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방랑을 멈추게 한 숲
[이돈삼 기자]
▲ 여름날 한낮의 동복천과 연둔교 풍경. 하늘도 물도 모두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몽실몽실 떠있다. |
ⓒ 이돈삼 |
이 숲이 김삿갓의 방랑벽을 멈춰 세웠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던 김삿갓이 여기서 방랑을 끝냈다. 그의 첫 무덤이 지척에 있었다. 김삿갓이 말년을 지낸 압해정씨 종갓집도 복원돼 있다.
▲ 여름 한낮 동복천과 연둔교 풍경. 하늘도 물도 모두 파랗고, 구름은 하얗게 몽실몽실 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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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복천변 풍경. 왼쪽이 연둔마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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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둔리 숲정이는 풍경만 빼어난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삶과 문화와 한데 버무려졌다. 세월의 더께는 나무에서 금세 묻어난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오롯이 배어 있다. 숲정이는 마을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마을은 500여 년 전에 이뤄졌다고 전한다. 나무를 심은 것도 그때부터다.
주민들은 하천의 수량 조절을 위한 보(洑)를 쌓았다. 물난리를 막기 위해서다. 보(방천, 防川) 쌓기는 울력으로 했다. 보는 아홉 군데에 만들었다. 도지기방천, 작은방천, 큰방천, 아낙네방천(안방천), 다리방천, 징거미방천, 짜개방천, 새끼방천, 놀음방천 등이다.
▲ 옛 짜개방천 자리. 동복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지는 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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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복천변에서 본 연둔교. 마을과 도로를 이어주는 인도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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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나무도 심었다. 보가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히 하기 위해서다.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왕버들이 주종이다. 나무 심기도 해마다 한식을 전후해 주민들이 함께했다.
보를 쌓고 나무를 심은 것으로 손을 턴 것도 아니다. 나무 보호를 위한 주민 규약을 만들었다. 썩은 나무일지라도 함부로 베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나무를 건드리는 건 금기였다. 한국전쟁 때 국군이 빨치산의 은신처를 없앤다는 이유로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려 할 때도 목숨 걸고 지켰다.
▲ 동복천변 숲길. 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져 멋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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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둔마을 풍경. 동복천의 한 갈래 물길이 마을 가운데로 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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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 물도 소중히 여겼다. 물길을 마을로 돌리고, 집안으로 끌어들여 쓰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물에 세수하고, 몸을 씻었다. 설거지하고, 빨래도 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오형석 가옥 문간채다. 동복천 물길이 문간채 아래로 흘러 돌아 나간다. 연둔마을 사람들은 옛 정원이 지닌 멋을 일상에서 누리며 살았다.
▲ 동복천변 숲길. 천변을 따라 숲길이 이어져 멋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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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둔마을 담장 벽화. 나무와 천변 풍경을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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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여행객이 숲길을 하늘거리고 있다. 숲그늘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보인다.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한낮 더위를 식히는 동심도 만난다. 담장 벽화에서 본 깨복쟁이를 보는 것 같다. 천변 숲정이에서 깨나른한 여름날 오후가 빠르게 지나간다.
▲ 동복천변에 공사중인 화순의병장 기록관.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을 지낸 황진을 비롯 최경회, 조헌 등을 기릴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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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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