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정체성 강하다"…제천, 고려인 1000명 이주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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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347명 제천에 둥지…취업 알선·돌봄 지원금도
카자흐스탄 출신인 굴나라(48)는 요즘 한국어 배우기에 푹 빠져있다. 충북 제천시가 마련한 재외동포지원센터(단기체류시설)에서 지내며 일주일에 세 번씩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인 ‘한국어와 한국문화’ 수업을 듣고 있다. ‘비누’ ‘여자’ ‘마스크’ ‘포도’ 같은 낱말 풍선을 한국어 교재에 붙이고 또박또박 읽었다. 굴나라는 “숙소에 머물며 하루 2시간씩 글쓰기와 회화를 연습하고 있다”며 “오늘 중간시험이 있는데 성적이 기대된다. 빨리 일자리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굴나라는 카자흐스탄에 살던 고려인 후손이다. 외모는 여느 한국인과 다를 게 없지만, 한국말은 걸음마 수준이다. 남편과 함께 지난해 10월 입국해 최근 제천시 고려인 정착지원 사업 프로그램에 참여, 취업을 준비 중이다. 굴나라는 “산과 호수 경치가 좋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지역에 살았다”며 “제천은 보로보예처럼 공기가 맑고 자연환경이 좋아서 정착하기에 수월할 것 같다. 남편은 제천의 한 요양시설에서 보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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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정체성 강한 고려인…인구감소 도움”
굴나라가 머무는 재외동포지원센터 안에는 고려인 동포 22가구 54명이 살고 있었다. 센터는 이주 고려인이 4개월 동안 무료로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다. 제천시가 대원대 기숙사 1동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0월부터 숙소와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관리사무실과 식당, 세탁실, 유아 놀이방 등을 갖췄다. 이주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제천시 공공기관이나 병원·마트·문화시설·유적지 등을 돌며 현지 적응 활동을 한다. 센터 거주 기간이 끝나면 제천 지역에 집을 구하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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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대가 59%…“한국사회 정착 기대”
고려인은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흩어져 사는 한민족 동포를 말한다. 1860년부터 1945년 광복 시기까지 농업과 독립운동, 일제 강제동원 등 사유로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 또는 그 후손들이다. 시에 따르면 11일 기준 고려인 61세대 145명이 제천에 일자리를 구해 살고 있다. 재외지원동포센터에 이주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을 더하면 이주 고려인은 조만간 133세대 347명으로 늘어난다.
제천으로 이주한 고려인은 주로 3·4세대들이다. 20~40대가 59%, 19세 미만 초·중·고, 미취학 자녀 비율은 27%다. 제천시 미래정책과 권세영 주무관은 “이주 신청자 중 자녀를 동반한 고려인이 많다 보니 취업 이후 제천에 정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천시는 지난해 7월 ‘고려인 등 재외동포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국내외에 있는 고려인 유치하고 있다. 3년 내 고려인 1000명을 제천으로 이주시키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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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비 혜택에 장학금…지역특화형 비자로 취업 혜택
제천에 온 고려인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미취학 자녀에게 보육료 30만원을 지원한다. 초·중·고 자녀 둔 가정은 제천인재육성재단을 통해 장학금 50만원을 준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 100만원을 준다. 시는 비자 연장이나 ‘지역 특화형 비자’ 전환 업무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 관내 3개 종합병원에서 의료비 20%를 할인해 준다. 단기체류시설 입소 전 제천시가 나서 관내 기업체에 취업을 알선하고, 공인중개사와 함께 거주지도 알아봐 준다.
이주 고려인은 제천시가 지역 특화형 비자 발급 지역이라는 점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국내 체류 중인 고려인 상당수는 동포 비자(F4)로 취업이 가능하지만, 방문동거 비자(F1)를 받은 배우자는 취업이 제한된다. 그래서 맞벌이가 어렵다. 부부가 지역 특화형 비자를 받으면 취업 제한이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 출신 김 알리나(36)는 “3살 된 아들 보육문제만 해결되면 제천에 일자리를 구하고, 나중엔 영주권을 얻어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박 알렉산드라(39)는 “한 돌을 앞둔 아들이 한국 아이들처럼 보육·교육 혜택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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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유치 고려인은 10명뿐”…제천시 “해외협력관 활용할 것”
제천시 고려인 정착 사업을 놓고 유치 경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 이주 대상 347명 중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해외에서 온 고려인은 1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천시, 경기도 안산, 충남 아산시 등에서 잠시 체류했거나, 수년간 살다 온 사람들이다. 김수완 제천시의원은 “지자체끼리 출혈경쟁을 하지 않고, 국외에 있는 고려인을 데려오는 게 당초 사업 목적이었다”며 “시장이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국내 고려인을 주로 유치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천시 관계자는 “제천에 온 고려인 60% 정도는 국내 체류 1~2년 미만으로, 어느 지역에 정착할지 고민 중인 사람들”이라며 “중앙아시아 현지에 위촉한 해외협력관 3명을 활용해 국외 고려인 유치 비율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천=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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