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선] ‘8·8 대책’에 드리운 임대 트라우마

하현옥 2024. 8. 12. 00: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현옥 논설위원

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맞은 사람은 잊지 않는다. 어디를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잊을 수가 없다. 가끔 후유증도 앓는다. 맞은 이유를 알기도 하지만 모르기도 한다.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때린 이유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경우도 다반사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길게 남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8·8 부동산 대책’ 중 빌라(다가구·다세대·연립 주택) 등 비(非)아파트 시장 활성화 방안에 담긴 임대인 지원 내용 때문이다. 정부는 빌라 임대 수요를 늘리기 위해 신축 소형주택을 사면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양도소득세 산정 기준 주택 수에서 해당 주택을 제외하는 기한을 2년 연장(2025년 12월→2027년 12월)하기로 했다. 또한 기축 소형주택을 2027년 12월까지 구입해 등록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세금 산정 시 주택 수에서 빼주기로 했다. 전용면적 60㎡ 이하, 취득가격 3억원 이하(수도권 6억원 이하)인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 도시형 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이 소형주택에 해당한다.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따르면 기존에 지어진 소형주택을 구입해 등록임대주택으로 등록·임대하는 경우 세금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사진은 도심 아파트 단지. 뉴스1

이는 세제 혜택이란 당근을 내걸고 빌라 임대 수요 정상화를 꾀하려는 정부의 포석이다. 빌라 전세 사기 등으로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집중되고, 그 결과 아파트 전셋값이 뛰면서 아파트 매매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 빌라 전세 수요가 줄고 매매 가격이 하락하며 신축 빌라 공급은 절벽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서울의 빌라를 포함한 비아파트 공급(인허가 기준) 물량이 약 2000호에 그치며, 주거 사다리도 끊어질 위기다.

과열되는 부동산을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조급함은 안쓰럽지만, 시장이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주택 임대사업과 관련해 이미 뜨거운 맛을 봤던 기존 임대인들, 그리고 이 ‘시범 조교’들이 화끈하게 당한 일련의 과정을 본 시장이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정부에 대한 신뢰에 상당한 금이 간 상태라서다. 이른바 ‘학습효과’다.

「 과거 오락가락 정책 종부세 폭탄
세제 혜택, 빌라 수요 회복 모색
시장 “뒤통수 맞을 수 있다” 냉소

2017년 12월 13일 정부 합동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모습. 국토교통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7년 말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사업자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등록 임대주택사업을 장려했다. 정부가 내건 각종 세제 혜택에 많은 이들이 아파트 임대사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집값이 치솟자 임대사업자를 투기성 다주택자로 지목하며, 9개월만인 2018년 8월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방침을 밝혔다. ‘임대사업자 학살’로 불릴 만큼 그야말로 세게 뒤통수를 쳤다. 2020년에는 아파트 임대사업자 등록을 폐지했다.

이번 세제 지원 대상인 소형주택의 임대인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그동안 속 꽤나 탔다.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산입(2020년 8월)하고, 도시형 생활주택을 아파트로 분류하면서 임대사업자 등록이 허용되지 않아 다주택자가 되며 종부세 등 세금 폭탄을 맞았다. 임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소형주택에 줬던 각종 혜택이 사라지면서 거래도 뚝 끊겼다. 갑작스런 제도 변경에 처분도 못 한 채 세금 등 부담만 커진 것이다.

2020년 7월 10일 정부는 다주택자의 취득세 중과 내용 등을 담은 부동산 세제 대책을 발표했다. 당정은 취득세 계산의 바탕이 되는 주택수의 기준에 주거용 오피스텔과 분양권·입주권도 포함시켰다. 뉴스1

때문에 정부의 빌라 임대 수요 확대 방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소로 가득하다. 지금이야 아쉬우니 1주택자까지 끌어들이려 당근을 앞세우지만, 시장 상황이 달라지고 정권이 바뀌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사례에 비춰볼 때 소급 적용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닌 만큼 정부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빌라 전세 사기 방지를 위한 대책 등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빌라 임대인이 될 경우 도매금으로 사기꾼으로 매도당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세제 혜택 기간이 한시적인 만큼 이후 해당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있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얼마든지 물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대책이 먹히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시장이 전폭적인 신뢰를 주기에 부족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더 문제다.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이들이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다면 그저 국민을 호구로 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각종 수단을 남발한 탓에 유효한 카드도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꼬일 대로 꼬이고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의 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정권이 달라진다 해도 변치 않는, 지속 가능하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하루 만에 뚝딱 찍어낼 수 없는 게 부동산이라는 이유로 일단 비바람만 피하려 수치만을 나열하는 보여주기식 혹은 알리바이성 정책으로는 정부 신뢰 회복도 시장의 안정도 꾀할 수도 없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트라우마와 나쁜 학습 효과를 불식시켜야만 약발도 먹힌다.

하현옥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