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의료 개선의 방향
오랜만에 여름 휴가로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귀국했다. 딸이 아파서 비행기에서 한잠도 못 잔 채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 천호동에 있는 소아과 의원을 찾아갔다. 요즘 한국에서 출산율 감소와 더불어 소아과가 문을 닫는 추세라 진료받기가 힘들다는 말이 들려 걱정했는데, 예약 없이도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클리닉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처방전을 받아 나갈 때까지 친절한 간호사들에 둘러싸여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같은 증세로 캐나다 및 미국에서 며칠 걸려 치료한 경험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효율적인 검사 절차와 함께 융통성을 보여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감동을 받았다.
몇 달 전 캐나다에서 고열 때문에 소아과 병원을 여러날 오가며 답답한 진단 절차를 겪고 나서 결국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16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원했던 혈액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보편적인 의료 혜택을 전 국민에게 무료로 보장하는 캐나다의 사회주의적 보건의료보장 제도는 훌륭한 제도로 평가되지만, 간혹 효율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 뒤 미국에 여행 가서 같은 문제로 치료를 받았을 땐 보험이 없어 치료비로 200만원을 내야 했다. 민영 보험이 없는 사람은 비싼 진료비가 무서워 치료를 안 받고 고생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을 생각하면 오히려 캐나다 시스템의 단점은 사소한 문제로 인식된다.
올해 들어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펼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망가지지 않은 것은 고치려 하지 말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는 미국 남부의 속담을 떠올렸다. 우리나라만큼 의료체제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나라도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의료의 질도 평균적으로 최상위권이다. 모든 제도는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것을 일시에 무리하게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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