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터치] 신박한 유대감
수십억원의 유산을 상속받은 고양이 ‘슈페트’는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반려묘(사진)다. 칼 라거펠트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존재로 프랑스 잡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는 “‘슈페트’가 내 상속녀다”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아직도 진행중인 수천억 원 유산의 법적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실제로 슈페트의 몫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매년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International Cat Day)’이다. 고양이의 권리 보호와 복지 증진을 위해 2002년 국제 동물복지기금(IFAW, 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에 의해 처음 제정되었다. 전 세계의 고양이 애호가들은 이날을 기념하며 고양이와의 특별한 유대감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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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보다 높아진 고양이 위상
독립성과 개인성이 주는 매력
시대와 함께 동반자 의미 진화
공간·개성 존중하며 유대 형성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고양이는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단순한 반려동물 이상의 독특한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위상을 자랑한다. 과거 선조들의 인식 속 고양이는 종종 음침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져 민간 설화나 전통 신화 속에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이르러 고양이는 선입견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디지털 시대의 발전으로 젊은이들에게 선입견이 전수되기 전에 고양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힐링 에너지가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먼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있는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옛 어른들이 만들어낸 편견을 이긴 셈이다.
고양이의 인기는 단순히 외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현대인의 삶과 깊은 공명 속에 있으며 독보적인 존재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개인주의가 부상하면서 고양이는 그들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으로 현대인을 매료시켰다. 그들의 독립성은 바쁜 일상 속에서 개인의 시간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완벽하게 어울린다. 마치 스스로의 길을 걷는 방랑자처럼, 고양이는 인간의 시선과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간다. 고양이는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깊은 위안을 주며 점점 현대인의 일상과 깊이 연결되고 있다.
같은 영역동물이라도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그 안에서 서열이 나뉘는 동물인 개와 달리 자신의 영역 안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고양이는 ‘나만의 공간’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영역을 중시하고 남의 영역을 존중하는 삶의 방식은 그들을 더욱 특별한 반려동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고양이의 치명적인 매력은 그들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무심한 애정’에 있다. 그들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때때로 주인을 향한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으로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밀당의 매력은 지나친 관계를 피하려는 현대인의 감정과 부합한다. 단순한 반려동물 이상의 존재로 우리 삶 속에 스며들고 있는 고양이의 존재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오롯이 반영한다.
고양이가 오랜 역사적 편견을 뒤엎고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로 등극한 이유를 논하다 보니 동반자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생긴다. 가장 이상적인 동반자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그것이 절대적인 존재,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는 흐르고,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동반자의 의미도 함께 진화한다. 한때는 절대적인 의존과 무조건적인 충성이 동반자의 핵심이라 여겨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동반자는 더 이상 그저 곁에 있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삶의 고유한 리듬에 맞춰 함께 호흡하며, 우리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존중하면서도 공존하고 나아가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과도 같다. 그들은 인간의 필요에 맞춰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로움을 유지하면서도 그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와 연결된다. 현대의 동반자는 서로의 공간과 개성을 존중하며,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존재로 변모한 것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 직장 상사·동료와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셀럽과 팬의 관계, 고객과의 관계까지 우리는 수많은 동반자와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와의 공존이 동반자 관계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 삶의 복잡성과 함께 진화하는 동반자의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 것처럼, 동반자들과의 공생 속에서 파트너십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다면 우리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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