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予死於道路乎(여사어도로호)
2024. 8. 12. 00:14
갈수록 장례문화가 간략해지는 것 같다. 공경과 애도는 줄고, 절차도 요식행위화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일부 부유층 노인들은 사후의 소홀한 장례를 염려하여 자신의 장례절차와 묘비를 세우는 일까지 유언한다고 한다.
‘노상행인구사비(路上行人口似碑)’라는 말이 있다. “지나가는 행인의 입이 곧 비문이다”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7의 말이다. 무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하는 망자에 대한 평 한 마디가 망자의 삶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진짜 비문이니, 생전에 선행으로 좋은 평을 얻어야지 죽은 후에 미사여구를 돌에 새긴들 무슨 소용이냐는 뜻이다.
공자의 병이 깊어지자 제자 자로가 자신의 문인을 가신(家臣)으로 삼아 스승의 장례를 치를 준비를 했다. 그러자 공자는 “나는 가신을 둘 지위에 있지 않은데 가신을 두려 하다니!”라고 꾸짖으며 “내가 설마 거리에서 죽기야 하겠느냐?”고 했다. 공자는 존엄한 죽음을 바랄 뿐, 분에 넘치는 장례는 원치 않은 것이다.
자손은 반드시 장례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치러야겠지만, 망자 스스로 호화장례를 유언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평소의 삶이 장례의 품위는 물론 사후의 평가를 이미 결정해뒀을 테니 말이다.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떠날 때는 말없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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