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탁구, '16년 만에' 단체전 동메달 쾌거…독일 3-0 완파→신유빈 '3년 전 눈물' 닦았다 [2024 파리]
(엑스포츠뉴스 파리, 김지수 기자) 한국 여자 탁구가 1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 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파리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 신유빈은 1992년 현정화 이후 32년 만에 단일 올림픽에서 '멀티 메달'을 획득한 한국 탁구 선수가 됐다.
신유빈, 전지희, 이은혜로 구성된 한국 여자 탁구 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 3~4위전에서 독일에 매치 점수 3-0(3-2 3-0 3-0) 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독일을 누르면서 한국은 올림픽 탁구 종목에 단체전이 처음 생긴 2008년 베이징 대회 동메달 이후 16년 만에 단체전 메달을 따내는 역사를 썼다. 한국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6년 리우 대회, 2021년 도쿄 대회에선 연달아 8강 탈락했다.
신유빈은 이날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1988년 서울 대회 유남규(남자 단식 금메달·남자 복식 동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현정화(여자 단식 동메달·여자 복식 동메달)와 김택수(남자 단식 동메달·남자 복식 동메달) 이어 한국 탁구 선수로는 단일 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따내는 첫 선수가 됐다.
신유빈은 앞서 열린 혼합 복식에서 임종훈과 짝을 이룬 뒤 3~4위전에서 웡춘팅-두호이켐(홍콩) 조를 따돌려 동메달을 따냈다. 2012년 런던 대회 남자 단체전 은메달 이후 12년간 올림픽 노메달 수모를 갚으면서 한국 탁구에 이번 대회 올림픽 첫 메달을 안겼다.
이어 여자 단체전에서도 단식과 복식을 각각 한 경기씩 책임지는 한국 대표팀 핵심 역할로 발군의 기량을 드러내고 또 하나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한국은 16강에서 브라질은 매치 점수 3-1로 이긴 뒤 8강에선 북유럽 탁구 강호 스웨덴을 매치 점수 3-0으로 완파했다.
그러나 세계 최강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실력 차를 뚜렷하게 드러낸 끝에 매치 점수 0-3으로 패하고 3~4위전에 나서게 됐다. 독일은 미국과 인도를 16강과 8강에서 각각 3-2, 3-1로 이긴 뒤 4강 일본과의 대결에서 1-3으로 졌다.
독일은 직전 대회인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이 8강에서 패했던 팀이다. 당시 17세 샛별이었던 신유빈은 중국 귀화 선수인 38세 한잉과의 단식에서 패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려 국민들 마음을 아프게 했던 팀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이번엔 동메달을 놓고 독일과 싸워 설욕전에 성공했다. 신유빈이 눈물을 닦았다.
한국은 복식으로 치러지는 첫 매치에 신유빈-전지희 조를 내세워 중국계 두 선수인 산샤오나-완위안 조와 싸웠다. 신유빈-전지희 조는 지난해 더반 세계선수권 은메달,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세계 정상급 복식 조다. 여자 복식 세계랭킹 2위에 올라 있다. 산샤오나-완위안 조는 여자 복식 세계랭킹이 없다.
그러나 신유빈-전지희 조는 적지 않게 혼났고, 게임 스코어 3-2(11-6 11-8 8-11 10-12 11-8)로 간신히 이겼다. 1게임을 11-6으로 가볍게 따낸 신유빈-전지희 조는 2게임에서 2-5로 끌려갔으나 내리 6점을 얻으면서 뒤집기에 성공했다. 최근 탁구 선수로는 드물게 팬홀더 라켓을 쓰는 산샤오나의 약점을 전지희가 잘 파고들어 득점을 여러 차례 올렸다.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 "신유빈-전지희 조가 상대 수를 잘 읽고 있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상대 선수 중 특히 완위안이 쇼트핌플(돌출)러버를 쓰는데, 그의 몸이 풀리면서 낮고 예상밖의 회전이 걸리는 볼에 신유빈-전지희 조가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8-11로 3게임을 내준 신유빈-전지희 조는 4게임도 10-12로 내줘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마터면 여자 복식에서 역전패할 뻔했다. 4-7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이 때 전지희가 분전해 랠리에서 산샤오나-완위안 조의 변칙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범실을 유도했다. 11-8로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첫 복식 승리를 따내고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2단식은 이은혜와 아네트 카우프만 매치업으로 짜여졌다. 18살인 카우프만은 여자 단식 세계랭킹 100위에 불과하지만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다.
카우프만은 당초 이번 올림픽에 올 운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41살 중국계 선수 한잉이 부상으로 파리에 오지 못하면서 대체 선수로 단체전만 뛰게 됐다.
그런데 카우프만의 발탁이 독일 입장에선 '신의 한 수'가 됐다. 16강에서 카우프만이 릴리 장, 레이청 성 등 미국 두 선수와의 단식에서 각각 게임스코어 3-0, 3-1로 이겨 8강행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변칙 탁구로 가끔씩 중국도 힘들게 하는 인도와의 8강전 역시 카우프만이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마니카 바트라, 스리자 아쿨라 등 두 선수와의 단식을 모두 돌려세워 여자복식 승리와 함께 독일이 인도를 잡는 원동력이 됐다.
카우프만은 준결승에선 단식 한 경기만 뛰었는데 일본 탁구의 미래인 하리모토 남매 중 동생인 하리모토 미와를 게임 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독일이 매치 점수 1-3으로 졌지만 유일하게 이긴 매치 하나가 바로 카우프만이 하리모토를 이긴 것이었다.
카우프만의 실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은혜가 붙었는데 예상 외로 완승을 거뒀다. 이은혜가 게임 스코어 3-0(11-8 11-9 11-2) 쾌승을 기록했다.
1게임을 이긴 이은혜는 2게임에서 4-6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이후부터 카우프만의 짧고 굵게 바로 들어오는 공격에 밀리지 않으며 11-9 역전승을 챙겼다. 카우프만은 어린 선수 답게 리시브가 약했다. 마침 이은혜의 백핸드 공격이 계속 적중하면서 3게임은 일방적으로 이기고, 첫 고비로 여겨졌던 두 번째 매치 승리를 따냈다.
3단식엔 맏언니 전지희가 나서 산샤오나를 게임 스코어 3-0(11-6 11-6 11-6)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확정지었다.
40살 넘은 산샤오나가 핌플러버를 이용해 다양한 공격을 펼쳤으나 전지희는 탄탄한 수비로 잘 막아내고 역공을 펼쳐 첫 게임을 따냈다. 복식을 치르면서 산샤오나의 구질을 파악한 듯 당황하지 않고 계속 받아친 끝에 1게임을 11-6으로 여유 있게 이겼다.
전지희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 산샤오나를 몰아붙였다. 2게임을 역시 11-6으로 눌러 승기를 굳힌 전지희는 3게임마저 역전승을 거두고 한국 탁구 새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리우 대회부터 3차례 올림픽에 나섰지만 메달이 없는 전지희는 이번 파리 대회가 마지막 올림픽 될 확률이 크다. 그야말로 해피 엔딩을 만들었다.
한국 탁구는 이날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끝으로 길고 긴 파리 올림픽 여정을 마무리했다. 혼합복식 신유빈-임종훈 조에 이어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 획득에 성공한 것을 큰 성과로 받아들게 됐다.
신유빈은 여자 단식 8강에서도 일본의 강자 히라노 미우와 명승부 끝에 게임 스코어 3-2로 이기는 등 단식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비록 준결승과 3~4위전에서 연패하면서 4위를 했지만 4년 뒤 LA 올림픽에선 여자 단식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
다만 대진운이 나빠 8강에서 중국에 패한 남자 단체전, 준결승에 한 명도 오르지 못한 남자 단식 등은 개선점으로 남았다.
한편, 파리 하계올림픽 탁구는 중국의 전종목 싹쓸이로 끝날 전망이다. 중국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던 혼합 복식에서 왕추친-쑨잉사 조가 우승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남자 단식 판전둥, 여자 단식 천멍으로 단식 두 종목을 휩쓸었고 남자 단체전에서도 스웨덴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일본과 격돌하는 여자 단체전도 이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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