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신경 쓸 시간에 불쌍한 사람이나 도우라는 이들에게
[박정우 기자]
▲ 두푸딩 언니와 번식장에서 구조한 '부' |
ⓒ 이현화 |
- 윤석열 정부의 동물권 관련한 정책은 어떻게 보시나?
김건희 여사가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뭔가 동물권과 관련해서 큰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식용금지법이 통과된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3년 뒤부터 적용되는 만큼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갈지 생각하면 암담한 것도 사실이다. 그 외에 아이들의 삶이 바뀔 만큼의 액션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 같은 개인 구조자나 동물 단체들이 아무리 움직이고 소리를 내더라도 정책과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로 대통령 부부가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다.
- 구체적으로 어떤 법안이 마련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비롯한 동물권과 관련해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관되게 '한국형 루시법'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시법은 펫숍에서 6개월 미만의 강아지와 고양이 판매 금지, 동물 경매장의 매매 거래 금지, 대규모 번식장 철폐, 인터넷 거래 및 매매 금지, 제한된 출산과 펫숍 전시를 위한 모견과 퍼피 분리 금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동물 보호를 위한 첫 발이자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종사자들의 반발로 계속 지지부진한 와중이다. 우리나라가 여러 문제로 시끄럽지만, 루시법에 관해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관심을 두면 좋겠다.
- 동물권 신장을 위해 제도적인 부분 외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제도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가 바뀌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행동하고, 소리 냄으로써 제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루시법의 경우를 보면 루시는 원래 영국의 강아지 농장에서 구조된 배터리 도그(기자주 :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듯 새끼를 낳는 용도로 사육되는 강아지를 이르는 말)였다. 구조된 루시를 입양한 리사는 자신의 SNS에 루시의 건강 상태와 일상을 기록했고, 이 사연이 많은 이들에게 닿으면서 루시는 영국 동물 단체 캠페인인 '어머니가 어디에 있나요(Where's mum?)'의 얼굴이 되었다.
▲ 도서 <결 고운 천사들>에 실린 간미연 씨의 추천사. 간미연 씨는 두푸딩 언니가 구조한 강아지 '희야'를 입양했다. |
ⓒ 시월 |
- 개인적으로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면 어떤 악플이 달릴지 좀 예상된다(웃음). 대표적으로 이런 게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동물에 신경 쓸 시간과 돈과 여유가 있다면 불쌍한 사람이나 도와라.' 작가님은 이 말에 뭐라고 답하시겠나?
솔직히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치고 어떤 방법으로든 동물이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웃음).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세상에는 특정한 영역에 마음이 뛰는 '결 고운 이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슴이 뛰는 부분이 유기동물이라면, 결식아동에게 가슴이 뛰는 사람, 노동자들에게 가슴이 뛰는 사람, 독거 노인에게 가슴이 뛰는 사람, 장애인에게 가슴이 뛰는 사람 등이 존재한다.
결국 내가 가슴이 뛰지 않는 다른 영역에 가슴이 뛰어서 작은 부분이라도 소리 내고 행동하는 분들 덕분에 그래도 이 사회가 더 나빠지지 않고 유지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각자 가슴 뛰는 영역이 있다면 거기에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여기엔 누구를 비판할 이유도, 왜 너는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지 않냐고 공격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나에게 그런 비난을 하실 분들은 본인이야말로 그 시간과 에너지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시면 좋겠다.
- 지금까지 대략 천여 마리의 동물을 구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해 버려지는 동물이 10만 마리에 달한다. <결 고운 천사들>에 쓰신 것처럼 작가님이 아무리 구조하고, 구조하고, 구조해도 더 많이 버려지는 게 현실이다. 지칠 때는 없는지 궁금하고, 아무래도 잔인한 현실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환멸 같은 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마리를 구조하면 열 마리가 버려지는 게 현실이다. 물론 좌절스럽고 힘이 빠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구한 그 한 아이의 삶은 바뀐다. 이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하고, 또 앞으로 나가게 한다. 여기에 더해 처음 동물 구조를 시작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게 아닐까? 적어도 동물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안단테로 변해가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이런 모든 잔혹한 상황이 사람 때문에 벌어졌지만, 결국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아이들을 살리고, 돕고, 이만큼이나마 바뀔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사람 덕분이었다. 사람에게 환멸감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을 믿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개인으로 활동하고, 혼자 활동한다고 하지만 좋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힘을 내서 앞으로 10년, 20년 하다 보면 우리 세대에선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길 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 동물들이 0이 되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 이 인터뷰를 보면서 뭔가 자신도 행동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일단 <결 고운 천사들>을 읽어주시면 좋겠다(웃음). 인세는 전액 동물 구조와 치료에 쓰인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사실 유기동물의 세상에 대해서 모르면 모르겠으나 현실을 인지하고 깨닫게 되면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치지 않는 선에서 사랑을 보여주면 된다.
▲ 입양제 당시 봉사자 분들, 두푸딩 언니는 늘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지난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
ⓒ 이현화 |
거창한 계획은 없다. 유일한 계획이자, 제일 중요한 다짐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지치지 말고 꾸준하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을 주고, 동물들을 살리고, 치료하고, 좋은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좋은 가족을 찾아준 아이들도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아이들도 많다. 노견을 구조하는 일이란 언제든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쓰고, 읽고, 고쳤지만 여전히 읽을 때는 너무 슬프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1도는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힘든 현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손을 내민 아이의 세상은 분명 바뀌었다고 믿는다. 앞으로 살릴 아이들을 위해 결이 고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결이 고운 독자들과 이 가치로운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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