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팔자야"... 오사카 묘지에 울려 퍼진 어미의 통곡
[김성호 기자]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일제에 의해 이뤄진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수년 전 군함도에 이어 또 한 번 어두운 역사만 싹 지운 채 보전 가치 있는 자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수많은 조선인이 가혹한 노동과 착취를 당한 역사를 이리 허망하게 씻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독립한 이 땅의 후손들이 그를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맞물려 언론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국인 가운데 사도광산과 군함도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을 테다. 오늘날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항일과 친일, 또 의병 활동과 저항운동 정도로 환원되어 큰 줄기만 기억되는 탓이다. 한국사회가 역사를 대학 입학에 필수적인 교과목, 즉 수학능력시험의 한 관문으로 학습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소외된 영역은 아예 주목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고는 한다. 대부분 교과서가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징용 부분을 가장 주된 사례만 떼어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 스틸컷 |
ⓒ 시네마달 |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 40여 년간 일본 오사카 일대에서 이뤄진 직물공장 조선인 직공들의 가혹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부터 중년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건너온 여성 직공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민족과 계급, 성별의 문제가 층층이 쌓인 과거사를 다루었다.
이 시절 일본에 건너간 직공들의 이야기는 한국사와 언론 가운데 거의 조명된 일이 없기에, 영화를 보는 오늘의 관객들은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신선함과 그 내용에서 오는 충격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그러하듯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란 점에서 이 사안을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상태로 다룰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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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달 |
1910년대 일본의 여러 산업이 호황을 맞이했다. 특히 섬유산업은 확장일로에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산업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일본은 섬유산업을 중점적인 육성대상으로 삼아 기틀을 마련한 상태였다. 방적기와 방직기, 염색에 이르는 생산시설이 마련돼 있었고, 유럽에 비해서도 밀리지 않을 만큼 기술력 또한 좋았다. 무엇보다 값싼 노동력이 필수인 섬유산업에서 일본은 기존 주자들에 비해 확고한 비교우위를 점했다.
이촌향도, 지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수많은 노동자가 섬유산업에 투입됐다. 이로부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섬유산업은 내수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 심지어는 유럽에까지 수출 판로를 여는 등 크게 성장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아시아 일대를 장악한 이후엔 정책적으로 일본 섬유의 수입 수출을 크게 늘리기까지 했다. 두 차례 큰 전쟁이 더욱 큰 수요를 불러온 건 자명한 일이다.
▲ 포스터 |
ⓒ 시네마달 |
이원석 감독의 83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동명의 책을 근간으로 한다. 재일교포로 값진 연구를 많이 남긴 김찬정 선생이 1982년 출간한 책으로 이와나미 출판사가 냈다. 오사카 방적공장에서 일한 여공들을 추적해 그 이야기를 수집한 이 서적엔 그야말로 참담한, 그러나 독립한 한국이 외면해 주목하지 않았던 역사가 담겼다. 고되고 열악한 노동환경 가운데 맞고 강간당하고 버려지고 상한 음식을 구워 먹으며 버틴 소녀들의 이야기, 잠깐의 쉬는 시간에 그곳에서 태어난 갓난 아이들에게 함께 젖을 돌려 먹이며 살아간 망국 여인들의 사례가 들어가 있다.
제작진은 이 책을 바탕으로 현지 취재를 더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고 했다. 고령의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연구한 일본 학자들을 섭외해 깊이를 더한다. 또 <귀향>으로 얼굴을 알린 재일교포 배우 강하나 등을 섭외해 다큐와 극의 경계를 오가며 오늘의 관객 앞에 지나간 역사를 되살려낸다. 그 안엔 비극적인 민족의 고통이 서려 있고, 착취당하는 여성과 하층민과 이주노동자가 있고, 생 자체가 짜내는 버텨내고 연대하고 맞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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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달 |
테니스 경기장 두 개 넓이의 터에 백 명이 넘는 여자들이 빽빽이 들어차 살았다. 월급이라고 푼돈을 쥐면 태반을 현해탄 건너 제 집으로 부쳤다. 남는 돈으로 간신히 잠 깨는 사탕이나 사 먹었던가. 졸다가 방적기에 팔이 빨려 들어가 크게 다치는 이가 있었다. 꾸벅 졸다 실을 잘라먹고 관리자에게 얻어맞는 이는 그보다도 많았다. 좀 예쁘다 치면 관리자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위생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이질이라도 돌라치면 감염되고 죽어 나가는 이가 수두룩했다.
그러면 조선 여공들이 그 관을 메고 멀리 떨어진 묘지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이 걸려 유골이라도 거두러 온 부모의 모습을 여공들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했다. 일본의 학자가 전해진 이야기를 서툰 한국어로 되살리는 대목이 훅하고 가슴을 친다.
한 세기 전 딸자식의 죽음을 듣고 오사카 묘지에 도착한 어머니가 이렇게 외치며 통곡했다나.
"아이고 팔자야! 아이고 팔자야!"
어디 소녀의 죽음이 사주팔자 여덟 글자 때문이겠느냐마는, 그 팔자를 탓하지 않고서야 감히 살아갈 수가 없었으리라.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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