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상관없다""정청래도 괜찮다"…한동훈 '일기토 정치' 득실
‘일기토 정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0석 거대 야당 수장을 향해 연거푸 일대일 토론을 시도하는 모습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말이다.
일기토는 옛날 전쟁에서 병력 손실을 막기 위해 장수끼리 기마전으로 치르는 결투를 뜻하는 일본어 ‘잇키우치(一騎討ち)’에서 한자만 남긴 단어다. 국내에서는 일본 코에이(Koei)사의 PC게임 『삼국지』 시리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한 대표 역시 7·26 전당대회 기간 2030 보좌진을 만난 자리에서 “『삼국지』 게임을 즐긴다”며 “저는 (조조나 유비, 손권이 아닌 비주류 캐릭터) ‘맹획’으로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을 향해 연일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토론회를 요구한 게 대표적인 장면이다. 한 대표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라도 상관 없으니, 저와 금투세 폐지 민생 토론합시다”라고 적었다. 전날(6일)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가 “금투세 토론회 합시다.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토론자가 잘 섭외가 안 돼서 어려웠는데, 한 대표께서 직접 나오시면 되겠다”라며 “우리는 회계사 출신 당대표 직대가 나가시면 좋겠다”고 제안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한 대표는 “국민의힘은 격식이 아니라 민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정당”이라며 “연임이 확정적인 이재명 대표가 나오시면 더 좋겠지만, 어렵다면 박찬대 당대표 직대와 공개 토론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다. 박 직무대행이 곧바로 “(여당이) 할 수 있는 말은 금투세 밖에 없는가. 한심한 것 같다”고 답하면서다.
이에 한 대표는 다음날(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실망스럽고 놀랍게도 민주당에서 본인들이 하셨던 토론 제의를 없애고 그냥 국민들이 보시기에 도망가셨다고 할 수밖에 없을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토론자로 금투세 문제에 대해서 민생 토론을 하자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제안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장면은 지난 4·10 총선 때도 있었다. 여러 방송사에서 ‘한동훈 대 이재명’ 토론 제안이 들어왔을 때다. 한 대표는 공개적으로 수락 의사를 밝히며 “이 대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송사에서 누구를 사회로 내세워도 상관없다. 김어준씨가 해도 상관없다”(3월 4일), “거짓말할만한 상황이 되면 묵비권을 행사해도 좋다. 정청래 같은 분 데리고 나오셔도 된다”(3월 5일)고 거듭 압박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대화가 먼저”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 대표의 ‘일기토 정치’에 대해 여당에선 “우리가 쪽수에선 밀리더라도, 정책에선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는 뜻 아니겠냐”(당직자)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에선 “한 대표가 미리 보는 ‘대선 토론’을 연출해 자신의 당내 입지를 굳히려는 건데, 우리가 왜 협조하느냐”(친명계 보좌관)는 반박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한 대표 입장에선 이런 발언이 손해 볼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야권에서 절대적 입지를 가진 이 전 대표와 맞서는 모습 자체가 한 대표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 대표가 일대일 토론을 수차례 제안한 직후 이뤄진 한국갤럽의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3월 5~7일·전화면접 방식)에선 ‘한동훈 24%, 이재명 23%, 조국 3%’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이젠 정식 당대표인만큼 중요한 건 일대일 승부가 아니라 전체 전황(戰況) 관리”(중진 의원)라는 조언도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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