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이것'을 피서법으로 꼽은 이유, 알겠다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역대급 폭염으로 기록됐던 2018년 이후 6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다시 찾아왔다. 한반도 전역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가운데, 일부 지역은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등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를 피해 사람들마다 피서를 즐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계곡이나 바다로 떠나기도 하고, 방안에 틀어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밀린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더위마저 잊게 하는 활쏘기
나는 다소 독특한 방법으로 나만의 피서를 즐기고 있다. 바로 '활쏘기'다. 뜬금 없이 웬 활쏘기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요즘 같은 더위에 활을 쏘러 다닌다고 하면 지인들은 대부분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한다. 덥지 않냐는 것이다.
하기야 국궁이 시원한 물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도 아니고,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즐기는 운동도 아니니, 그렇게 반응할 만도 하다. 실제로 더운 날씨에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는 건 쉽지 않다.
▲ 무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전통 활(각궁)을 쏘는 궁사의 모습 (2024.7.31 / 서울 공항정) |
ⓒ 김경준 |
나 역시 처음엔 더운 여름에 활쏘기가 무슨 피서법이 될 수 있냐고 의문을 품었더랬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철 직접 활을 쏴보니 정약용 선생이 왜 활쏘기를 피서법으로 추천했는지 금세 수긍할 수 있었다.
여름철이 오히려 활 쏘기 좋은 이유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게 활쏘기이지만, 오히려 겨울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활쏘기를 즐기기에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손이 얼기 때문에 활 시위를 당기기 쉽지 않다. 연신 히터와 손난로로 손을 녹여가며 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 전통활쏘기는 시위를 당기는 손에 '깍지'라는 보조도구를 착용해야 하는데, 춥다고 장갑을 끼면 깍지를 착용하는 데 애로 사항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땅이 얼기 때문에 쏘아 보낸 화살이 언 땅에 맞고 부러지기 쉽다는 취약점이 있다.
그에 비하면 여름철은 더운 것만 빼면 딱히 활을 쏘는 데 지장이 없다. 과거 태조 이성계는 요동 정벌이 불가능한 까닭을 정리한 '사불가론(四不可論)'의 하나로 "덥고 습하며 비가 내리는 여름 장마철에는 활의 아교가 풀어져 전쟁이 불가하다"고 강변했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이는 전통 활인 각궁의 재료로 아교(동물의 가죽·힘줄·창자·뼈 등을 원료로 한 풀)와 어교(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 등이 쓰인 까닭인데, 요즘은 활터마다 '점화장'이라고 하여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유지해주는 기구들이 갖춰져 있어서 평소 보관만 잘해주면 한여름에도 실컷 활을 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활터에 현대식 카본 활(개량궁)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딱히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하루 종일 쐬다 보면 '냉방병'에 걸리기 쉬운데, 이를 예방하기에 활쏘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다.
▲ 화살 주우러 가는 길(연전길) (2022.6.14 / 서울 공항정) |
ⓒ 김경준 |
▲ 무더운 여름철에도 활을 쏘기 위한 사대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2024.7.31 / 서울 공항정) |
ⓒ 김경준 |
<송단호시> (박석무 역)
양쪽 계단에 나란히 오르면 살그릇 중앙에 있고
오얏은 가라앉고 오이는 뜬 술송이 가득한데
비단 휘장으로 소나무 틈의 햇볕 가렸고
과녁의 베는 밤나무 숲바람에 가득 배가 불렀네.
들에 편 돗자리 길손 맞이하게 더 넓게 펴고
서늘하게 시렁 매어 늙은 곰 하는 짓 배워본다네.
더운 여름도 날짜 보내기 좋으련만
왜 하필이면 추운 겨울에 활쏘기나 과시하려느냐고
모두가 말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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