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회장 "부적정 대출 고객께 사과…환골탈태 할 것"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12일 우리은행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사고와 관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업문화, 업무처리 관행, 상·하관계, 내부통제 체계를 하나부터 열까지 되짚어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바꿔나가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본사에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비롯한 지주사·은행 전 임원이 참석한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진 고객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 처신,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이는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이끄는 저를 비롯한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며 "상사의 부당한 지시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직원을 조직이 철저히 보호하도록 기업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임 회장은 또 수사 과정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 "시장의 의구심이 있다면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에 동석한 조 행장도 이와 관련, "행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규정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임직원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통해 정도경영을 확고하게 다져나가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를 대상으로 616억원(42건)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는 해당 친인척이 전·현직 대표 또는 대주주로 등재된 사실이 있거나(23건), 원리금 대납 사실을 고려할 경우 해당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법인 및 개인사업자(19건)를 포함한다.
이 시기는 손 전 회장이 은행과 지주회사의 지배력을 행사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2017년 말 우리은행장에 선임됐고, 2019년부터는 신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지난해 3월 용퇴했다. 손 전 회장이 행장·회장이 되기 전까지 이 친인척 관련 차주를 대상으로 실행된 대출은 약 4억5000만원(5건)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전체 대출 616억원 중 350억원(28건)의 경우 대출 심사·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했다. 문제가 된 대출금의 대부분은 지난 4월 면직된 임모 본부장(전 선릉금융센터장) 주도로 취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법은 다양했다.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별도의 사실확인 없이 대출을 실행하는가 하면, 담보가치가 없는 담보물에 담보를 설정하거나 보증여력이 없는 보증인 입보를 근거로 대출을 취급하기도 했다. 또 대출 취급심사 및 사후관리 과정에서 본점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 전결로 임의처리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런 부적정한 대출로 우리은행도 수백억 원의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국은 지난달 19일 기준 전체 대출 중 269억원(19건)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조건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82억~158억원가량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임모 본부장 등 임직원 8명에 대해 면직 등 제재를 단행하는 한편, 지난 9일 자체 검사 결과 등을 기초로 관련인을 문서위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당국에 고소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손 전 회장의 연루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 전 회장이) 퇴임한 이후에도 관련 대출이 계속 일어났다"면서 "CEO가 일선 영업점의 대출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이번 사고를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2022년 기업개선부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고, 올해 대리급 직원의 170억원대 횡령 사고에 이어 CEO와 관계된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 시스템 아래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사건으로, 2금융권에서나 이따금 봄 직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서 "부당한 지시를 따르는 것도 징계 대상이 되는데, 일개 본부장과 직원들이 징계·면직을 감수하고 3년씩이나 그런 행위를 이어갈 수 있겠나 싶다"고 지적했다. 또 이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먼저 사실을 인지하고 검사에 착수했다지만, 연체가 발생하면 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사후 처리 과정도 매끄럽지 않다"고 꼬집었다.
금감원도 내부통제 최고책임자인 CEO와 관계된 이번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금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향후 금융 관련 법령 위반 소지 및 대출 취급 시 이해 상충 여부 등에 대한 법률검토를 토대로 제재 절차를 엄정하게 진행하는 한편, 검사과정에서 발견된 차주 및 관련인의 허위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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