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광복절 우려 속 독립기념관 ‘경축식’ 돌연 취소…37년 만 처음
광복회가 ‘뉴라이트’라고 지목했던 재단법인 대한민국역사와미래 김형석 이사장이 신임 관장으로 임명된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돌연 취소했다. 개관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독립기념관은 오는 15일 열기로 했던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12일 밝혔다.
기념관은 15일 오전 10시부터 겨레의 집 일대에서 독립운동가 후손과 참가를 희망한 100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다만 오후 2시 30분부터 예정된 광복절 경축 문화행사 ‘그날이 오면’은 예정대로 열린다.
기념관 홈페이지에는 문화행사 알림 아래 “행사일정 중 광복절 경축식은 기관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린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그동안 광복절 경축식은 정부, 충남도, 천안시와 함께 열거나 자체 행사 등의 방식으로 매년 진행해 왔다”며 “올해는 신임 관장님이 정부 주최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하고 자체 경축식을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복절 경축행사는 지난 1987년 42주년 광복절에 문을 연 독립기념관이 매년 개최하는 문화 행사 중 최대 행사다.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과 별도로 매년 광복절이면 독립기념관에서 경축 행사를 개최해 왔다. 경축식이 열리지 않는 것은 1987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이다.
경축식이 취소됐지만 공군특수비행단 ‘블랙이글스’ 에어쇼, ‘한얼국악예술단’ 타악 퍼포먼스, ‘비단’ 퓨전국악 공연, ‘카르디오’ 팝페라 공연, ‘콰르텟 코아모러스위드 크로스오버 하나린’ 재즈 공연, 가수 ‘코요태’ 공연 등 경축 문화행사는 예정대로 열린다.
독립투사 무드등 만들기, 태극기 아쿠아 캔들 만들기 등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유료), ‘C-47 수송 비행기’ 탑승 체험, 광복 주제의 특별 전시해설, 광복 1년 전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을 만나는 특별기획전, 충청권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재구성한 독립운동 사적지 특별전 및 전시해설 등도 준비돼있다.
한편 이번 광복절은 ‘반쪽’행사가 될 우려가 크다.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김형석 이사장이 임명되자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독립운동 유관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회는 지난 11일 정부가 주최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광복회는 지난 9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실이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1948년 건국절’ 제정 추진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8·15 광복절 경축식 참석도 무의미하다”며 불참을 시사했다. 이어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일제의 국권침탈이 불법이어서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이 일본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그런데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이 일본이라고 한 사람을 어떻게 민족혼을 세워야 하는 독립기념관장에 앉힐 수 있겠느냐”고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광복회는 지난 6일 정부가 김 관장을 임명하자 ‘뉴라이트’ 계열 인사라며 반발했다. 김 관장은 지난해 말 보수단체 강연에서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헌법전문 마저 상식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또한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하고, 별도의 광복절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 항단연은 오는 14일 윤석열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독립운동가 후손 오찬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앞에서 김 관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관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15일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독립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즉각 철회하고 무리한 인사 강행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요구한 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고,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김 관장은 취임 일성으로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고 했다"며 "이런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들고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폭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가 도움이 됐다', '일제시대에 우리 국민은 일본 신민(臣民)이었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독립기념관장이 될 수 있나"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은 김 관장과 동일한 역사관을 가진 것인지, 8·15를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밝혀야 한다"며 재차 김 관장의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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