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통 CEO의 저주…"투자자들은 인텔 플러그 뽑아버렸다"

대마(大馬)는 죽을 수도 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자, 여전히 중앙처리장치(CPU)의 강자인 인텔이 ‘바뀌기엔 너무 거대하고, 실패하기엔 너무 중요한’(월스트리트저널) 미국의 고민거리로 전락했다. 12조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으로도 혁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분기 실적 발표 후 투자자들이 인텔의 플러그를 뽑아 버렸고, 인텔 주가는 1981년 이후 최초로 장부(대차대조표상 시설·자산) 가치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인텔은 지난 2분기 매출 128억3000만 달러(약 17조5100억원)에 순손실액 16억1000만 달러(약 2조2000억원)로,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했다. 회사는 15%(약 1만5000명) 감원과 배당금 취소로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난 열흘간 주가는 36% 내려갔다. 다음 달 개최 예정이던 기술 콘퍼런스도 취소했다.
‘주가 부양’ 재무통 CEO가 놓친 AI
인텔이 2017~2018년 무렵 오픈AI에 투자할 기회를 걷어찼다고,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아직 챗GPT를 내놓기 전이었던 오픈AI는 인텔의 칩을 원가에 구매해 AI 훈련 인프라를 마련하고 싶어했고 오픈AI의 지분 15%를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에 사라고 인텔에 제안했으나, 당시 밥 스완 최고경영자(CEO)가 거절했다는 것. 통신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스완 CEO가 생성 AI 투자의 회수 가능성을 어둡게 본 탓이라고 전했다.

장기 투자 없이 부양책으로 끌어올린 주가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1년 초 60달러 이상이던 주가는 지난 11일 19.72달러에 마감했다.
40년 엔지니어 CEO에 12조 보조금까지, 그러나
2021년 초 취임한 팻 겔싱어 CEO는 18세에 고졸 품질관리 기술자로 인텔에 입사, 일하며 주경야독으로 스탠포드대 석사까지 마친 정통 인텔맨이다. 그러나 겔싱어 CEO 취임 후 지난 3년 반 동안 인텔 주가는 68% 하락했다. 3~4년 이후의 제품을 미리 개발하는 반도체 업계 특성 상 CEO 교체 효과가 늦게 나온다지만, 문제는 뚜렷한 반등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인텔의 아크 GPU는 시장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고, 기존에 강했던 서버용 CPU마저 AMD에 점유율을 뺏기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는 인텔의 변화가 느리다며 ‘칩질라(칩+고질라)’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위탁생산)에 크게 베팅했다. 특히 첨단공정 기술을 단숨에 끌어올려 올해 안으로 1.8나노 양산에 돌입하며, 이를 위해 대당 5000억원에 달하는 ASML의 차세대 노광장비 High-NA EUV도 가장 먼저 도입하겠다는 포부다. 보조금 확보에도 총력전을 폈다. 2022년 8월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칩스법을 통과시키자, 인텔이 국회·국방부·상무·백악관 로비스트 비용을 두 배 늘렸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미국 정부는 인텔에 85억 달러(약 11조 6000억원)의 보조금 지원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텔 파운드리의 경쟁력은 의심받고 있다. 2022~2023년 인텔 파운드리 기술고문을 맡았던 양광레이 전 TSMC R&D 이사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인텔의 문화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중요한 파운드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직접 보기 전에는 인텔 파운드리의 성공 확률을 50%로 생각했으나, 직접 보니 10% 미만”이라고도 덧붙였다. 인텔 파운드리 수장은 지난 3년 새 3명이나 들어섰다. 인텔은 지난해 말 글로벌 후공정(OSAT) 기업 JCET의 이춘흥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첨단 패키징 총괄 책임자로 영입하며, 패키징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는 해고도 자유롭지만, 회사에 혁신이 없다 싶으면 인재 유출도 순식간이다. 사업 성과 부진에 조직 개편 등이 겹치자 인텔 수석 아키텍트로 GPU 사업부를 맡았던 라자 코두리 부사장이 지난해 퇴사했고, 데이터센터용 CPU 담당자인 리사 스펠만 부사장은 지난달 퇴사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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