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그렇게 준 게 아닐까? 이런 인생도 살아보라고"

유지영 2024. 8. 1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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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신의 삶 담은 1인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무대 올리는 트랜스젠더 배우 색자

[유지영, 이정민 기자]

▲ 트랜스젠더 색자 배우 트랜스젠더인 색자 배우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연습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색자 배우는 제6회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트랜스젠더인 자신의 삶을 다룬 1인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구자혜 연출)'를 올릴 예정이다.
ⓒ 이정민
온갖 언어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살아가는 이들과 달리 배우 색자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16살 집을 뛰쳐나오던 순간을 회상하면서도 그녀는 "한순간도 두렵지 않았다"라고 했다. '어떻게 두렵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난 무서울 게 없다"라고 했다. 더 자세히 알려달라는 말에는 얼굴을 기자 앞으로 당기면서 "팁 주세요!"라는 웃음으로 응수했다.

1980년대부터 트랜스젠더 바 등 무대에서 활동해 왔고, 여전히 활동 중인 1세대 트랜스젠더 퍼포머인 배우 색자(67)가 자신의 삶을 다룬 1인극에 도전한다.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로 잘 알려진 구자혜 연출은 <드랙X남장신사>와 <곡비>에 이어 이번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를 색자와 함께하게 됐다.

길에서, 돈암동 여관방에서, '닭장차'에서, 트랜스젠더 바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기면서 온몸으로 삶을 통과한 끝에 살아남은 그녀에게 홀로,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몸만이 존재하는 1인극이라는 무대가 필연적인 귀결처럼 보인다.

오는 15일부터 제6회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4일간 열릴 색자의 1인극은 벌써 전석 매진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추가 좌석도 확보했으나 이마저 모두 매진됐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연극 연습실에서 만난 색자는 "그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다. 대체 나에 대해 뭐가 궁금해서 매진이 된 거지?"라고 반문했다.

"궁금증을 내가 해소시켜 줘야지. 웃게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막 혼도 내고 그래. 어떡할 거야?"

- 연극에서 관객들을 혼도 내시나요?
"혼낸다고 욕하는 건 아녜요. (부드러운 말투로) 기억하겠니?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말투로 얼굴을 앞당기면서) 너, 기억하겠어? 라고 하죠. 아니, 지금 진짜로 놀란 거예요?"
▲ 트랜스젠더 색자 배우 자신의 삶을 다룬 1인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인 색자 배우
ⓒ 이정민
"난 집에 있으면 안 돼"

1983년 1월 <조선일보>에 "우리나라에도 최근 게이 바라는 여장남자들의 술집이 적발됐다고 한다. 통념상으로나 사회기강상 해괴망측한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칼럼이 실렸다. "여장을 하고 술집에서 접대부 일을 해온" '여장남자'를 고용한 식당 주인이 "즉심(즉결심판)에 넘겨졌다"(<동아일보>)라고 보도되던 시기다.

색자는 이때부터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른바 트랜스젠더 바의 '간판'을 달았을 때부터다. 그녀가 1세대 트랜스젠더 퍼포머로 불리는 이유다.

"내가 밤에 일을 많이 했잖아요. 소외받은 이들에게 그러지 말아라,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잖니,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나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여태까지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지 못 했어요. 아버지한테까지도. 그거 두려워 안 했어요. 집을 나올 때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냥 나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살고 있어요."

- 어떻게 무서워하지 않고 나올 수가 있나요?
"뭐가 무서워요? 난 무서운 거 없어요.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죽음도 생각 안 하고 살아요. 언젠가는 죽을 날이 오겠지. 그거 미리 생각하면 뭐 해요? 중학교 다니다가 뛰쳐나왔는데, 아버지의 눈빛, 이런 게 너무 싫었어요. 아버지는 나랑 눈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하니까. 그 나이에 난 그게 너무 싫었어요. 16살이면 이미 자기 성에 대해 잘 알잖아요. 난 그게 좀 빨랐어요. '난 여기 집에 있으면 안 돼, 빨리 나가서 내 인생 개척할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잡지 <선데이서울>에서 "딱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는 걸 보고"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 찾아갔다. "거기 가면 분명히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거기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바 무대에 섰다.

"7~8명씩 있어도 난 항상 프리마돈나, 센터만 했어요. 안무 선생님이 오시면 이거 해봐, 저거 해봐 시키잖아요. 체격도 보고, 눈빛도 보고. 여러 가지로 내가 뛰어났죠. 그러다 점점 세월이 흐르고 한국에서 소문도 나가지고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손님들이 그랬어요. '색자의 표정은 압권'이라고."

"1984년 12월 24일, 눈이 많이 오는 날"에 그녀는 스카우트 돼 일본에 진출했다. 당시 일하던 가게에는 조총련도 많이 왔었다고 회고했다. "6개월짜리 연예인 비자로 일본에 갔죠. 우에노시 주위에 시장이 있었는데 북한 사람들도 많이 살았거든요. 다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그러다가 3개월 만에 엄마한테 아버지가 너무 위독하다고 전화가 왔어요. 아무리 아버지한테 사랑을 못 받았어도 그래도 아버지잖아요. 다시 한국에 왔는데 거짓말인 거야.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한국에서 일했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당국의 단속은 계속 됐다.

"이태원동 트랜스젠더 바가 있는 용산(경찰)서에서 단속을 나오다가 귀찮으니까 가게가 다섯 집 있으면 한 집씩 돌아가면서 갔어요. 마침 내가 갈 차례라서 둘인가 셋인가 같이 갔죠. 즉결심판에 넘기면 판사가 '남자인데 화장하고, 술 팔았다'라면서 구류 3일을 때리거든요. 그러면 우리를 용산서에 풀어줘야 돼요. 그런데 까만 닭장차에 태우더니 용산서에 안 가는 거예요. 유원지 같은 곳에 가서 우리를 뜨거운 여름 차에 몇 시간씩 놔두고 (경찰은) 시원한 개울가에 발 담그면서 닭을 뜯어먹는 거죠. 핸드폰도 없고. 안 죽은 게 정말 다행이라니까요. 버스 안에서 다른 애가 막 울었던 것 같아요. 난 안 울었어요. 정신 차려야 해, 내가 말했던 것 같아. 내 기억에."

트랜스젠더 바에서는 주로 노래를 부르지만 색자는 연기도 같이 했다고 말했다. 가장 자신 있는 건 뮤지컬 <레베카>에 나오는 레퍼토리로 "댄버스 부인 역할에 어울리는 눈빛이라 다들 너무 좋아해요"라고 했다. 그는 배우 윤여정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도 잠시 바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역할로 나와 모습을 비춘다.

그렇게 1980년부터 쉬지 않던 그의 무대는 의외의 계기로 잠시 끊기게 됐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였다.

"일을 못 했죠. 가게가 아예 문을 못 열었으니까. 생계가 막막했지만 옛 어른 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더라고. 산 입에 거미줄 치겠니? 거미줄 안 치더라고. 어떻게 또 사는 방법이 생기더라고요."

2021년부터는 구자혜 연출과 만나 연극 <드랙X남장신사>와 <곡비>를 차례로 무대에 올렸다. 아직 개봉되지 않았지만 2023년에는 퀴어 영화 <이반리 장만옥>에서도 연기했다.
▲ 트랜스젠더 색자 배우 트랜스젠더인 색자 배우는 1980년부터 거의 쉬지 않고 무대에 섰다.
ⓒ 이정민
"나는 그런 계획 없이 살아요"

그녀는 이번 1인극을 같이 올리는 구자혜 연출을 두고 "나랑 찰떡궁합"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구자혜 연출을 바라보며 "내가 상업적인 연극도 좀 쓰라고 그랬어요. '알았다'고 그러더니 어릴 때부터의 내 이야기를 (연극으로) 푼 거예요"라면서 웃었다.

"우린 서로 싸우지도 않아요. 그런데 저 감독님, 나한테 막 지적을 안 해주는 거야. '오늘 틀렸으니까 내일 더 열심히 하세요' 이래야 되는데, 지적도 안 하고 계속 싱글벙글 웃으면서 넘어가니까 그게 더 싫은 거야."

- 그렇게 넘어가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안 돼요. 나는 완벽하게 하고 싶어요."

구자혜 연출은 이 대목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구자혜 : "제가 잠깐 인터뷰에 끼어들어도 될까요? 저는 배우가 단순히 대사를 달달 외우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색자님만이 아니라 누구나 아프다거나 나이가 든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틀릴 수도 있고, 그게 보편적인 문화로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난 (대사를) 틀리셔도 되고 그런데 색자님이 즐겁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색자 : "걱정 마세요! 난 틀려도 즐겁게 할 거니까. 뻔뻔스럽게. 어머, 틀렸니? 그냥 가자! 이러면서요. 그게 1인극의 묘미 아닌가요? 그래도 내가 내일모레면 칠순인데 무대에서 아이돌 춤을 춰요.

가게(트랜스젠더 바)에 가서도 애들한테 '아니, 엄마가 아이돌 춤을 춰'라고. 힘들어도 해야죠. 내 후대와 그들과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돼요. 그런 거 보여주고 싶어요. 정신력, 자신감, 당당함!"

- 연극이 끝나고 하고 싶으신 게 있어요?
"나는 그런 계획 없이 살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연기야 하고 싶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기대를 많이 안 한다는 이야기예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거든요. 빨리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해.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에요.

대본에 '신이 우리한테 이런 걸 준 게 아닐까, 이런 인생도 살아보라고. 근데 하필 많은 사람 중에 나, 그리고 너. 벌 받은 거라곤 생각 안 해. 신이 우리를 선택한 거라고 우아하게 생각하기로 결정했어'라는 대사가 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어요."

6일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며칠 남지 않은 연극 리허설에 돌입했다. 그는 리허설이 끝나면 매일 트랜스젠더 바로 출근한다.
▲ 트랜스젠더 색자 배우 트랜스젠더인 색자 배우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연습실에 며칠 남지 않은 연극 리허설에 돌입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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