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독립 정신의 자기 말살 안 된다
주권국 인정 받아야 독립국
힘 약할 때 강대국에 의존해도
권토중래 하려는 결기 필요해
독립운동 폄하한 인물 중용은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독립은 아주 중요하다. 독립이란 홀로 선다는 뜻이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음을 이른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독립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일화를 들어 설명하는데, 효과가 꽤 좋은 편이다.
대학 신입생과 어머니가 대화한다. 아들: “엄마, 저 원하던 대학에 붙었어요.” 어머니: “그래.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들: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독립할래요.” 어머니: “그래. 기특하구나. 이제 다 컸네.” 아들: “그러니까 학교 앞에 방 구하게 돈 주세요.” 바로 여기서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들이 보기에도 웃기나 보다.
부모의 집을 떠나 거주 공간을 달리하면 곧 독립일까. 그렇지 않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마련한 학교 앞 원룸은 결코 독립 공간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종의 식민지일 뿐이다. 아들은 그 식민지의 총독이며, 제국(부모)에서 오는 지원이 끊기는 순간 방을 뺄 수밖에 없다.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서구 선진국일수록 개인의 독립은 재정적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자식은 진학이나 취업 등으로 대개 부모 집을 떠난다. 학자금은 대출로 해결하고 월세와 생활비는 일을 해 마련한다. 물론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18세 성인(투표권자)이 된 자식을 계속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미국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나라의 역사 진행 과정에서도 독립은 무척 중요하다. 여기서 독립국이란 주권국(sovereign state)을 이르는데, 국제무대에서도 그렇게 인정받는 나라를 의미한다. 공식적으로 다른 특정 국가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다면 흔히 속국(vassal state)으로 불린다. 현대사회에서는 속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져 겉으로는 모두 주권국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속국이 적잖다. 냉전시대에 유행한 위성국가(satellite country)도 그 한 예다. 멀리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냉전시대 대한민국이 과연 온전한 주권국이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즉답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이든 국가든 그런 독립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라도 맞닥뜨릴 수 있다. 독립정신이 중요한 까닭이다. 비록 지금은 상황이 불리해 독립이 어려워도 머지않아 권토중래하리라는 결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부모에게 의지하고 강대국에 의존하며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할지라도, 언젠가는 홀로 우뚝 서리라며 마음속 깊이 칼을 품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이유도 바로 그분들의 독립정신과 그 형극의 실천을 거울삼아 되새기기 위함이다.
한반도가 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일 테지만 한반도 통일 이후의 역사를 조망하면 국제무대에서 온전한 주권국으로 자리한 시기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런 역사가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중원에 자리한 워낙 거대한 제국이 동아시아 전체를 주도하던 형국이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주권을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제국 질서에 순응하는 길뿐이었다.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다만 그런 경험이 워낙 오래 쌓이다 보니 이제는 속국으로 지내는 일에 익숙하고 편해져 독립정신마저도 잃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광복 후에도 상황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래도 박정희 때는 독립정신이라도 있었다. 정치적 흠결도 많았으나 산업근대화를 통해 메이지 일본처럼 부국강병 하려는 목적은 분명한 편이었다. 그것이 바탕이 돼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몫도 괄목할 만하게 커졌다.
단 선진국이면서 속국인 나라는 없다. 그러나 지난 2~3년간 대한민국의 외교를 보면 ‘기브 앤드 테이크’가 거의 없다. ‘쿨’ 하게 인정하고 양보하지만 상대국으로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얻어낸 건 없다. 21세기 들어 어렵게 이룩한 독립주권국의 위상을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독립정신은커녕 ‘위성국가’가 편하다는 심산이다.
심지어 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또 사달이 났다. 그동안 독립운동과 광복을 폄하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던 자를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임명했다. 독립정신의 자기 말살이요,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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