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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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왔다.
영화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매일을 그린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필름카메라로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을 찍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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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왔다. 영화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매일을 그린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필름카메라로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을 찍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에 그는 성심을 다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직접 청소 도구를 만들고 아무도 보지 않는 변기 구석구석을 살피며 닦고 광을 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여러 측면에서 ‘퍼펙트 데이즈’는 비판할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그러나 주인공 히라야마의 태도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형식과 공명하는 데가 있어 얼마간의 감동을 받고 말았다. 사소한 일상을 반복하며 삶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 타인과 극적으로 연루되거나 크고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눈앞에 들이닥치는 사소한 풍경들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는 것. 나의 생존과 욕망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지 않는 것. 이런 금욕적이고 수행적인 삶은 언제나 내가 갈망하는 것이다. 살아감에 있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그 상태 속에서 스스로 충만하고 안전할 수 있다면 그만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안정적이고 단조로운 것처럼 보이는 히라야마의 일상은 동시에 매우 연약하여 쉽게 침범받는다. 동료의 여자친구가 아끼는 카세트테이프를 빌려 가거나 가출한 조카가 갑자기 집에 찾아오는 식이다. 이러한 반복이 깨지더라도 그는 분노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생활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흐트러짐 없는 일상이란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나를 해치는 수많은 위협 역시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갈고 닦아나가는 것. 그러한 태도야말로 삶의 정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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