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의미를 묻지 않는 시대, 다시 읽는 <페다고지>
[김홍규 기자]
▲ 책, <페다고지> 표 프레이리(Freire)가 쓴 <페다고지> 50주년 기념판 우리말 번역 책 표지이다. <페다고지>는 1968년에 처음 출판됐다. 2018년에 50주년 기념판 영어본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비에서 우리말 번역본을 펴냈다. |
ⓒ 그린비 |
"이제 AI는 단순히 기술의 차원을 넘어 교육을 고민하는 공동체가 최대한 집중해서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AI 교육 정책은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생략한 채 어떻게 확산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이다."
(주정흔·서덕희·김보경·임유진·안영은·신유정·염민우·이재환·진수영, 2021, <인공지능(AI) 기반 에듀테크의 학교 현장 적용을 위한 협력적 실행연구>, 336쪽,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최근 교육 분야는 인공지능 분야의 '블루오션'이다. 인공지능, 에듀테크라는 말만 붙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교육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교사-학생, 학생-학생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묻지 않는다. 기업들은 데이터 집적을 위해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경향신문 인터넷판, 2024년 7월 24일, '디지털 선도학교서 쓰는 AI앱, 학생 정보 술술 빼갔다').
"AI 활용교육은 인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교과적 지식과 더불어 자신의 '판단'을 드러낼 기회를 빼앗는다. … 정서가 드러나는 표정, 목소리의 억양과 뉘앙스 등에 둔감하도록 만든다."
(서덕희, 2023, '트로이의 목마?, AI 활용교육을 위한 교육 거버넌스 구축과정에 대한 질적 사례 연구: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관점', <교육인류학연구> 26(4), 37쪽.)
서울시교육청 소속 '인공지능 기반 에듀테크' 운영 학교 연구에 참여한 한 교육학자의 성찰이다.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별로 바뀌지 않았지만, 새로운 정책이나 실험에는 재빠른 교육 분야다. 그 많은 연구학교, 시범학교, 선도학교들이 그렇게 무언가를 했다. 하고 있다. 이제는 왜 그것을 시작하는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물어야 한다. 시작했다가 흔적만 남아 있는 많은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볼 때가 됐다.
성찰 기준을 제공하는 <페다고지>
'많은 사람이 알지만, 자세히 읽어 본 사람은 적은 것이 고전'이라는 말은 프레이리(Freire)가 쓴 <페다고지>에도 적용된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쪽 모두 다양한 오해를 하는 대표적 책 가운데 하나다. 상징적 단어가 '의식화(콘시엔치자사우, conscientização)'다. 영어 번역은 'critical consciousness'이다. 프레이리는 포르투갈어 '콘시엔치자사우'를 영어로 번역하는 데 반대했다고 한다(책, 26쪽).
'의식화'를 '주입'이나 '세뇌'로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싫어하는 쪽에서는 학생들이 정부 비판 세력에 '물이 들까 봐' 걱정했다. 독재 권력이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교육계에 미친 영향은 신경 쓰지 않고 '불온' 딱지를 붙였다. 그 여파는 2017년까지 이어졌다(오마이뉴스 2017년 1월 10일, '불온서적 소지' 이유로 구속? 2017년에 <변호인2> 찍나).
권력에 저항하며 <페다고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오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달랐지만,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서' 목록에 끼어 제대로 읽을 수 없는 환경 탓도 있었으리라. 영어 제목인 <피억압자들을 위한 교육학>에서 '피억압자들'을 자신들이 '지도'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교사-학생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비민주적 발상이다.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
(프레이리, 2018, 남경태·허진 옮김, <페다고지>, 116쪽, 그린비.)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Deluze)도 1968년에 펴낸 <차이와 반복>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함께 하자'고 제안하지 않고 '나처럼 해봐'라고 지시하는 이는 선생이 아니라고 했다(들뢰즈, 1968, 김상운 옮김, 2004, <차이와 반복>, 72쪽, 민음사.).
"대부분의 정책과 교육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그 입안자가 교육 내용을 이수할 상황 속의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즉 피교육자들를 단순히 자기 행동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신의 개인적 현실관에 따라 프로그램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프레이리, 2018, 남경태·허진 옮김, <페다고지>, 117쪽, 그린비.)
프레이는 "대화와 의사소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책, 197쪽). 그가 학생들의 창조성을 파괴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은행 저금식 교육'이라고 부른 '주입식' 지도는 소통을 금지하거나 두려워한다(책, 92~96쪽).
여전히 교육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은 학생, 보호자, 교사와 논의하지 않는다. 학생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사나 보호자도 아직 존재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 벌어지는 한,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교육의 의미를 묻지 않는 시대다. 어떤 행위와 정책에 대해 그 교육적 가치를 따지거나 논의하지 않는다. '왜' 대신 '어떻게'가 지배한다. 학자들은 새로운 정책을 어떻게 하면 적용하고 확산할 수 있는지에 관해 보고서와 논문을 쓴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기업 요구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어떻게든 해 내려고 지나치게 노력한다.
멈추고 돌아볼 시간이 됐다. 우리 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논의를 시작하면 좋겠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페다고지>가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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