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동물도 어리고 예쁜 애만 입양하더군요"
[박정우 기자]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사람은 1306만 명에 달한다. 이 수치만 보면 반려동물의 천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버려지는 동물은 매해 10만 마리를 넘고, 여전히 번식장, 개 농장, 펫숍, 동물 미용학원 등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동물 학대가 버젓이 자행된다. 한쪽에선 강아지를 가족이라고 여기는데, 한쪽에선 식재료로 취급하고, 우리나라의 법은 재물로 규정하는 괴리와 간극 속에서 잔인하고 비극적인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버려진 길 위의 생명들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면, 혹은 동물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다면 최근 출간된 <결 고운 천사들>을 읽어봄직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이현화씨는 SNS에서 두푸딩 언니(인스타그램 : @doopooding)로 더 잘 알려진, 동물을 구조하는 사람이다. 동물 구조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수입이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쓰고 있으니 이를 직업이라고 할 수 없고, 이 일에 간절하고 절박하고 치열하게 매달리고 있으니 취미라고 한다면 모욕이 될 것이다. 그러니 두푸딩 언니에게 동물 구조는 직업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다. 그저 사명처럼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새 가족을 찾아준다.
동물 구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소진하는 일이었다. 한 마리의 유기 동물을 구하면 열 마리가 버려지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두푸딩 언니는 스스로 말했듯 종종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내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버티고, 견디며, 멈추지 않고 걸어왔다. <결 고운 천사들>은 저자가 보낸 지난 10년의 기록을 묶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간 자신이 살린 아이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아이들을 이야기하면서 버려진 동물이 처한 암담한 상황과 펫숍과 개 농장 등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 나라의 법과 제도, 또 동물권을 위해 행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등을 두루 다룬다. 이 책은 동물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래서 모든 인간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동물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이라고 행복할 리 없으므로.
관련하여 지난 8월 6일 <결 고운 천사들>의 저자 두푸딩 언니(이현화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총 두 편으로 구성했는데, 1부에서는 지난 10년의 이야기와 저자가 구한 아이들을, 2부에서는 동물권에 관한 정책적인 부분과 사람들의 인식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 두푸딩 언니(이현화 씨)와 반려견 두부 그리고 푸딩이 |
ⓒ 이현화 |
처음 두부와 푸딩이를 반려하면서 자연스럽게 길 위에 떠돌아다니는 아이들, 소외된 생명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에 봉사의 일환으로 강아지들을 임시 보호(임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여 마리 정도의 강아지를 보호했는데 어느 순간 두부와 푸딩이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결국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마음의 짐이 너무 커졌다. 임보 말고도 유기 동물을 도울 방법을 생각하다 내가 직접 구조를 하게 되었다. 구조를 하고 보니 아픈 곳이 있어서 치료해 주고, 내가 직접 임보를 하지 못하니까 따로 임시보호처를 구하고, 이 아이에게 좋은 평생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홍보를 하고, 입양 상담까지 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마치 당연한 과정처럼 아이들을 구조하고 나면, 검사를 받고, 필요하다면 치료를 하고, 임보처를 마련하고, 입양 보내는 모든 과정을 다 혼자 하고 있다. 물론 그 모든 지점마다 도와주는 봉사자분들도 계신다.
- 동물 구조를 한다고 하면 보통은 대형 동물 단체에서 일종의 봉사활동 정도로 참여하기 마련인데, 작가님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개인으로 일 년에 100여 마리 이상의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입양을 보낸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 텐데도 혼자 활동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처음에는 나도 단체에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단체의 운영진까지 맡게 되었는데, 그때 대표를 비롯해 다른 운영진들과 많이 싸웠다. 우리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울산에 있는 한 유기견 보호소였다. 이곳에는 대략 300-400마리의 강아지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 중에 매달 40마리 정도를 안락사 명단에 올린다. 안락사 명단에 올라가면 우리는 그 아이들의 프로필 작업을 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국내든 해외든 다양한 곳으로 전원 입양을 보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려면 안락사 명단에 올라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락사 명단에 오르는 건 그나마 입양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뿐이었다. 예를 들어 치료가 필요한 아이, 병이 있는 아이, 나이가 많은 아이, 한쪽 눈이 없는 아이는 안락사 명단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오히려 마음이 더 쓰였다. 하지만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동물 단체에서 아프고, 늙고, 장애가 있는 강아지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물론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한다. 이런 아이들은 어차피 입양을 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 괜히 명단에 올렸다가 안락사 당할 바에 그냥 보호소에서라도 생을 연명하는 게 더 낫다는 논리인 것이다.
나는 동물을 구조하면서 입양 가능성을 비롯한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마음이 쓰이는 아이, 병 들고, 장애 있고, 나이 많은 강아지들을 눈치보지 않고 구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체를 떠났다. 나중에 직접 단체를 만들기도 했는데 역시 비슷한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운영진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단체가 성장하기 위해선 작고, 예쁘고, 기구한 사연이 있는 아이들 위주로 구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와는 방향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혼자 하고 있다.
- 그렇게 동물을 구조하면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10년이다. 최근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묶은 <결 고운 천사들>을 출간했는데, 어떤 책인지 저자가 직접 소개해 준다면?
▲ 도서 <결 고운 천사들> 표지이미지 |
ⓒ 시월 |
- <결 고운 천사들>에는 그간 작가님이 구조한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동물들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데,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위해 하나만 이야기 해준다면?
모모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다. 2년 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맘때쯤이었다. 밤 9시 무렵 어떤 봉사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 안구가 돌출되고 온몸에 피멍이 든 3개월령 강아지가 버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분은 이 사실을 여러 단체에 제보했지만 제대로 된 확답을 듣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개인 구조를 하던 나에게까지 연락한 것이었다. 치료비나 입양의 가능성 같은 부분을 잠시 고민했지만 구조를 결정하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결단 내리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아이를 구조한 뒤 병원에 데리고 가서 바로 치료와 수술을 받게 했다.
나중에 오피스텔 CCTV를 봤더니 20~30대 정도의 남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모모를 밖으로 내던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모모는 몸이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려고 기어나갔는데 그 모습까지도 찍혀있었다. 결국 그 남성의 파렴치한 만행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알고 보니 커플이었고 여자친구가 강아지를 사서 데리고 오면 남자가 학대해서 죽이는 과정을 반복했다. 모모 이전에는 3개월령 포메라니안이 있었는데, 이웃 주민이 제보했던 영상을 보면 강아지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절규가 들린다.
모모는 피학대견으로 인정되어 긴급격리 조치가 내려지면서 결국 내가 계속 보호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분노스러운 지점은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상 학대범에게 내려진 처벌이 고작 몇 십만 원의 벌금형이 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학대범은 아무런 제재 없이 또다시 어린 프렌치 불도그를 데리고 오기까지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부담스러웠는지 그 학대범은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우리는 이후의 일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
▲ 구조 당시 모모. 학대로 인해 안구가 돌출되었고, 갈비뼈 6군데가 부러져 있었다. |
ⓒ 이현화 |
▲ 현재의 모모.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사랑 많고 건강한 강아지로 지내고 있다. |
ⓒ 이현화 |
- 확실히 책에 실린 아이들의 전후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버려져서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와 입양이 되어서 좋은 가족을 만났을 때의 변화를 보면 같은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울산 보호소에 매달 현장 봉사 갈 때마다 만났던 아랑이가 대표적이다. 아랑이는 너무너무 추웠던 겨울에 털이 빡빡 밀리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 오염된 노끈에 묶여 박스에 담겨 버려진 아이였다. 추정 나이는 10살 이상에 치아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노견에 입양도 가기 힘들 것 같은 아랑이가 나는 자꾸 마음이 쓰였다. 아랑이를 마음에 담고 열심히 알리면서 입양처를 알아보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랑이에게 손을 내미는 분은 없었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노견인 아랑이의 끝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죽음뿐이라는 것이 보였기에 일단 데리고 나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랑이가 입양을 가든 못가든, 치료비가 얼마나 들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보호소에 있을 당시의 아랑이(위)와 현재의 아랑이(아래) |
ⓒ 이현화 |
- 말했듯이 작가님은 늘 나이 많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강아지들을 우선으로 구조한다. 아무래도 치료비도 많이 들고, 입양을 보내기도 힘든데, 굳이 그런 아이들 위주로 구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유기 동물 입양에서조차 어리고 건강하고 예쁜 품종견을 원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아이들은 공고를 올리면 입양 문의도 쇄도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펫숍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나이도 많고 아픈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모두가 어리고 예쁜 강아지만 구조하면 병든 노견 강아지는 보호소에서 주사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 온 생을 통틀어 좋은 기억 하나 없이 떠나야 한다거나, 생의 마지막 기억이 버려짐이라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그러면 차라리 내가 그런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단 하루를 살더라도 엄마가 있는 아이로, 우리가 지어준 이름으로, 사랑을 입고, 누군가가 자신을 귀하게 여겼다는 기억을 안고 떠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지닌 단 한 명의 가족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노견과 환견과 장애견을 구조한다.
-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노견, 환견, 장애견은 구조하더라도 치료에 비용이 많이 들텐데?
돈 문제는 어쨌든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라는 말처럼 나는 그 힘겨운 싸움을 하는 아이들을 그저 도울 뿐이고, 그때는 돈이라는 걱정은 가장 뒤로 제쳐두고, 일단 움직이고 본다. 정 안되면 뭐 내가 열심히 벌고, 좀 더 아끼면 된다는 생각이다(웃음). 물론 이런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으면서 후원해 주는 결 고운 분들도 계시고, 유기견 치료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협력 병원 원장님과 선생님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의 사랑과 도움 덕분에 현실적인 문제를 무사히 해결해 왔고, 또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어찌어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웃음).
- 그런데 작가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 명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교수를 목표로 하면서 입시학원 강사로 돈도 꽤 많이 벌었다. 그러다 본격적인 동물 구조에 뛰어들고 난 이후에는 애견 펜션을 운영하면서 수익금의 일부를 유기견 구조에 사용하고, 또 구조한 동물들을 위한 쉼터도 만들었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전자의 삶이 훨씬 행복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이전의 삶도 행복했던 게 사실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과거에 내가 행복을 느끼는 척도는 돈, 능력, 사회적인 인정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다만 그런 행복을 추구하다보니 따라오는 희생이 있었다.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종일 커피만 마시면서 수업을 준비했고,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결국 번 아웃이 왔고, 건강도 많이 나빠졌다.
그즈음에 다행스럽게도 두부와 푸딩이를 반려하면서 변화의 기점을 맞았는데, 그때부터 행복의 기준을 다르게 두게 되었다.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쉬어도 가고, 멈추기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좀 다른 행복을 찾다 보니 세상의 모든 동물이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동물을 구조했고,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렌트하우스를 만들었다. 또 내가 구조하는 아이들이 아무래도 노견에 아픈 아이들이 많다 보니 임보나 입양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전긍긍하기 싫어서 그런 아이들을 언제까지고 보호할 수 있는 쉼터도 만들게 되었다.
이제는 세간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인정을 행복의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역시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십 년간 동물 구조를 하면서 어떻게 꽃다운 사연만 있겠냐마는 동물들과 함께하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슬픈 일이 있어도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 [인터뷰②] <동물 신경 쓸 시간에 불쌍한 사람이나 도우라는 이들에게>(https://omn.kr/29pw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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