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돈과 함께 잃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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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는 다른 것보다 '돈 쓰기에만큼' 좋았던 시절이었다.
업계 전체가 만년 적자였지만 언제나 현금이 들어오는 장사를 해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온라인쇼핑의 세계가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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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는 다른 것보다 ‘돈 쓰기에만큼’ 좋았던 시절이었다. 제로금리 시대라 유동성이 넘쳤고, 유통업계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시기였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게 익숙했던 날들이었다.
그 무렵은 ‘쇼핑 플랫폼 춘추전국시대’라고도 불렸다. 절대 강자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전이 가열차게 펼쳐졌다. 핫딜과 타임딜이 넘쳤다. 쿠팡과 네이버쇼핑의 양강 구도가 점차 굳어지긴 했지만 다른 기업들도 건재했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업계 전체가 만년 적자였지만 언제나 현금이 들어오는 장사를 해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쇼핑 플랫폼 기업들은 비대면 경제의 일상화에 기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비대면 경제가 한국사회를 큰 문제 없이 굴러가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8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고, 이후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쇼핑 플랫폼이 중소상인들에게 ‘판매의 장’을 열어주면서 팔 길도 살 길도 열어줬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경제 환경이 됐다.
온라인쇼핑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건 1996년이었다. 롯데닷컴이 문을 열었고 인터파크, 옥션, G마켓 등이 생겨났다. 2010년대 전후 ‘소셜커머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쿠팡, 티몬(당시 사명 티켓몬스터), 위메프 등은 오픈마켓으로 확장하며 몸집을 키웠다. 롯데, 신세계, SK 등 대기업까지 본격 뛰어들며 2010년대 후반부터 성황을 이뤘다. 온라인쇼핑의 세계가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 때문이었다. 만져보지도 못한 물건을 사고, 받지도 못한 상품에 계산부터 하는 이 시스템은 믿음 없이 정착할 수 없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내가 산 상품이 별다른 문제 없이 나에게 올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된다. 결제부터 했는데 이 상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며 물건을 받기까지 애면글면 살지 않는다는 소리다. 더러 그런 일도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들이다.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가 탄탄했다.
그래서 티몬·위메프 사태가 막 터져 나왔을 때 업계 안팎에서는 ‘설마’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일시적으로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뿐이라는 해명 또한 그럴 법한 일로 여겨졌다. 업계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하나둘 입점업체가 빠져나가며 심리적 담보에 금이 갔고 “머지포인트 때처럼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덮쳤다. 뱅크런 수준의 취소·환불 사태가 이어졌다. 28년간 쌓아온 신뢰는 이렇게 단숨에 무너졌다. “결제한 물건을 못 받고, 환불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경험이 생겼다.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시기가 길어지고 있다. 유동성이 팬데믹 시기만큼 풍부하지 않다.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걸 목격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자로 버텨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최저가 신화’는 이렇게 신뢰를 말아먹으며 곤두박질쳤다.
여러 이커머스 기업이 “우리는 괜찮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시장이 위축될 우려가 나온다. 중소 플랫폼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물건을 살 때 재정건전성이 탄탄한지 확인하는 소비자들도 생겼다. 무너진 신뢰가 사회적 비용을 거둬들이고 있다. 잘못한 것 없는 이들까지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티메프 사태 피해액은 1조2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신뢰 추락에 따른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가 된 사회를 이렇게 또 경험한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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