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79화. 오시리스의 축복
홍수를 재앙에서 축복으로 바꾼 힘의 원천은
오랜 옛날 세상은 물로 가득했습니다. 누(Nu)라고 불리는 물은 혼돈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안에는 온갖 가능성이 담겨 있었죠. 어느 날 혼돈의 물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올랐습니다. 파란색의 나일 수련이었죠. 아침이 되어 꽃잎이 펼쳐지자 그 안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아침의 태양, 아툼(Atum)이 태어났죠. 위대한 아툼은 자신의 침으로 습기의 신 테프누트(Tefnut)와 공기의 신 슈(Shu)를 만들어내고, 이들이 다시 하늘의 여신 누트(Nut)와 땅의 신 게브(Geb)를 낳으니 하늘과 땅이 떨어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가능성을 지닌 혼돈의 물에서 나일강이 태어나니 신성한 강을 중심으로 대지가 펼쳐졌어요.
그리고 누트와 게브로부터 오시리스(Osiris)와 이시스(Isis), 세트(Set), 네프티스(Nephthys)가 태어나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풍요의 신 오시리스가 나일강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바로 이집트죠. 최초의 파라오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정의롭게 다스리며 농업과 법률,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이집트는 최초의 번영과 평화를 누렸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어요. 오시리스의 동생인 세트가 그를 질투했기 때문이죠. 혼돈·폭풍·전쟁의 신이자 사막의 지배자인 그는 번영하는 이집트를 욕심내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그의 몸을 찢어서 나일강에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오시리스는 죽어서도 이집트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그의 시신이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곳곳에 퍼져 비옥한 기운을 준 것이죠. 오시리스의 시신은 아내 이시스가 다시 모았지만, 그의 축복은 나일강에 영원토록 남겨져 이집트의 땅을 풍요롭게 해 주었습니다.
이집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번영한 문명이에요. 특히, 농경이 발달해 풍요를 누렸죠. 사실 이집트의 국토 대부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입니다. 그런데도 이집트가 번영을 누린 것은 오시리스의 기운이 깃든 나일강 덕분이었죠. 한때 세계에서 제일 긴 강으로 여겨졌던 나일강(아마존강이 약간 더 길어요)은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 중부에서 시작하여 여러 나라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듭니다. 이집트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나일강 특히 유기물이 풍부하여 더 짙은 색을 지닌 블루 나일강의 상류 지역은 고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죠. 덕분에 나일강을 따라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에는 홍수를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영감을 준, 수메르의 대홍수 신화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집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홍수를 축복으로 여기며 이를 기리는 이야기를 남겼어요.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나일강의 범람을 상징하는 신, 하피(Hapy) 이야기가 그것이죠. 홍수와 범람의 신이라면 무서운 존재로 생각되겠지만, 이집트인들에게 하피는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일강에 담긴 오시리스의 축복을 사막 곳곳으로 전하고 생명을 낳는 신이기 때문이죠.
오시리스의 시신이 남긴 풍요로운 기운이 나일강에 담긴 만큼, 이집트의 사막을 되살리려면 나일강의 물길이 사막의 대지를 적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홍수의 신 하피가 바로 그 역할을 맡는다고 여겼죠. 매년 여름이 되면 나일강 상류 지역이 우기에 접어들며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강 주변은 낮은 평야라 불어난 물은 주변으로 넓게 퍼져나가 대지를 적시는데, 이 과정에서 물과 함께 나일강의 풍부한 유기물이 대지에 남아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요.
몇 달이나 계속되는 범람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대지를 적신 오시리스의 힘은 거름이나 비료가 없이도 먹고 남을 만큼 작물이 자라게 해 주었습니다. 나일강의 홍수는 농사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홍수로 농사를 짓지 못할 때 이집트인들은 다양한 건설 공사를 벌이곤 했는데, 불어난 나일강은 돌이나 나무 같은 자재를 옮기는 운송로가 되었기 때문이죠.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피라미드나 신전이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나아가 홍수로 인해 쓸려나간 농경지를 다시 정비하고자 건축술과 기하학, 그리고 수학이 발달했죠.
그들은 홍수를 신의 축복이라 여기며 고마워했습니다. 이집트 역사상 많은 왕조가 홍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멸망했는데, 그때마다 이집트인들은 혼란의 신 세트가 하피를 위협했기 때문이라 여기며 슬퍼했죠. 하지만 그들은 신에게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범람이 일어나는 시기와 상황을 예측하고자 천문학이 발달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수천 년에 걸친 이집트의 번영. 그것은 단순히 신의 축복이나 기적이 아니라, 흔히 재앙으로 여겨지는 홍수를 반갑게 맞이하며 활용하면서도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위기에 대처하고자 했던 이집트인들의 지혜가 이룬 결과입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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