 장소영
맨해튼이야 워낙 유행과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곳이지만 근교는 어떨까. 내가 사는 롱아일랜드 주택가는 맨해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떨어져 있다. 10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한인 인구가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한인 마트 하나, 한식당도 하나 정도 있었다. 유행에 그리 민감하지도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지역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사는 동네는 한인이 거의 없고 아시아계 인구가 매우 적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이 마무리될 즈음 어느 순간 K 라는 이름만 붙으면 동네가 떠들썩했다. 마치 '없어서 못 갔지'라는 듯, 주민들은 거리낌 없이 새로 생기는 한국 음식점을 찾는다. 푸드코트에 한국식 핫도그점이 생기자 맛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고, 한국 케이크가 입소문을 타 파리바게트 지점이 두 곳이나 들어오기도 했다.
▲ 동네 빵집처럼 자리잡은 파리바게트 맨해튼 뿐 아니라 근외 지역인 롱아일랜드에도 지점이 늘고 있다. 특히 K 케이크는 예쁘면서도 특유의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은 단맛으로 입소문을 탔다. 매장내 테이블을 두는 커피점이 흔치 않기에, 식후 디저트를 즐기거나 만남의 장소로 K 베이커리가 애용되고 있다. H 마트내 자체 브랜드 베이커리도 인기 있다.
ⓒ 장소영
▲ K 바비큐 최근 동네에 세 곳이나 생긴 K BBQ 이다. 샤브샤브를 겸하고 있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다. 한 곳은 부페식이고 다른 한 곳은 무제한 주문형식이다. 테이블 위에 불판을 두고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방식이 미국인들에겐 이색적이다. 가위의 용도를 몰랐던 옆 테이블에서 개인용 나이프를 찾다가, 우리가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따라 하는 일도 있었다. 삼겹살과 갈비는 물론 한국식 불판에 올려먹는 콘치즈, 조개 구이 등도 흥미있어 하는 음식이다.
ⓒ 장소영
요즘 우리 동네 핫플은 K-Pots라고 하는 샤부샤부를 겸한 불판 바베큐 레스토랑들이다. 우리에겐 익숙해서 미처 몰랐었는데, 테이블 위에 불판을 놓고 음식을 직접 조리한다는 것이 미국인들에겐 생소하고 재미있는 경험인가 보다. K-바베큐 레스토랑은 인근에만 세 곳이 생겼다. 가격이 조금 높은데도 인기가 많아 웨이팅 시간이 제법 길다. 가위를 왜 주는지 몰라 어리둥절 해 하던 옆 테이블 가족은 개인용 나이프를 찾다가, 우리 가족이 가위로 고기를 자르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상상도 못했다고 서로 소근거리기도 했다.
▲ 오픈 예정인 우리 동네 K-치킨 오픈을 기다리는 주민이 많다. 주민 게시판, 학교 엄마들의 게시판엔 오픈 날짜가 언제인지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국 스타일을 흉내낸 곳인지, 한국 치킨인지 궁금해 하는 물음에, 한국 브랜드라고 답을 달아 주었다.
ⓒ 장소영
한인 2세들의 대활약

영화를 보러 나갔던 큰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 동네에 드디어 한국 치킨집이 생긴다고! 그것도 우리 집과 가장 가깝고 큰 쇼핑센터에 말이다. 확인하러 가봤더니 한국 브랜드 치킨집이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주민이 언제 가게를 여느냐고 묻는다. 모르겠다 하니 한국 사람 아니냐고 되묻는다. 웃으며 한국인은 맞지만 가게와는 상관이 없어 모른다, 나도 기다리는 중이이라고 답했다. 아무래도 슈퍼볼 선데이(미식 축구 NFL 결승전이 열리는 일요일)에는 TV 앞에서 치맥과 함께 하는 이웃들이 많을 듯 싶다.
▲ 한국계 미국인 자매의 시판 한식 고기 소스  미국 마트에서 한국계 미국인 자매가 가족 레시피로 만든 고기 요리 소스를 판해하고 있다. 병에는 소스를 만들게 된 사연과 조리법이 적혀 있다.
ⓒ 장소영
드라마와 영화, 발달된 SNS와 쇼츠, 유튜브도 뉴욕에서의 한식 보편화에 영향을 주었지만 한인 2세들의 공도 컸다. 미국인의 입맛과 취향을 잘 아는 2세들이, 낯선 한식을 쉽게 조리하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영상과 블로그를 세련되게 만들어준 덕이다. 미국에서 자라면서 김밥을 먹는다고, 김치냄새를 풍긴다고 놀림받던 그들이 어른이 되어 한식을 '건강한 미국 음식'으로 정착시키는 선봉장이 된 것이다.

동네 미국 마트에서 판매중인 고기 요리 한식 소스병에도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국계 자매가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 레시피를 담았노라고. 수익의 10%를 싱글맘, 아이들, 이민자에게 기부하겠다는 귀한 마음도 함께 담고 있었다.

마치 피자하면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을 떠올리듯이, 언젠가는 비빔밥하면 전주가 아니라 뉴욕을 떠올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떡은 떡으로, 파전은 파전으로 음식의 이름을 어서 찾아주면 좋겠다. 라이스케이크나 코리언피자로 불리는 대신 말이다. 뒤늦게 미국에 상륙한 한식은 제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김밥과 불고기, 비빔밥은 물론, 발음이 까다로운 삼겹살, 떡볶이 같이 어려운 이름도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부르고 있다.

'반반치킨'을 주문하는 이웃들을 얼른 만나 보고 싶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