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학숙제, 일기도 없다…이유가 "사생활 침해 소지"

서지원 2024. 8.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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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동작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생활계획표를 들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파주시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교사(29)는 지난달 여름 방학식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체크리스트’를 나눠줬다. 방학 동안 책을 읽거나 운동한 날짜에 표시해 오라는 게 유일한 여름방학 숙제였다. 그는 “요즘에는 방학 숙제를 아예 안 내는 경우도 많고, 내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며 “학생이 방학 숙제를 ‘셀프’(self·스스로)로 설정하고 수행하는 형태도 많다”고 말했다.


“버킷리스트가 방학숙제”…개학 전 ‘일기 벼락치기’ 없다


김영옥 기자
초등학교에서 방학 숙제가 사라지고 있다. 숙제의 대표 격이었던 일기 쓰기는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점점 축소됐다. 서울의 한 초등교사는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기를 써오는 경우에만 글쓰기 교육과 소통 차원에서 피드백을 해준다”며 “학생 때 일기 쓰기에 거부감을 느꼈던 세대가 교사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뀐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독후감 역시 책 읽은 날짜를 표시한 ‘독서 달력’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으로 형식이 자유로워졌다. 이렇게 숙제량이 줄면서 개학을 앞두고 벼락치기 하듯이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지난해 2학기 개학을 맞은 8월 대구 중구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학생들의 키를 재고 있다.뉴스1

방학 숙제를 아예 학생의 ‘버킷 리스트’(하고 싶은 일 목록)로 내주는 학교도 있다. 학교 밖에서 방학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또는 부모와 함께 적는 것이다. 부모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린 인증 글을 보면 ‘키즈카페 가기’, ‘친구와 전화하기’ 등을 방학 숙제로 실천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외국 한 달 살기, 학원 뺑뺑이…“학교 숙제 무의미”


지난달 23일 서울 시내 한 학원가에 초등 의대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방학 숙제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건 학생들이 방학을 보내는 방식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의 한 초등교사는 “학기 중에도 여행과 캠핑을 가는 학생이 많아 이른바 ‘개근 거지’라는 말이 생길 정도인데, 방학에는 아예 제주도나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며 “학생들이 대부분 학원에 다니다 보니 방학 때라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지도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방학 숙제를 할 시간적인 여력과 효용성이 줄었다는 얘기다.

학부모들의 민원이 걱정돼 숙제를 안 낸다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방학 때까지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도는 초등생들이 많아서다. 경기 지역 한 초등교사는 “학원 숙제할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수년 전부터 방학 숙제는 학부모와 교사 서로에게 부담이 됐다. 초등 방학 숙제는 입시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듬 깨지고, 학습 격차 커진다” 우려도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시 한 초등학교에서 방학식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보다 방학 숙제가 간소화되면서 학생들의 생활 리듬이 망가지고 학습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박모씨는 “숙제는 없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개학 이후에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여름 방학은 1학기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2학기 학습을 준비하는 전환기인데, 이 기간에 부모의 관심 정도에 따라 학습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며 “가정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 역할의 방학 숙제는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유신 초등교사(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장)는 “학생들의 미디어 노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점을 고려해 기존의 생활 계획표를 ‘미디어 생활계획표’로 변형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인식하면 절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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