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승원 가람의 집합미, 순천 선암사
구절양장(九折羊腸). 양의 창자같이 첩첩 구불거리는 산길. 순천 조계산 동쪽에 자리한 선암사 가는 길에 딱 맞는 표현이다. 승선교라는 한 쌍의 무지개다리를 두 번이나 건넌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의 무대 같은 선경을 지나고 연못과 작은 폭포를 지나야 사찰에 이른다.
고려 중기, 대각국사 의천은 정치적 외압을 피해 1094년 이태 동안 이곳 선암사에 주석했다. 대각암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개성으로 환도하여 혁신 불교, 천태종을 창시하게 된다. 이때 선암사는 크게 중흥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후 호암 약휴(1664~1738)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 법당 전각 20동, 승방 16동, 암자 15개소의 대가람을 일구었다. 이후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큰 산사의 풍모를 유지하고 있다.
호암선사는 인근 고을의 토목공사를 지원해 민심과 재원을 얻어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다. 예의 승선교는 물론이고 최대 전통 교량인 벌교홍교도 그의 작품이다. 선암사는 여러 가람으로 구성된 집합형 사찰이다. 쌍탑이 있는 대웅전 일곽, 왕실 원당이었던 원통전, 칠전 선원과 응진전, 그리고 ㄷ자 승방에 숨겨진 각황전 일곽. 각각 특이한 배치로 이루어진 이 4개의 가람은 따로 분리해도 완전한 사찰이 될 수 있다. ‘부분이 전체고 전체가 부분’인 화엄적 세계관의 건축적 구성이다. 현존하는 4동의 승방들은 겉보기에 단층 같으나 안마당은 2층 혹은 3층의 생활공간을 이룬다. 각 승방별로 독자적 수행 생활을 했던 산사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다양한 건축공간이다. ‘가장 아름다운 전통 화장실’이라는 400년 된 대변소도 명작이다.
진정한 감동의 주역은 개별건물이 아니라 건물들 사이의 골목과 낮은 담장과 숨겨진 빈터와 작은 출입문들이다. 또 계곡 다리와 숲길과 차밭과 연못과 같은 인위적 자연, 조경과 경관의 집합들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절은 부분과 전체의 차별이 없고 주객이 뒤바뀌어도 더욱 아름답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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