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하며 '일본의 SKY' 대학 갔다…고시엔 스타 '미백왕자' [줌인도쿄]
한국과 마찬가지로 40도에 이르는 폭염이 계속되는 일본에서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지난 7일 막을 올렸습니다. 고교 3학년 선수에겐 청춘을 건 마지막 경기인 데다, 학생 선수들의 열정 때문에 명승부와 이변, 대역전극이 속출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에게 여름하면 떠오르는 이벤트가 바로 고시엔입니다.
게이오고 우승에 주목한 이유
지난해 여름 고시엔에서 가장 화제가 된 학교는 우승을 거머쥔 게이오고입니다. 게이오고는 일본 사립 명문 게이오대의 부속고등학교죠. 1916년 대회에서 우승한 뒤, 무려 107년 만에 다시 전국 우승을 했습니다. 결승전의 경우 평일인데도 불구, 시청률(NHK)이 20%를 넘길 정도로 주목을 받았죠.
게이오고가 관심을 끈 이유는 이 학교 야구팀 선수들은 이른바 ‘문무양도(文武兩道)’, 즉 학업도 야구도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게이오고는 고시엔을 주름 잡는 여느 야구 명문고들과 선수 선발 시스템이 다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 능력을 갖추지 않은 학생은 뽑지 않거든요. 일반 전형과 별개로 스포츠 전형이 있긴 하지만 중학교 내신 성적이 상위권에 들어야 하고, 별도의 면접과 작문 시험도 통과해야 합니다.
입학 이후에도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어요. 일본의 대학 부속학교엔 ‘에스컬레이터 진학시스템’이란 게 있는데, 게이오고도 요건을 갖추면 한국의 ‘SㆍKㆍY(서울ㆍ고려ㆍ연세대)’에 해당하는 게이오대에 진학할 수 있죠. 때문에 동료 학생들의 수준이 높고, 성적이 부진하면 유급할 수도 있죠.
야구 선수라도 장래를 생각하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여느 팀과 달리 감독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고, 선수 스스로 생각하도록 권장하는 팀 운영 방식으로도 주목 받았습니다.
국민스타가 된 1번 타자 ‘미백 왕자’
게이오고 우승으로 국민스타로 떠오른 선수가 바로 마루타 미나토(丸田湊斗)입니다. 50m를 5.9초로 뛰는 ‘빠른 발’을 무기로, 1번 타자이자 외야수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 선두타자로 나서 홈런을 쳤는데, 고시엔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함께 하얗고 단정한 외모에 팬들은 ‘미백 왕자’, ‘게이오의 프린스’ 등의 별명을 붙였습니다.
마루타 선수는 올 4월 게이오대에서 가장 가기 힘든 곳 중 한 곳인 법대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진학 직후부터 대학 공식 경기에 출전하면서, 대학교 수업에도 열중하고 있죠. 지난달 31일 요코하마시에 있는 게이오대 야구부 합숙소에서 마루타 선수를 만났습니다.
Q : -부모님께서 공부하란 말은 딱히 하지 않았다면서요.
A : "네, 없어요. (다만) 게임은 어릴 때부터 하게 하지 않으셨어요. 공부를 할 때 ‘마이너스(-)’가 되는 건 접하지 않게 하신 게 ‘플러스(+)’가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스마트폰도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없었어요. 그래도 머리가 좋은 사람 중에 게임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게임이) 나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텐데요.
A :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더 열심히 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제도적인 ‘프레셔(압박)’가 없었으면 스스로 하긴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정기 테스트(중간ㆍ기말고사)를 보는 고등학교 3년간, 성적이 높은 순으로 (게이오대에서) 가고싶은 학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정기 테스트 1주일 전엔 연습을 완전히 안했어요. 그 기간엔 죽어라 공부를 했죠. 다만 대학에선 테스트 전에 하루 10시간 정도는 공부하니까 지금이 확실히 더 힘들긴 합니다."
Q : -학업과 운동을 모두 하는 게 앞으로 인생에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A : "(잠시 생각한 뒤) 자기 선택지를 넓힌 것이라고 생각해요. 양립하지 않는 선택지를 택했다면 야구를 버렸으리라 생각해요. 야구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것만 해선 안되니까요."
마루타 선수는 지난해 팀 우승을 이끌면서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스타가 된 상당수 운동 선수들, 특히 나이어린 선수들은 과도한 관심에 부담 느끼거나 온라인 악플 등에 상처 받기도 하는데요. 걱정한 것과 달리 마루타 선수는 주위의 이런저런 시선에 의연한 듯했습니다.
Q : -우승 후 지난 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A : "(한참 고민한 뒤) 어렵네요. 정말 여러 일들이 있었거든요. 주목을 받은 1년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언론의) 취재가 많아지고,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았어요."
Q :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경험을 ’플러스(+)‘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는데요.
A : "그렇네요. (저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주간지 기자가 집에 온 적도 있었어요. 개인정보까지 퍼졌으니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래도 (플러스가 되도록)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했어요."
Q : -대학에서도 야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나요?
A :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을 써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내 인생이니까 누가 시키는 대로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주목받는 것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기 생각대로 인생을 걸으면 된다’는 그의 사고 방식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몇달 전 중앙일보에 입사한 기자도 ‘일본인 첫 한국언론 특파원’이라 불리는 데 종종 부담을 느껴왔거든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19세 청년의 언어는 어떻게 가능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A :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진 않는 편이라서…그냥 제 안에서 솔직하게 나온 말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형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생각이 뚜렷하신데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존경하고 있어요. 5살 더 많은 형을 따르고 싶어해서, 무의식적으로 목표로 삼았을 수도 있고요."
마루타 선수는 고시엔 직후인 지난해 9월 대만에서 열린 U18 베이스볼월드컵에서 일본 대표선수로 첫 세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한국과의 대전에선 그의 내야 안타로 호기를 만들어 팀 승리에 기여했죠. 당시 경기에 대해 물었지만 “(안타를 못 치는 등)부진할 때여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군요. 고시엔에서 쌓인 피로 등으로 인해 9경기에 출전했으나 6안타에 그쳤습니다.
A : "전체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그전까진 확실히 너무 잘했던 것도 있어서 내 실력은 이런 거구나라고 알게 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일약 스타가 된 마루타 선수는 “인생에 있어서 작년이 ’피크‘(정점)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며 오늘도 운동과 학업 모두에 힘쓰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더 큰 활약을 하길 기대합니다.
요코하마=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0대가 20대 피부 돌아갔다, 마침내 밝혀진 '노화의 비밀' | 중앙일보
- 조현오가 키운 ‘조국 오른팔’? 황운하 ‘룸살롱 황제’ 처넣다 | 중앙일보
- 한지민과 열애 최정훈 "그렇게 됐다, 심장 요동쳐 청심환 먹어" | 중앙일보
- '베드신 몸매 보정' 거부한 여배우, 이번엔 뱃살 당당히 드러냈다 | 중앙일보
- "잘생기니 알아서 비춰주네"…탁구 동메달 중계 잡힌 뜻밖의 인물 | 중앙일보
- "아쉽다"는 말만 반복…양희영 4위, 또 1타 차이로 울었다 [올림PICK] | 중앙일보
- 인증샷 남기기 좋은 '작은 사치'…요즘 백화점 고급 커피 품었다 | 중앙일보
- 무더운 여름, 지친 피부에 활력을…초록 풋귤의 계절이 왔다 | 중앙일보
- 11살 제자 성추행한 국악인…알고보니 제자 엄마까지 당했다 | 중앙일보
- 옥주현 "5단고음은 보물찾기...공연은 매순간 마스터피스여야 하니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