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자 시작된 ‘호수 위 오페라’…용·좀비가 나타났다
지난달 19일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밤 9시 15분에야 오페라 공연이 시작됐다. 거대한 호수 위로 석양이 완전히 사라진 뒤 막을 올리기 위해서다. 호수 위에는 높이 12m의 교회 탑과 지름 6m의 달을 비롯한 대형 무대가 떠 있었다. 카를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년 작품) 공연을 위한 신작 무대다.
브레겐츠 음악제는 1946년 시작해 올해로 78년째 계속되고 있다. 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의 접경지대인 콘스탄츠(보덴) 호수에 바지선을 띄우고 그 위에 무대를 설치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올해 음악제는 지난달 17일 개막,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2012년부터 페스티벌의 회장을 맡고 있는 한스-페터 메츨러는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매 공연의 티켓 평균 판매율이 99%”라며 “4주 동안 20만명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올해는 ‘마탄의 사수’가 공연되는 첫해였다. 브레겐츠는 2년마다 오페라를 교체한다. 그동안 ‘카르멘’ ‘리골레토’ ‘코지 판 투테’ 처럼 보편적 작품을 공연해왔던 브레겐츠는 올해·내년의 작품으로 독일의 가장 독일다운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골라 들었다.
브레겐츠의 ‘마탄의 사수’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우선 원작 2막에 처음 등장하는 악마 자미엘을 내레이터로 바꿔, 마치 변사처럼 작품 전체를 끌고 가도록 했다. 자미엘은 불을 뿜는 용의 머리에 올라타고, 아찔하게 높은 나무에 올라가 액션을 선보였다. 장대한 볼거리, 늘어난 대사, 또 내용의 각색을 거쳐 ‘마탄의 사수’는 한 편의 독일어 마당극처럼 연출됐다.
이번에 연출을 담당한 필립 슈톨츨은 극의 내용에도 손을 댔다. 주인공 막스가 마법의 탄환으로 대회에서 우승해 결혼하려 하는 여주인공 아가테는 임신 중이었고, 아가테의 하녀 엔헨은 레즈비언이었다. 여기에 좀비의 공격, 교수형 장면, 인어의 등장 등이 첨가되면서 작품은 화려한 서커스나 쇼에 가까워졌다.
메츨러 회장은 이런 파격적 연출에 대해 “영화적 효과를 도입해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사가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해 대사를 다시 쓰고 완전히 현대화하기로 결정했다”며 “관객 대부분이 이 오페라를 여러 번 보고 이해한 독일어권 출신”이라고 했다.
음악 또한 원작과 다른 면이 많았다. 우선 찬송 ‘내 주를 가까이’ 선율로 친숙한 서곡의 등장이 늦춰졌다. 또한 무대 한쪽에 위치한 피아노, 더블베이스, 아코디언이 원작에 없는 새로운 곡을 중간중간 연주하기도 했다.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엔리케 마졸라, 프라하 필하모닉 합창단은 실내의 극장에서 연주했고 호수 무대 위의 성악가들은 모니터를 통해 이들의 음악과 합을 맞췄다. 금관 악기의 사운드와 성악가들의 성량은 풍부했지만 약간의 어긋남은 감수해야 했다.
올해 브레겐츠 ‘마탄의 사수’에 대해 해외 언론도 엇갈린 평을 내놨다. 영국의 리뷰 사이트인 바흐트랙은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엔터테인먼트를 원하는 관객에게 100% 성공한 작품”이라며 “베버의 음악에 좀 더 집중했다면 보다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오페라와 서커스를 혼합했고, 의심할 여지 없이 재미있었다”고 평했다.
실제로 객석 7000석은 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에서 온 관객으로 가득 차 빈자리가 없었다. 메츨러 회장은 “오스트리아 청중이 25%이고 오스트리아 외의 청중 중엔 독일이 65%, 스위스가 12%를 차지한다”고 했다. 이런 특성을 반영해서인지 브레겐츠의 오페라에는 영어 자막이 없다. 독일어를 이해하는 청중이라는 좁은 타깃을 잡고 있지만, 인구 2만의 작은 호수 마을에 매년 20만 명을 불러들인다.
메츨러 회장은 “축제 예산 중 공공 보조금은 10%에 불과하며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기업 스폰서 기부금도 10% 정도”라며 “80%가 티켓 판매 금액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러한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요소로 셋을 꼽았다. “자연환경, 축제의 대중적인 형식, 적당한 티켓 가격이 목표 달성에 기여한다.” 브레겐츠 호반 오페라의 티켓은 날씨 영향을 안 받는 라운지석이 415유로(약 61만원)지만 가장 저렴한 티켓은 30유로(약 4만원)다.
브레겐츠(오스트리아)=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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