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방랑을 멈추게 한 숲

이돈삼 2024. 8. 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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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울력으로 동복천 보 쌓고, 손질하고, 나무 심어 가꾼 전남 화순 연둔마을

[이돈삼 기자]

 여름날 한낮의 동복천과 연둔교 풍경. 하늘도 물도 모두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몽실몽실 떠있다.
ⓒ 이돈삼
환상경이다. 하늘 파랗고, 물빛도 파랗다. 무더운 날씨 탓일까? 하늘과 구름이 물에 몸을 담갔다. 물가 숲은 짙푸르다. 진녹색 숲이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물안개 피어오르면 더욱 멋지겠다. 안개 자욱한 날엔 몽환적이겠다. 비라도 내리면 운치까지 입혀지겠다.

이 숲이 김삿갓의 방랑벽을 멈춰 세웠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던 김삿갓이 여기서 방랑을 끝냈다. 그의 첫 무덤이 지척에 있었다. 김삿갓이 말년을 지낸 압해정씨 종갓집도 복원돼 있다.

연둔리 숲정이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에 우거진 숲을 일컫는다. 연둔리 숲정이는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에 선정됐다. 공존상을 받았다. 대회는 산림청과 생명의숲국민운동본부, 유한킴벌리가 주관했다.
 여름 한낮 동복천과 연둔교 풍경. 하늘도 물도 모두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몽실몽실 떠있다.
ⓒ 이돈삼
 동복천변 풍경. 왼쪽이 연둔마을이다.
ⓒ 이돈삼
연둔리(蓮屯里)는 옛날 둔전이 있던 곳이다. 둔전(屯田)은 군대나 역원의 운영비 마련을 위해 군인이 짓던 논을 가리킨다. 역원(驛院)은 관리나 사신에 말을 대주고, 숙식을 제공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한다.

연둔리 숲정이는 풍경만 빼어난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삶과 문화와 한데 버무려졌다. 세월의 더께는 나무에서 금세 묻어난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오롯이 배어 있다. 숲정이는 마을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마을은 500여 년 전에 이뤄졌다고 전한다. 나무를 심은 것도 그때부터다.

주민들은 하천의 수량 조절을 위한 보(洑)를 쌓았다. 물난리를 막기 위해서다. 보(방천, 防川) 쌓기는 울력으로 했다. 보는 아홉 군데에 만들었다. 도지기방천, 작은방천, 큰방천, 아낙네방천(안방천), 다리방천, 징거미방천, 짜개방천, 새끼방천, 놀음방천 등이다.

맨 위쪽 도지기방천은 징검다리방천이다. 도지기는 돌을 놓은 다리, 돌다리의 지역말이다. 작은방천은 나무꾼과 농사꾼의 쉼터였다. 큰방천은 어르신들 전용 휴식공간으로, 아낙네방천은 여성 전용 쉼터로 이용됐다. 다리방천에는 주민들이 만든 섶다리가 있었다. 징거미방천에는 징거미(민물새우), 짜개방천엔 짜개(빠가사리)가 많이 살았다. 방천은 모두 물놀이 장소였다.
 옛 짜개방천 자리. 동복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지는 자리다.
ⓒ 이돈삼
 동복천변에서 본 연둔교. 마을과 도로를 이어주는 인도교다.
ⓒ 이돈삼
무너진 보를 손보는 보막이도 울력으로 했다. 보막이에 쓸 큰돌은 집집마다 갖고 나오도록 했다. 큰돌은 경지면적 단위로 공평하게 배분했다. 가장 큰 돌을 가져온 주민한테 시상도 했다.

주민들은 나무도 심었다. 보가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히 하기 위해서다.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왕버들이 주종이다. 나무 심기도 해마다 한식을 전후해 주민들이 함께했다.

보를 쌓고 나무를 심은 것으로 손을 턴 것도 아니다. 나무 보호를 위한 주민 규약을 만들었다. 썩은 나무일지라도 함부로 베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나무를 건드리는 건 금기였다. 한국전쟁 때 국군이 빨치산의 은신처를 없앤다는 이유로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려 할 때도 목숨 걸고 지켰다.

나무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온다.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었다. 동복천 건너 구암마을에서 바위가 보이면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다. 당시 만석꾼이 뒷산 바위를 가리려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주민들이 함께 심고 가꿨다. 썩은 나무를 베거나 땔감으로 쓰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겼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주민들은 그만큼 나무를 아끼고 사랑했다.
 동복천변 숲길. 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져 멋스럽다.
ⓒ 이돈삼
 연둔마을 풍경. 동복천의 한 갈래 물길이 마을 가운데로 지나고 있다.
ⓒ 이돈삼
동복천변 숲길은 1000미터 남짓 된다. 나무는 200여 그루 넘는다. 숲정이를 따라 흐르는 물도 맑고 깨끗하다. 동복댐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동복초등학교를 거쳐 남북으로 길게 흐른다.

마을사람들은 물도 소중히 여겼다. 물길을 마을로 돌리고, 집안으로 끌어들여 쓰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물에 세수하고, 몸을 씻었다. 설거지하고, 빨래도 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오형석 가옥 문간채다. 동복천 물길이 문간채 아래로 흘러 돌아 나간다. 연둔마을 사람들은 옛 정원이 지닌 멋을 일상에서 누리며 살았다.

나무숲은 마을 앞으로 우거져 있다. 숲 옆으로 동복천이 흐르고, 김삿갓로(822번 지방도)가 지난다. 그 너머로 들녘이 펼쳐진다. 도로와 마을은 연둔교, 둔동교로 이어준다. 몇 년 전 새로 놓은 연둔교는 사람만, 둔동교는 자동차도 건널 수 있다.
 동복천변 숲길. 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져 멋스럽다.
ⓒ 이돈삼
 연둔마을 담장 벽화. 나무와 천변 풍경을 그리고 있다.
ⓒ 이돈삼
천변 따라 이어진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어르신이 된 나무가 넉넉한 품으로 맞아준다. 선조들이 앞장서 지킨 나무라는 생각에 경외심이 절로 생긴다. 나무그네에 앉아서 보는 풍치도 아름답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이지만, 나뭇잎이 살랑거린다. 눈을 감고 잔잔한 음악을 들어도 좋겠다. 꿈결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몇몇 여행객이 숲길을 하늘거리고 있다. 숲그늘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보인다.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한낮 더위를 식히는 동심도 만난다. 담장 벽화에서 본 깨복쟁이를 보는 것 같다. 천변 숲정이에서 깨나른한 여름날 오후가 빠르게 지나간다.

천변에 화순의병장 기록관도 만들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을 지낸 황진을 비롯 최경회, 조헌 등을 기릴 공간이다. 황진은 안덕원과 이치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고 최경회 등과 함께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기록관 건립 주체가 행정기관도 아니다. 민간인이다.
 동복천변에 공사중인 화순의병장 기록관.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을 지낸 황진을 비롯 최경회, 조헌 등을 기릴 공간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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