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넘은 아재가 살림을 하고 있어요

김은상 2024. 8. 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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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은 '좀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힘, 이제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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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기자]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모든 창문을 열어 실내 환기를 시킨 후 씻고 벗어 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넣자마자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서 먹는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한 다음 설거지하고 빨래를 가져다 널고 난 후 잠시 쉬었다가 점심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들어 먹고 나면 그릇을 정리하고 또 설거지를 한다. 집 안 여기저기 청소, 정돈하고 나서 땀을 물로 식히고 빨래를 걷어 개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나면 다시 저녁 준비를 해야 하고 그렇게 먹고 나면 다시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다.

돌이켜 본 집안일

하루가 온통 집안일이다. 물론 마당 일과 집 수선도 있지만 매일 반복적으로 하진 않는다. 집안일이 곧 생활이다.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반복된다. 끼니는 금세 돌아오고 일은 끝이 없다. 하루의 반쯤은 먹고사는 일이다.

그럼에도 저녁에 일기를 쓰자면 집일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다른 일을 기록하지만 정작 더 많이 애쓴 것은 집안일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 반드시 중요한 일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지 않다면 왜 그리 많은 시간을 매일 집안일에 쏟겠는가?
 살림의 현장
ⓒ 김은상
집안일은 밥과 같다. 밥은 평생 먹는다. 몰아서 한꺼번에 다 먹고 딴짓할 순 없다. 그런데 매일 하는 일이라 어림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밥 짓기를 예로 들면 보통 쌀을 씻어 밥솥 눈금에 물을 맞춰 버튼을 누르면 끝인 줄로 안다.

나처럼 7분도 쌀을 먹는 경우엔 물의 양과 누르는 버튼이 잡곡에 맞춰진다. 밥이 다 되면 주걱으로 섞어 주고 솥 뒤편에 물받이도 가끔 비워준다. 물론 밥솥 청소와 패킹 관리는 별개의 일이다. 밥 먹듯이 한다는 말은 그리 가볍지 않다.

반찬은 잔손이 많이 간다. 재료를 깨끗이 씻고 다듬는다. 다듬는다는 것은 상한 곳과 필요 없는 것을 잘라내고 때론 껍질을 벗기며 적당한 양과 크기로 칼질하는 것을 말한다. 할 줄 아는 요리가 기껏해야 몇 안 되지만 매번 맛있게 되길 바라며 진심으로 열중한다.

사실 웬만한 레시피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디 단번에 흡족한 맛을 낼 수 있을까? 터득의 시간을 거치게 마련이다. 내가 만든 것에 투정도 우습다. 어쨌든 내 노동의 산물이 내 입 속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어 좋다. 오늘은 멸치육수에 콩나물국을 끓여 차갑게 식혔다가 찬밥을 말아서 오이소박이를 곁들였다. 그렇게 실력을 한 뼘씩 늘려간다.

입이 하나인데도 설거짓거리는 언제나 한가득하다. 일머리가 없으니 반찬 하나 만드는데도 그릇이 쌓인다. 마른 식기를 수납장에 옮겨 놓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먹고, 마시면 끝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생겨난다. 그릇을 씻는 동안 시선은 집안 곳곳을 두리번거린다. 세제 거품이 남아있을 때 마무리 짓고 싶다.

어지간히 기름기 많은 그릇이 아니면 물 탄 세정제를 분무기에 담아 사용한다. 헹굴 때도 건조대에 놓을 순서를 생각한다. 싱크대까지 닦아내야 설거지는 마무리된다. 꼭 손을 털고 나면 빠뜨린 것이 눈에 띈다. 손에 물이 마를 새 없다.

청소는 끝이 없다. 구석구석 꼼꼼히 쓸고 닦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광고처럼 진공청소기 쓱 끌고 다녀서 끝나지 않는다. 가급적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해보지만 먼지는 어둠처럼 쌓이고 상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다. 시간이 내려앉아 진득해진 먼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창틀, 가구 밑, 화목난로 뒤로 숨은 먼지는 그렇다 치고 빤히 보이는 유리창 닦기조차 계속 미루고 있다. 변기는 볼일 볼 때마다 바로 닦고 식탁도 탁자도 눈에 띌 때마다 반사적으로 치우도록 곳곳에 휴지와 걸레, 미니청소기를 비치한다. 즐비한 도구가 무슨 소용이랴. 결국 내가 움직여야 깨끗해지는 것을.

빨래는 즐겁다. 즐겁기 위해선 빨랫거리를 쌓아두면 안 된다. 어쨌든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쾌속으로 설정한 후 빨래 양에 맞춰 세제 양과 물높이를 조절한다. 꺼내선 탁탁 털어서 잘 마르도록 펼쳐 널고 가벼운 것들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집게로 집어준다.

걸레는 따로 손빨래를 한다. 회색빛 걸레도 하얗게 만드는 신비의 광선. 땡볕은 싫지만 빨래 널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씨다. 물기 있는 것은 뭐든 내다 말리고 싶다.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빨랫감은 잘 개서 장에 넣어야 마무리된다. 천이 머금은 햇볕 냄새는 거저 얻는 선물이다.

장보기가 남았다. 미리 살 것을 메모해 두지 않으면 마트의 전략에 패하고 만다. 꼭 필요치 않은 걸 사기도 하고, 냉장고에 들어가 눈에 안 보이면 유통기한을 넘기게 된다. 그래서 영수증을 버리지 않고 식탁에 두어 이따금 무엇을 샀는지 확인하곤 한다. 보통 보름에 한 번 장을 보기에 가짓수가 많아지는데 그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카트에서 계산대로 물건을 옮기는 사이 컨베이어가 돌아가 수납원의 계산이 시작되고 휙휙 밀어놓은 물건을 빨리 주워 담느라 당황했다. 그 후론 가급적 한가한 시간에 마트에 가되, 큰 장바구니를 하나 더 준비해서 한꺼번에 올려놓는다. 어떤 분들은 아주 느긋하게 정리하고 계산하시던데 왜 나는 그렇게 못할까 싶긴 하지만...

해봐야 하는 일

해봐야 아는 일이 있다. 분무기에 물과 세제를 섞어 쓰는 마음, 반찬을 만들며 버려지는 양념이 얼마나 아까운지, 소비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버릴 때 속상함, 쓸고 닦는 무릎과 허리가 얼마나 결리는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고가 얼마나 큰 인내이고 사랑인지 말이다.

혼자 살며 해보니 살림은 해봐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간의 내 편안한 일상은 해야 할 일이 생략된 때문이었다. 지워진 희생과 배려 덕분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며 깔본 집안일, 하찮은 육체노동으로 치부한 가사를 기꺼이 허락한 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돈 주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어느 노동자가 대신 짊어지고 있던 거였다.

겨우 내 한 몸 치다꺼리하면서 대단한 살림을 하는 양 말하는 것도 우습다. 은퇴한 남편 뒤치다꺼리를 좋아하는 아내는 없다는 걸 알아챈 정도라면 맞겠다. 그럼에도 매일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는 '좀 더 나은 나'로 변화함을 느낀다. 그것은 꾸준히 견뎌내는 힘, 굴레와 집착을 벗어던지는 용기, 멀리 보기보다 앞만 보고 걷는 단순함, 그리고 더 많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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