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의 이코노믹스] 노란봉투법, 일부 노조 이익만 우선해 양질 일자리 없앤다
노란봉투법과 파업의 경제학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다 듣던 라디오에서 이런 광고가 나왔다. 지난 5일 여당이 표결에 불참하고 야당이 밀어붙여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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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쟁의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란봉투법, 논란 속 국회 통과
노조·근로자의 불법 파업 손해
면책 확대하며 노동관계법 훼손
하청업체 대기업과 단협할 수도
노사관계 정치화 부추길 가능성
」
노동조합법 제2조·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노동위원회와 법원 등을 통한 형사 처벌을 포함한 구제 절차가 마련돼 있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서도 부당노동행위라는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해 파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했다. 불법 파업에 참여하는 각각의 행위자에 대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등 근로자의 노조할 권리와 단체행동할 권리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13%의 근로자를 위한 법
광고임을 감안하더라도 노란봉투법에 대한 내용은 과장 광고를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모든 노동자가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13%에 불과한 노조원의 권리를 위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체 노조 조합원 수는 272만2000명, 노조 조직률은 13.1%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중심으로 돼 있다.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의 조직률은 36.9%, 100∼299명은 5.7%, 30∼99명은 1.3%, 30명 미만은 0.1%다. 부문별 노조 조직률을 보면 민간 부문은 10.1%, 교원은 21.1%지만 공공부문과 공무원의 조직률은 각각 70.0%, 67.4%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100인 미만 사업체의 상용직 대졸 초임을 100으로 했을 때 100∼999인 사업체는 114.8, 1000인 이상 사업체는 151.7이다. 1000인 이상 기업과 1000인 미만 기업의 임금 격차가 크다. 일본은 100인 미만 사업체의 상용직 대졸 초임을 100으로 했을 때 100∼999인은 107.2, 1000인 이상은 113.4로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노조가 견인하는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은 중소기업 인력난과 청년 취업난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이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보수가 높고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취업 재수·삼수까지 하지만 대졸자 중 소수만 대기업에 들어간다. 상당수 대졸자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자리에 취업한다. 대기업과의 격차로 청년들이 취업을 원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구인난으로 외국 인력의 도입 확대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많은 대기업은 노조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노조 행태에 부담을 갖는다. 이로 인해 공장을 신설하거나 확장해도 인력 채용을 최소화하고 자동화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중심 근로자(13%)와 노조조차 조직할 여건이 안 되는 나머지 87% 간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초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기아차 그룹이 지난 20여년간 국내에 새로운 내연 자동차 공장을 세운 것은 광주광역시와 합작으로 만든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유일하다. 광주글로벌모터스를 설립할 수 있던 건 광주형 일자리가 국가사업으로 확정돼 정부의 압력이 있기도 했지만, 임금 수준을 현대·기아차보다 낮췄고 임금·단체협상을 초기 5년간 유예했던 덕도 있다.
지난달 삼성전자 노사의 ‘끝장 교섭’에서 노조 측이 파업위로비로 200만원(자사제품 구입 상품권) 지급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무리하고 비합리적인 행태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노조 단체행동 부추길 듯
노란봉투법은 노사 분쟁의 정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으로 변경해 확대했다. 2020년 105건으로 줄었던 노사분규 발생 건수가 2021년(119건) 이후 2022년(132건)과 2023년(223건)까지 지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는 파업 지향적인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부추겨 글로벌 경쟁력 평가에서 세계 꼴찌 수준에 머무는 우리나라 노사관계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지나치게 노조 편향적인 데다 현행 노동관계법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하고 있다. 노조가 정당한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 형사상 처벌을 면책하고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해도 사용자는 노조 및 근로자에게 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반면 법에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거나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쟁의 행위를 하는 경우 노조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주요국 중 유일하게 노조의 배상 한도를 법으로 정한 영국도 노조원의 경우 민사상의 배상책임 한도가 없고 불법적 단체행동에 대한 법원의 ‘임시 금지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법원모독죄로 노조에 벌금이 부과되고 노조의 재산을 가압류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 및 근로자의 면책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청구가 제한되는 쟁의의 범위에 불법 파업을 의미하는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한 손해를 포함하고 있고,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근로자의 이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면제했다. 또한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명시해 배상 청구를 어렵게 했다. 근로자의 신원보증인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배상할 책임을 면제했다. 사용자가 노조 또는 근로자의 손해 배상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경우 배임 등 사용자의 손해배상 책임 역시 예외적으로 면제하고 있다.
한국 파업손실일 수, 독일의 6배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 차로 인해 노사협상 과정 중에 분규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파업 발생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파업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생산 손실에 따른 매출 감소 등 손해를, 근로자는 파업에 따른 임금 손실을 감수해야 하므로 분규가 장기간 지속하지 않고 종식되는 틀이 갖춰져 있다. 파업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강조되는 것은 근로자가 파업에 따른 임금손실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파업을 장기간 지속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면책 조항을 담은 노란봉투법은 법원의 점거 중지 명령까지 지키지 않는 국내 일부 노조의 파괴적 행태를 더욱 조장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2~21년 우리나라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노동손실 일수는 38.79일이다. 노조 조직률이 우리보다 높고 강력하며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독일(5.77일)의 6배 수준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쟁의 발생 건수는 113.5건으로, 독일(1119건)의 10분의 1, 노동쟁의 참가자 수는 독일(19만4400명)의 절반 수준인 10만4800명이었다. 파행적인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로 확대해 대기업의 하청 회사들이 대기업과 직접 단체 협상하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원청 대기업이 수십 수백 개의 하청 기업 노조로부터 교섭을 요구받고,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가 사용자가 돼 수백 개의 공공기관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소모적 정쟁 접고 노동개혁 나서야
노란봉투법으로 노사관계가 극도로 정치화할 가능성도 크다. 노란봉투법대로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한 현행법의 조항을 폐지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관계없는 자까지 노동관계 당사자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성장과 발전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조항은 노란봉투법에서 가장 큰 폐해가 예상되는 독소 조항이다.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노사관계에 당사자 아닌 활동가들이 개입해 사업장은 문을 닫아도,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장기간 파업이 지속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다. 기업별 노사관계의 구조 속에서 특정 기업이 노사정간 정치적인 다툼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지금 변곡점에 와 있다. 현 정부 들어 산업현장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지만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는 노조 회계 공개도 힘겹게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과도하게 정치 지향적인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의 이익만을 우선해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주저하게 함으로써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없애 버리는 노란봉투법은 반시대적이다. 일방적 국회 통과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같은 소모적 정쟁보다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는 청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노인들도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노동개혁에 여야와 노사정이 힘을 합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바닥권인 노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는 길이기도 하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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