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도 한판 붙은 美 연준…독립에 목메는 이유[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재무부로부터 독립 쟁취하며 성장한 연준
'대통령이 거짓말했다'…공개반박도 불사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큰돈을 벌었고 매우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례를 고려했을 때 난 연준 사람들이나 의장보다 더 나은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말입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현재 의장인 제롬 파월이 금리 결정을 제대로 못 한다고 비판했죠. 그러면서 미국의 대통령도 금리를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유서 깊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깨겠다는 말로 비쳤기 때문이죠.
재무부 건물 빌려 쓰던 초기 연방준비제도
중앙은행의 독립은 미국에서 아주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국 연준은 제도적으로 독립을 보장받는데요. 연준의 통화정책은 공식적으로 정부 개입이 철저히 배제됩니다. 금리 결정도 마찬가지고요. 연준 이사회 임원들의 임기는 14년인데요. 대통령이나 국회의 지시나 결정을 거부해도 해고되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행정부 등 누구로부터 정책을 비준받을 필요가 없고요, 의회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연준은 1913년 12월2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설립법에 따라 탄생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중앙은행은 독립적인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이사회에는 재무부 장관과 행정부 소속의 ‘통화감사관’이 참여했습니다. 회의도 재무부 장관이 주재했고요. 사무실과 회의실도 재무부 건물을 빌려 썼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 제기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기준금리가 정치인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그도 그럴 게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게 중요합니다. 국민에게 표를 얻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죠. 기준금리가 낮으면 경제가 살아나고 인기도 커지거든요. 만약 정치인들이 금리에 관여하면 물가가 높아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위험도 있겠죠.
중앙은행 독립성이 마련된 계기는 1929년 미국 대공황이었습니다. 중앙은행의 결단이 필요했지만 중앙은행은 재무장관의 지시를 기다리며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죠. 부작용을 절감한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준 시스템을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개혁을 통해 1935년 우리가 잘 아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탄생했습니다. FOMC가 독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죠. 재무장관처럼 회의에 참여하던 관료들도 금리의사결정기구에는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했습니다.
한국전쟁, 재무부-연준 갈등의 불씨로
제도가 마련됐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중앙은행에 관여하려 했습니다. 결국 1950년 사건이 터집니다. 발단은 6·25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한국전쟁의 비용을 미국 국채로 조달하려 했습니다. 전쟁 비용을 충당하려면 미국 국채의 가격이 높아야 했죠. 국채의 가격은 기준금리에 따라 달라지는데, 금리가 높을수록 국채 값어치는 떨어집니다. 그래서 트루먼 정부는 미국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중앙은행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 연준의 8대 수장이던 토머스 매케이브 의장은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쟁 때문에 정부 지출이 많이 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거든요. 만약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향후 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죠.
중앙은행이 협조의 뜻을 보이지 않자 트루먼 대통령은 FOMC 위원들을 백악관으로 소집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회의장에서 매케이브 의장에게 국채가격을 유지해야 하니 금리를 올리지 말자고 제안했죠. 물론 매케이브 의장은 트루먼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고요. 그런데도 백악관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은 회의 후 일방적으로 성명서를 냈습니다. FOMC 위원들과 논의한 끝에 국채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죠. 사실과 다른 발표였습니다.
연준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했고,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뉴욕타임스에 비공개 회의록을 전부 공개해버렸죠. 국채가격 유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폭로했습니다. 중앙은행의 최고수장이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저격해버린 거죠.
사태가 커지자 재무부와 연준은 수습에 나섰습니다. 연준 의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죠. 1951년 3월 4일 협정을 체결합니다. 상대기 간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연준은 공식적으로 정부 개입을 받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비로소 연준이 통화정책과 금리 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공식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이지만, 연준 사람들은 3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여긴다는 말까지 있죠.
독립성은 연준의 자부심…“덕분에 정치로부터 보호받아”
연준의 독립을 바탕으로 중앙은행 의장들은 대쪽 같은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1979년 취임했던 폴 볼커 의장은 물가를 잡기 위해 숱한 비난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초고금리 정책을 펼쳤습니다. 3년 만에 금리는 19.29%까지 치솟았고 실업률은 6%에서 10%로 폭증했죠. 신변위협 때문에 권총까지 차고 다녀야 했지만, 덕분에 만성적인 물가인상률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죠.
지금 연준 의장인 파월도 마찬가집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17년 11월 파월을 의장으로 지명했죠. 이후 파월은 10년 가까이 진행했던 경기 부양용 통화정책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경기가 살아나길 원했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본인이 지명한 인사를 맹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월을 쫓아내겠다는 위협도 했고요. 그럼에도 파월 의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1년 만에 금리를 4차례 올려버렸죠.
물론 모든 중앙은행 총재가 철두철미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굴복한 연준 의장도 있죠. 연준이 최악의 인물로 꼽는 아서 번스입니다. 1970년 1월 취임한 번스 의장은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에게 휘둘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기가 살아나길 희망했던 닉슨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인플레이션 조짐을 무시하고 금리를 8%에서 3%로 떨어뜨렸죠. 이 결정 때문에 미국 경제는 이후 오일쇼크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미국의 연준 관료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에 대한 자부심과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1월 스웨덴 중앙은행 주최 심포지엄에서 파월 연준 의장이 직접 한 말을 보면 얼마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납니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대중에게 유익하면서도 중요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우리는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 목표와 관련 없는 일에 힘쓰지 말고 목표 달성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각종 정치적 고려로부터 연준의 결정을 보호하는 이점이 있습니다. (중략) 고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경제를 둔화시키기 위해 금리 인상 등 단기적으로 인기 없는 조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정치적 통제가 없으면 연준은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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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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