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표 한식 먹고 일냈다…리디아 고 자매가 일궈낸 '눈물의 金'
“동생한테 이것저것 만들어줬죠. 저희가 한식 없이는 또 못 살잖아요, 하하.”
리디아 고(27·뉴질랜드)가 2024 파리올림픽 골프 여자 금메달을 차지한 1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의 르골프 내셔널. 우승 기자회견장 바깥에서 잠시 만난 언니 고슬아(35) 씨는 이렇게 말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던 고 씨는 “동생이 한식을 워낙 좋아한다. 이번 대회 기간에도 불고기와 삼계탕 등 여러 음식을 만들어줬다. 음식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식 없이는 못 살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리디아 고는 이날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로 1타를 줄여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정상을 밟았다. 8언더파 2위 에스터 헨젤라이트(25·독일), 7언더파 3위 린시위(27·중국)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던 리디아 고는 이로써 마지막 남은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이 종목 최초로 모든 색깔의 메달을 수집하는 새 역사를 썼다. 골프가 11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돌아온 리우올림픽을 시작으로 3개 대회 내리 개근해 이뤄낸 쾌거다.
겹경사도 맞이했다. 이날 우승으로 리디아 고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성도 확정했다. 헌액까지 필요한 27점 가운데 단 1점이 모자랐는데 이번 금메달로 마지막 점수를 채웠다. 올림픽의 경우 금메달리스트만 명예의 전당 포인트 1점을 얻는다. 리디아 고의 LPGA 투어 통산 승수는 20승이다.
메달 세리머니에서 뉴질랜드 국기가 게양되자 눈물을 쏟은 리디아 고는 “오늘 이런 일이 올림픽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마치 내가 동화 속의 인물이 된 기분이다. 그동안 정말 좋은 일들이 많았지만, 오늘이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뉴질랜드의 이웃 국가인 호주의 골프 전설 캐리 웹(50)은 “리디아 고가 모든 종류의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또, 명예의 전당에도 가입했다. 리디아 고는 대단한 금자탑을 쌓았고, LPGA 투어 역사의 일부분이 될 자격이 있다”고 극찬했다.
1997년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명 고보경’ 리디아 고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이후 현지에서 국적을 바꾼 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뉴질랜드에선 적수가 없었고, LPGA 투어로 뛰어든 이후에는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먼저 15살이던 2012년 8월 캐나다여자오픈에서 우승해 LPGA 투어 최연소 챔피언이 됐고, 2015년에는 최연소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이번 명예의 전당 헌액 역시 최연소다.
이처럼 선수로서 많은 것을 이룬 리디아 고에게도 딱 하나 부족함이 있었다.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다. 리우와 도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리디아 고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4년 뒤는 장담할 수 없는 만큼 파리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차지하겠다”고 의지를 다졌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여기에는 숨은 지원도 있었다. 바로 가족의 든든한 뒷바라지다. 언니 고슬아 씨는 파리올림픽 기간 동생의 특별 요리사로 함께했고, 시아버지인 정태영(64) 현대카드 부회장은 대회장을 찾아 며느리를 응원했다. 리디아 고는 2022년 12월 정 부회장의 아들인 정준(27) 씨와 혼인했다.
고슬아 씨는 “LPGA 투어 기간에도 1년 중 절반은 동생을 따라다니며 음식을 해준다. 동생이 한식 없이는 힘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는 “여기에서 매일 한식을 먹었다. 언니가 불고기와 오징어볶음, 삼계탕 등을 잔뜩 싸왔다. 오늘 우승은 언니 덕분이다”면서 “아쉽게 남편은 오지 못했지만, 시부모님께서 응원해주셨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리디아 고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출전임을 밝혔다. 앞서 1라운드를 마친 뒤에도 “4년 뒤 올림픽은 내가 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우승 이후 “이번이 나의 마지막 올림픽임을 말하고 싶다”고 못 박았다. 한 외신 기자가 “그러면 이를 은퇴라고 생각해도 되냐”고 묻자 “나는 영국으로 이동해서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정확한 시기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명예의 전당 가입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일단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남은 시즌을 잘 치른 뒤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도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리우에선 박인비(36)가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도쿄와 파리에선 빈손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날 버디 6개와 보기 3개로 3타를 줄인 양희영(35)이 6언더파 공동 4위를 기록했고, 고진영(29)과 김효주(29)는 나란히 3타씩 줄여 이븐파 공동 25위로 파리올림픽 여정을 마쳤다.
가장 아쉬움이 남은 선수는 역시 양희영이었다. 리우올림픽에서 1타 차이로 공동 4위를 기록했던 양희영은 이번에도 1타가 모자라 메달을 놓쳤다.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올 시즌 내내 각종 투어를 돌아다니며 세계랭킹 포인트를 쌓았던 양희영은 “정말 아쉽다. 경기장에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잠도 자지 못할 것 같다”면서 “8년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이렇게 올림픽에서 경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4위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고 했다.
파리=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조현오가 키운 ‘조국 오른팔’? 황운하 ‘룸살롱 황제’ 처넣다 | 중앙일보
- 한지민과 열애 최정훈 "그렇게 됐다, 심장 요동쳐 청심환 먹어" | 중앙일보
- "엄마 언제 돌아가세요?"…의사 민망해진 그날 생긴 일 | 중앙일보
- '베드신 몸매 보정' 거부한 여배우, 이번엔 뱃살 당당히 드러냈다 | 중앙일보
- 성생활 재활? 요즘은 그룹치료하며 동병상련 정보 공유 | 중앙일보
- "잘생기니 알아서 비춰주네"…탁구 동메달 중계 잡힌 뜻밖의 인물 | 중앙일보
- 외신도 놀란 '금욕의 공간' 반전…낙산사 미팅 성공률 60% 비결 | 중앙일보
- "아쉽다"는 말만 반복…양희영 4위, 또 1타 차이로 울었다 [올림PICK] | 중앙일보
- 야구선수하며 '일본의 SKY' 대학 갔다…고시엔 스타 '미백왕자' [줌인도쿄] | 중앙일보
- 인증샷 남기기 좋은 '작은 사치'…요즘 백화점 고급 커피 품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