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권익위 간부, 그는 '가슴 따뜻한 포청천'"
[김성수 기자]
▲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
ⓒ 연합뉴스 |
나는 그를 노무현 정부 시절 반부패 활동을 함께하면서 만났다. 고인은 아주 쾌활하고, 친근했고, 유머 감각도 많았다. 동시에 예의바르고 깍듯한 공무원이었다. 10여 년 전, 그는 내가 공부하던 영국 북부 셰필드대 대학원으로 유학왔다. 그 뒤로부터는 고인은 나를 격의 없이 대했다.
그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을 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두고 '영혼 없다' 같은 말을 쓰지만, 내 기억 속 고인은 정의감이 강하고 인간적인 따스함과 열정이 넘치는 '반부패전문가'였다. 고인의 한 권익위 동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김영란법의 접대비 3만 원 관련해서 누누히 '3만 원도 많다. 왜 공직자가 접대 받느냐'고 안 된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접대비 한도를 상향한다고 해도 반대했습니다. 외부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개인카드를 쓰고, 절대 얻어먹지 않는 것으로 권익위 내부에서도 유명했지요. 업추(법인)카드 사용도 안 하고요..."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의 죽음을 두고 권익위 등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안과 관련 9일과 10일, 전 청렴위원회(현재 권익위) 위원을 지냈던 김거성 박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김거성 전 국가청렴위원회 비상임위원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
ⓒ 연합뉴스 |
"먼저 씻어내기 힘들 슬픔과 아픔을 겪고 있을 고인의 가족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깊은 위로가 함께해 이겨낼 수 있길 두 손 모아 빈다.
그는 매우 정의롭고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2009년 고인이 권익위 민간협력담당관으로 발령받았다면서 찾아왔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반부패 영역의 민관 협치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는데, 그는 당시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시민단체들과 소통했다.
'이런 공무원도 있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와 청렴위-권익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다른 분에게 고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더니 '가슴 따뜻한 포청천'이라고 답하더라. 딱 맞는 표현이다. 고인은 내가 존경하는 후배 중 한 사람이었다."
- 고인은 지인과의 통화에서 '권익위 수뇌부 인사가 이 사안(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 - 편집자 주)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고, 나의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하더라. 권익위 책임론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고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최근에 전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지인도 고인이 지난 주말 '저와 상관없이 권익위를 꾸짖고 응원해 달라'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와서 '힘내라'고 짧게 답했다고 하더라. 그 지인은 고인과 통화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고인은 대통령실 방문조사에 나섰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권익위에서의 갈등이나, 상급자·대통령실의 압력 의혹 등은 차차 밝혀져야 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영부인 명품가방 수수 사건과 관련해 고인이 권익위 안팎에서 자기의 소신을 펴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상상이 간다. 참담하다. 바르게 일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몰리고 다치는 세상이 되서는 안된다."
"현 정부에서의 권익위 수명 다했다"
- 한국투명성기구가 지난 9일 논평에서 '현 정권에서 권익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유는 정권과 권익위 간부들의 행태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권익위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건희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종결 처리한 것은 권익위 스스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정이었다'고도 평가했다. 전직 청렴위원 입장에서 이런 평가를 어떻게 보나?
"권익위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 아니, 국민 신뢰를 저버린 쓸모없는 기관으로 비판받게 됐다. 얼마 전 법을 개정해 '위원회는 정부조직법 제2조에 따른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명시했지만, 지금 권익위를 신뢰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 ' 대통령 부부 명품수수 면죄부 준 국민권익위 규탄 긴급기자회견’이 지난 6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 정부합동민원센터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열렸다. |
ⓒ 권우성 |
"1999년 한국투명성기구 창립 이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0점 만점 기준으로 38점에서 56점으로 매년 1.824점씩 상승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54점까지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62점까지 다시 상승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떻게 될지 예상 가능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한국투명성기구에서 2024년 6월 조사한 기관별 부패방지정책 평가에서 대통령실은 1년 전 2.86점에서 1.32점으로, 권익위도 전현희 위원장이던 시절 5.03점에서 무려 1.86점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그렇다면 국가의 반부패 체계는 향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나.
"첫째, 부패방지, 부정청탁금지, 이해충돌방지, 공직윤리 등을 포함하는 (가칭)청렴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독립성과 전문성 높은 반부패 전문기관으로 (가칭)국가청렴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물론 고충처리 등 민원, 행정심판 등의 기능은 별도 기관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가칭)청렴위 위원장 후보자는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쳐 선출하도록 하고, 위원장 이외의 부위원장(상임) 2명 후보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추천하며, 비상임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 2명씩 추천해 대통령이 그 후보자들을 임명하도록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공공, 기업, 정치, 시민사회 등 사회 각 부문이 참여하여 '2050 청렴국가'를 추구할 투명사회협약의 재활성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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