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지 않아도, 500만명 홀렸다…'MZ성지' 그라운드 시소 비밀 [비크닉]

이소진 2024. 8.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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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전시 ‘우연히 웨스 앤더슨’(2021)은 25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해외 투어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누적 관람객 수 500만 명, 연간 관람객 수 100만 명. ‘MZ세대 전시 성지’라 불리는 ‘그라운드시소’의 기록입니다. ‘요시고 사진전’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 ‘우연히 웨스앤더슨’ 등 최근 몇 년간 대박을 친 전시 앞에는 늘 그라운드시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촌·성수·명동·센트럴(서울역)에 문 연 그라운드시소는 전시 기획제작사인 미디어앤아트가 만든 문화 공간이자 하나의 브랜드예요. 관람객 10만 명을 성공 기준으로 보는 전시 시장에서 20만~40만 명 흥행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이름만 보고 일단 표부터 사는 관람객층이 생겼을 정도죠.

최근에는 1000억원 밸류의 시리즈A 112억원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세계적 거장의 명화를 가져와 그대로 재현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와 달리 ‘전시 저작권’을 가진 것이 무기가 되어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선전에서 ‘우연히 웨스 앤더슨’을, 올 10월 도쿄에서는 ‘요시고 사진전’을 선보입니다. 특히 싱가포르관광청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10월엔 싱가포르 내에 ‘그라운드시소 아시아’가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지 최초의 스토리텔링 기반 미디어아트 상영관이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한 미디어앤아트 지성욱 대표. 사진 박현아


흥미롭게도 이같은 전시 업계의 새 장을 연 주인공, 미디어앤아트 지성욱 대표(53)는 창업 전까지 전시나 아트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어요.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십여 년간 다날 미디어사업본부장, KT 미디어콘텐츠 본부를 거치면서 콘텐트 기획과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감각을 익혔어요. 그러다 2014년 미디어앤아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전시 사업에 뛰어들었죠. 직접적인 경력은 없었지만 ‘될 거다’라는 믿음은 누구 못지않게 확실했다고 해요. 바로 전시 업계에서도 ‘콘텐트의 힘’을 믿었던 겁니다. 대규모 전시와 차별화한 콘텐트는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지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이거 예술 맞아?” 출발점부터 달랐다


9개월 간 42만 명이 방문하며 화제가 된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2021) 사진 그라운드시소

- 미디어 콘텐트 경력을 뒤로 하고 오프라인 전시를 시작했어요. 어떤 사업성을 보았나요.
“회사에 다니면서 5년 사이 드라마 제작비가 1억에서 5억으로 올라가는 걸 봤어요. 글로벌까지 나가면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시장이 될 텐데 개인이 뭔가를 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했죠. 또 매체가 발달할수록 오프라인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있을 거라고 여겼어요. 개인의 의지만 있다면 자본의 부침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1년 안에 완결을 지을 수 있는 전시의 빠른 사이클에도 매력을 느꼈죠.”

- 처음부터 전시를 콘텐트 싸움이라고 본 거네요.
“미디어앤아트는 출발이 달라요. 디지털이나 디자인으로 시작한 회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한 회사라서 그래요. 저는 드라마·영화·음반 제작을 하던 사람이라 전시 자체도 제작이라고 봤어요. 콘텐트 산업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거기에 시장이 반응한 것 같아요. 콘텐트 시장에서 IP(지식재산권)는 정말 중요해요. 잘 만든 IP를 기반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전시를 제작해서 IP를 확보하는 것에 중심을 둔 이유입니다.”

동시대 보편적인 공감대를 찾아 전시를 만드는 그라운드시소.


- 전시 자체가 IP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2차 저작물 창작에 대한 권리예요. 예를 들어 전시의 주제와 콘텐트 기획, 공간별 세팅하는 방식, 영상이나 글, 도록이나 굿즈 같은 것들이 창작물이 되는 거죠. 원작자와 미리 계약을 통해 저작권에 대한 수익 배분을 합니다. 국내의 인기 전시가 해외 투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IP가 있기 때문이에요.”


MZ 세대 성지, 그라운드시소를 만들다


원형 필로티 구조가 인상적인 그라운드시소 서촌 전경. 사진 그라운드시소

- 스토리텔링 방식 전시도 IP와 밀접한가요.
“2014년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미디어아트 전시 ‘반고흐 인사이드’를 선보였어요. 그런데 흥행 후 비슷한 전시들이 속속 생겼어요. 명화의 2차 저작물에는 허들이 없으니까요. 소모적인 명화전 경쟁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회사 체질 강화에 도움이 됐죠. 첫 시도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빨간머리 앤』처럼 친숙한 이야기를 동시대 감각으로 녹여냈어요. 전시 ‘앨리스 인투 더 래빗홀’은 『2018 트렌드 코리아』에서 소확행과 가심비를 드러내는 사례로도 소개되었죠. 다음은 저작권과 이미지가 확실하게 있는 대상을 전시로 만들었어요. 그 예가 인기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었어요. 한 편당 700~8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작품이라 전시로 만들면 시장 자체가 커지겠다고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라운드시소 서촌을 찾은 관람객들. 여가 시간을 보내거나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 방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 ‘그라운드시소’라는 전시장을 열고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대중들은 전시를 봐도 어떤 제작사가 만드는지는 모르거든요. 회사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낼 브랜드가 필요했습니다. 또 미디어앤아트가 1년에 만드는 전시만 10개 거든요. 고정적으로 전시를 선보일 공간이 필요해졌죠. 그라운드 시소의 공간 정체성은 확실해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MZ 세대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려면 늘 트렌드에 민감할 것 같은데요.
“‘힙한’ 소재를 찾진 않아요. 대중예술을 하려면 큰 주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뜨는 작가나 트렌드를 쫒기 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할 만한 걸 먼저 정해요. ‘코로나 시대에 대중이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아,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구나. 그걸 잘 드러낼 수 있는 작가를 찾자’ 이렇게 시작이 돼요. 작가의 유명세보다는 메시지에 비중이 있기 때문에, 작가 섭외가 안 되더라도 기획을 틀지 않는 거죠.”


전시의 반은 ‘기획력’


뉴욕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는 누적 관람객수 23만 명이 넘었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 흥행에 그만큼 확신을 갖는 거네요.
“지금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 열리는 이경준 사진전 반응이 좋은데요. 여행 3부작이라고, ‘요시고 사진전’이 여행에 대한 열망을,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 대리만족을 선사했다면 ‘이경준 사진전’은 구체적인 장소를 제안합니다. 기획이 탄탄했기에 아이템에 자신있었거든요. 이미 관람객은 23만 명이 넘었고 작가에게는 팬덤이 생겼죠. 티켓 가격이 1만 5000원이라면 그 가격만큼의 만족감을 주려고 노력해요. 만약 뉴욕에 대한 전시라고 한다면 사진으로만 보여줄 수 있겠지만 음악·영상·오브제 등 가급적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소구점 하나 정도는 맞힐 수 있도록 하는 거죠.

- 그럼 회사에서 누가, 어떻게 기획을 하나요.
“저희 회사의 강점을 한 개만 말해보라고 하면 ‘아이템을 보는 눈’이라고 얘기해요. 전략기획팀·제작팀·디자인팀 같이 모여서 신규 아이템을 논의합니다. 주요 키워드가 정리되면 이후 작가를 찾고 연출안을 세워요. 10개월의 전시 준비 과정 중 6개월이 소요되는 중요한 일이죠. 전시도 종합예술이거든요. 구성원이 기획부터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실제 전시 완성도가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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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시소 대표 전시 ‘요시고 사진전’과 ‘우연히 웨스 앤더슨’(아래 왼). 디테일 높은 공간 연출을 통해 전시의 세계관에 깊이 빠지게 만든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 최근에는 전시 외에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가했어요.
“그라운드시소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죠. 현장에선 도록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어요. 부스에 연일 사람이 몰려들 만큼 반응이 좋았습니다. 다들 저희가 어떻게 일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더군요. 실제 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올리면 경쟁률이 500대 1이에요. 대기업도 아니라 의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이런 완성도 높은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집니다.
“국내를 넘어 해외도 도전합니다. 올해 하반기 문여는 싱가포르 ‘그라운드시소 아시아’에서 한국에서 흥행한 전시를 엄선해 보여줄 예정입니다. 예전에는 국가마다 선호하는 전시 아이템이 달랐지만 SNS 발달로 인해 그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그라운드시소를 찾는 70~80% 관람객이 MZ세대인데요, 연령별 타깃이 아닌 마니아층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콘텐트를 만드는 일이 우리가 제일 잘하는 분야죠.”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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