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혼수 필수품 됐다…日거리 뒤덮은 '마마차리' 뭐길래[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2024. 8. 1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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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4일 오후 6시 쯤 일본 도쿄 아케보노바시(曙橋). 마을 사람들이 여는 여름 축제인 봉오도리(盆踊り·백중맞이춤)가 시작되자 아이를 태운 자전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마차리’라고 부르는 일본식 자전거다.

마마치리는 일반 자전거에 아이가 앉을 수 있는 전용 의자를 달아놓은 독특한 형태를 지녔다. 일견 자전거와 유모차를 하나로 합친 형태다. 아이를 최대 셋이나 태우고 이동할 수 있는 이 자전거의 이름은 엄마를 뜻하는 ‘마마’에 자전거를 편하게 부르는 말 ‘챠리’를 합쳤다.

일본에선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반드시 구입하는 필수품으로 한때는 혼수 필수품으로 불리기도 했던 마마차리. 1817년 세계 최초로 유럽에서 발명됐던 자전거는 어떻게 일본에 들어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을까. 지난 2일 오사카(大阪) 사카이(堺)시에 있는 시마노자전거박물관의 진보 마사히코(神保 正彦) 학예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에 있는 시마노 자전거박물관은 자전거에 대한 친근함을 높이기 위해 매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그림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 2일 오사카지역 아이들이 자전거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사카=김현예 특파원

외국문물인 자전거가 일본에 들어온 건 메이지(明治) 시대인 1870년대였다. 당시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주요 거점이었던 요코하마(横浜)와 고베(神戸)를 통해 들어오면서 조금씩 일본에 퍼졌다. 요코하마의 상점가 사진이 남아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사진에 찍혀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남성으로, 높이가 높아 체격이 작은 여성들이 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탔던 기록은 1909년 일기로 “자전거를 탔더니 남자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웃었다” 내용이 남아있다. 진보 학예사는 “여성이 타기 쉽게 만든 자전거 '스마트 레이디(smart lady·1956년)'가 등장하면서 여성 이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자전거 소유 비율은 전국 평균이 8.6%. 기업들에겐 이 낮은 비율이 새 시장이었다.

마마차리. 김현예 특파원

도전장을 내민 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야마구치 자전거다.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쉽게 탈 수 있도록 본체를 구부려 만들고, 뗐다 붙일 수 있는 바구니를 달았다. 안장 높이도 낮췄다. 당시 출시 가격은 1만3500엔으로, 공무원 월급의 1.5배에 달하는 높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미용과 건강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광고까지 내놓으면서 여성용 자전거는 불티난 듯 팔렸다. 진보 학예사는 “당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 결혼할 때 혼수 필수품이 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단지’ 생겨나면서 마마차리로


지난 3일 일본 도쿄 아케보노바시에서 열린 마을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아이들을 태우고 온 마마차리가 나란히 세워져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들어가면서 ‘단지’로 불리는 집단 주거지역이 생겨나면서 자전거는 또 한 번의 변화기를 맞았다. 슈퍼마켓이 들어서고 상점가에서 쇼핑하는 구조로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앞치마를 매고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사고 돌아오는 여성들이 늘었다.

기존보다 작은 스타일의 ‘미니사이클’(1970년대)은 그렇게 확산됐고, 바구니가 달린 작은 자전거는 여성을 상징하는 자전거로 자리를 잡았다. 자전거문화센터에 따르면 여성용 자전거 생산대수는 1961년 126만대에서 1988년 480만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이때 붙여진 이름이 마마차리 진보 학예사는 “당시만 해도 남편은 일하고 아내는 가정을 돌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회 문화가 형성되면서 여성들이 타는 자전거가 마마차리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모차 기능 더한 마마차리로의 진화


마마차리가 진화하게 된 건 야마하발동기의 기술 덕이었다. 1993년 이 회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파워 어시스트(PAS) 시스템을 적용한 자전거를 내놨다. 페달을 밟는 힘을 전동 센서로 보조하게 된 것으로 힘을 덜 들이고도 일정한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 아이 한둘을 태우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줘야 하는 부모들에게 전동 어시스트 자전거는 획기적이었다.

2009년 일본 정부는 아예 아이 둘을 태울 수 있는 자전거 규격을 정하면서 마마차리는 시속 24㎞로 달릴 수 있는 현재의 형태로 정착했다. 최대 아이를 3명까지 태울 수 있는 강도의 프레임을 장착하고, 유아 전용 시트를 장착해 달릴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지난 8일 오전 8시경 일본 도쿄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태우고 지나가고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쇼핑하거나 아이를 태우는 자전거로 장착한 마마차리 가격은 2만~3만엔대 제품도 있지만 유명 회사 제품은 14만엔(약 13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유아시트가 장착된 경우엔 15만엔(약 139만원)을 넘어가는 것이 일쑤지만 아이를 둔 부모들에겐 전동 자전거인 마마차리는 필수품이 됐다.


마마차리 경주대회도


매년 1월 일본 후지스피드웨이에선 마마차리 경주대회가 열린다. 사진 후지스피드웨이
마마차리가 일본인의 발로 정착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의 한 80대 남성은 마마차리를 타고 일본 남부지역 시고쿠(四国) 일주에 도전하기도 했다. 마마차리만의 경주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후지산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마마차리그랑프리 대회. 참가자들이 팀별로 출전해 교대로 자전거를 타면서 6시간을 달리는 것으로 올해로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5세부터 7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할 수 있는데 많은 인기를 자랑한다.
자전거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선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곳엔 대형 자전거 주차 시설이 마련돼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통근이나 통학, 쇼핑 등 일상에 자전거가 녹아들면서 일본에선 자전거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다. 일본 자전거산업진흥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일본 내에서 판매된 자전거는 578만 여대에 달한다.

자전거가 지방 관광을 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일본 돗토리(鳥取)현의 작은 역인 후쿠베(腹部)역엔 외국인 관광객이 온다. 이곳에서 5㎞ 떨어진 유명한 모래 언덕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 역으로 찾아오자 관광객들에게 하루 500엔에 전동 자전거를 빌려주기 시작했다. 진보 학예사는 “일본이 자전거 보급이 많이 되다 보니 천천히 달리는 마마차리를 포함해 어떤 자전거를 타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지 디자인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들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시마노 자전거 박물관은

「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에 위치해있다. 일본 유일의 자전거 박물관으로 세계 최대 자전거 부품 회사인 시마노가 세웠다. 1921년 자전거 부품회사들의 집약지였던 사카이에 세워진 시마노는 1992년 자전거 박물관을 처음 세웠다. 시마노는 이후 자전거의 보급과 미래를 위해 박물관을 새단장해 지난 2022년 지금의 형태로 문을 열고 있다. 세계 자전거의 역사를 비롯해 일본 자전거 산업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사카=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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